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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송연아가 주방을 정리를 마칠 때까지 이정호는 여전히 식탁에 앉아 있었는데 안색이 창백했고 위가 아픈지 손으로 배를 문지르고 있었다. 송연아는 그를 무시한 채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약 좀 가져다줘.” 이정호가 말했다. “넌 손이 없냐 발이 없냐?” “너 지금 도우미라는 걸 잊지 마.” 그와 말싸움 것조차 싫었던 송연아는 말 없이 거실로 나와 제일 밑에 있는 서랍에서 약을 꺼내 식탁으로 가져갔다. “약을 제대로 산 게 맞아? 전혀 소용이 없는데?” “어젯밤에 먹었는데도 너무 아파.” 직업병이 남아있었던 송연아는 이정호에게 어떻게 아픈지 물었고 최근에 불규칙한 식단을 한 건 아닌지, 과음을 한 건 아닌지 꼼꼼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고선 약상자를 열어 제일 위에 있는 약의 유통기한을 살폈다. “이 약은 공복에 먹어야 돼. 그리고 이거는 위를 보호해 주는 약이야. 같이 먹으면 좋아. 자, 두 알 먹어.” 송연아는 두 약의 용량을 배합하여 이정호의 손에 쥐여주며 아침밥을 꼭 먹으라고 당부했다. 곧이어 다른 약도 꼼꼼히 확인한 후 유통기한이 지난 건 모두 버렸다. 잔소리하며 정리하는 송연아의 모습에 이정호는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문득 마음이 공허한 느낌이 들어 괴로웠다.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많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검사해 봐.” 말을 마친 송연아는 습관적으로 손을 주머니에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더 이상 흰 가운을 입을 수 없다는 사실에 문득 정신이 들었고 표정마저 어두워졌다. “빨리 가서 검사해 봐. 위암이라면 죽을 준비해야지.” 약을 먹던 이정호는 그 말을 듣고 사레가 들렸다. “내가 죽으면 울어줄 거야?” “죽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송연아는 집으로 돌아가 공사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비록 김성진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때때로 그녀의 의견도 들어야 했으니 긴 시간을 비우는 건 불가능하다. “정호야, 네가 끓여준 국수 먹고 싶어.” 위층에서 내려온 온서우는 한마디를 하고선 거실로 걸어갔다. 이정호는 손에 들린 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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