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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송연아는 이정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그가 뒤에서 끌어안는 바람에 옴짝달싹 못했다. 이내 고개를 숙여 세게 깨물자 턱마저 붙잡혔다. 이정호는 그녀를 차에 욱여넣고 기사한테 출발하라고 말했다. 전속 기사 안정욱은 송연아를 알고 있었기에 뒤돌아서 힐끔 쳐다보더니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챘다. “아저씨, 이 자식 미쳤어요. 얼른 내려주세요.” 송연아가 서둘러 애원했다. “도련님, 아가씨가...” “젠장! 이제 자기 본분도 잊은 거예요? 고용주가 누구인지 몰라요?” 안정욱은 단지 커플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자칫 연루될까 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송연아도 무의미한 발버둥이라는 것을 깨닫고 서서히 진정했다. “어차피 너랑 싸우거나 소란 피울 생각 없어. 이미 헤어진 마당에 얼굴까지 붉힐 필요 있어?” 이정호는 화가 난 기색이 역력했다. “헤어져? 하, 누구 맘대로?” “온서우랑 결혼한다며? 날 제발 놓아주면 안 돼?” “싫어.” “이...!” 이정호는 송연아를 덥석 끌어안더니 귓가에 대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 “나랑 아이 가지고 싶다고 했잖아? 좋아! 오늘 저녁에 그 소원 이뤄주도록 하지.” “이정호, 이 개새끼야!” 송연아는 돌아앉아 따귀를 날렸다. 곧이어 ‘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차 안에 정적이 흘렀다. 이정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감히 나한테 손찌검 해?” 송연아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지만 아랫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참기 위해 애를 썼다. 무려 8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인데 어떻게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지?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다니! “너한테 난 대체 뭐야? 공짜 도우미? 아니면 비천한 기생?” 따귀를 얻어맞은 이정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자기 주제는 잘 알고 있네. 도우미든 기생이든 전부 네가 원해서 한 거잖아. 싸구려를 자처할 때는 언제이고!” 송연아는 이정호를 빤히 쳐다보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맞아. 난 천한 년이니까 당해도 싸.” “어차피 결혼이 목적 아니었어? 과연 너한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아니.” “서우를 질투하는데 비교 대상은 되고?” “아니.” “어...?” 점점 차분해지는 송연아와 달리 이정호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공짜 욕구 풀이 장난감으로 8년 동안 살아 온 여자를 어떤 남자가 좋아하겠어?” “그러니까 너한테 난 걸레라는 거네?” 이정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넌 쓰레기에 불과해.” 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지금이라도 이정호라는 인간을 간파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8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지만 남아 있는 인생은 아직 길었다. 이내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가 웃겨?” 이정호가 이를 악물고 물었다. 송연아는 그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널 더는 사랑하지 않아.” 이정호는 말문이 막혔다. 그동안 툭 하면 헤어지자고 얘기했지만 사랑하지 않는다고 한 적은 없었다. “아저씨, 차 좀 세워주세요.” 송연아가 안정욱을 향해 말했다. 그동안 찍소리도 못하다가 갑자기 이름이 불리는 바람에 안정욱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아가씨, 지금은 고속도로라서... 괜찮으시겠어요?” 아무리 화가 나도 어찌 고속도로에서 내리겠는가? “그럼 고속도로 빠지고 나서 세워주세요.” 이때, 이정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발신자가 온서우라는 것을 확인하고 금세 표정이 누그러졌다. 지금 촬영장에 있는데 밖에 기자들로 둘러싸여 데리러 와줄 수 있냐고 했다. “알았어. 지금 갈게.” 이내 전화를 끊고 안정욱에게 청북시 방향으로 빠지라고 말했다. 송연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사는 별장은 하남구에 있다. “아저씨, 일단 고속도로 빠져서 저를 내려주세요.” “차 세워요. 먼저 내리게.” 이정호가 버럭 외쳤다. 안정욱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여긴 고속도로라서...” “말귀 못 알아들어요?” 안정욱은 어쩔 수 없이 비상차로에 차를 세웠다. 차 밖으로 밀려난 송연아는 겨우 중심을 잡고 똑바로 섰고, 문득 가방을 두고 내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순간 차는 이미 저만치 떠나갔다. 마침 저녁 퇴근 시간대라 고속도로에 차들이 쌩쌩 달렸다. 그녀는 길가에 바짝 붙어 다음 출구를 향해 걸어갔고 가끔 등 뒤로 경적이 울려 퍼졌다. 한성깔하는 몇몇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고 죽고 싶어 환장했냐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걸어서 드디어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하지만 휴대폰도 돈도 없어 집까지 도보로 이동해야만 했다. 제법 쌀쌀한 밤바람 때문에 옷으로 몸을 단단히 여미었다. 길거리에 차가 점점 적어졌다. 으슥한 골목길에서 취객을 마주쳤다가 그녀를 해코지하려고 하자 이를 악물고 전력 질주했다. 도망치던 와중에 발을 헛디뎌 넘어졌는데 무릎이 까져 통증이 밀려와도 차마 멈출 수 없었고, 절뚝거리며 뛰어가 비로소 취객을 따돌렸다. 별장은 외곽에 있는지라 집에 도착했을 때 어느덧 날이 밝았다.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건물을 올려다보며 의아한 나머지 얼른 다가가서 문을 두드렸다. 이내 온서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가슴이 훤히 보이는 민소매 잠옷을 입은 그녀는 밖에 서 있는 송연아를 발견하고 의혹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이제 와요?” 송연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온서우가 여긴 웬일이지? “우리 집에 무슨 일이죠?” 온서우는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정호가 데려다줬어요.” 그녀를 스쳐 지나가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마침 주방에서 걸어 나오는 이정호를 마주쳤고, 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 한 그릇을 들고 있었다. 요리할 줄도 알다니? 그동안 왜 몰랐단 말이지? 한번은 고열에 시달려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이정호는 배고프다며 밥 달라고 징징거렸다. 당시만 해도 너무 어이가 없었다. “밖에서 먹는 게 싫으면 요리 좀 배워. 내가 차려주지 않으면 굶어 죽을 거야?” 그는 덥석 끌어안으며 뻔뻔스럽게 말했다. “아니! 평생 네가 해준 요리만 먹을 건데?” 머릿속으로 떠오른 장면에 송연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온서우가 공주라면 자신은 한낱 도우미에 불과했다. 집을 지키는 도우미에게 식사까지 대령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정호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이내 온서우를 끌고 거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국수를 식탁에 올려놓고 쿠션을 챙겨서 그녀가 기댈 수 있게 했다. “입맛이 없어.” 온서우는 입을 삐죽거렸다. “굶으면 안 돼. 아침을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이정호는 그릇을 들고 온서우에게 먹여주었다. 온서우는 억지로 한 입 먹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별로야. 너무 짜.” “그래?” 이정호가 맛보더니 말했다. “짜네. 다시 만들어줄게.” 그는 귀찮은 기색이 전혀 없이 잽싸게 주방으로 뛰어가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피곤함에 찌든 송연아는 침대에 누워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침실로 가보니 침대 위에 이불이 젖혀 있었고, 베개는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옷장에는 온서우의 의상으로 가득했다. 반면, 그녀의 옷은 의자에 대충 걸쳐 놓았다. 이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고 1층으로 내려가 물었다. “어젯밤 누가 내 침실에서 잤어?” 이정호가 힐긋 쳐다보며 말했다. “앞으로 서우도 여기서 지낼 거야.” “여긴 내 집이야. 난 허락한 적이 없는데?” 이정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집주인은 나야. 내가 동의하면 그만이지.” 송연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물론 그의 집인 건 사실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집을 구한 적이 있었는데 이정호는 너무 좁다는 이유로 살기 불편하다며 별장에서 같이 지내자고 먼저 제안했다. 비록 월세를 따로 주지는 않았지만 모든 지출은 그녀가 부담했다. 따라서 서로 빚진 게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별장을 신혼집으로 리모델링할 예정인데 연아 씨 방을 따로 빼둘게요.” 온서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말을 마치고 나서 즉시 2층으로 올라가 수납장에서 캐리어를 꺼낸 다음 짐을 싸기 시작했고, 곧이어 다시 아래층에 내려가 밖으로 걸어 나갔다. “송연아! 네 장단에 맞춰 줄 정도로 인내심이 강하지 않거든? 짐을 챙기고 이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린 진짜 끝이니까 더는 만회할 여지가 없다는 걸 기억해.” 이정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미 현관까지 걸어간 송연아는 그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뚫어져라 쳐다보며 손에 든 열쇠를 신발장 위에 올려놓았다. “깔끔하게 끝내고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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