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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장

시내의 한 술집. 오후 세 시에 들어온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저녁 아홉 시가 넘었다. 나는 머릿속이 다 비워질 때까지 술을 마셨다. 사장님과 친한 사이라서 혼자 술을 마셔도 사고 날 걱정은 없었다. “나은 씨, 언제 갈 거야? 데리러 올 사람은 있어?” 사장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50대 중반 정도에 아버지뻘 되시는 사장님은 평소에도 나를 잘 챙겨주셔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가야죠.”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은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 일도 해야 하니 일찍 돌아가서 쉬어야 하는 게 맞았다. 나는 오늘 마신 술을 강지훈과의 이별주로 생각하기로 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사장님이 나를 불러세웠다. “혼자 보내는 건 내가 걱정돼서 안 돼. 사람 시켜서 집까지 데려다줄게.” 나는 사장님의 자상함이 고마웠다. 그의 이런 인심 덕분에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에 술집을 차려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사장님을 보고 온 단골손님들이었다. 처음 이곳에 오게 된 것은 학생 시절이었다. 강지훈이 그에게 고백했던 한 여학생과 춤을 췄던 날인데 속상해서 찾아온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때 나는 날이 밝을 때까지 혼자서 술을 마셨는데 이튿날 정신을 차려 보니 여전히 술집에 있었다. 지 사장은 따뜻한 칼국수 한사발을 나에게 건네며 나중에 술이 마시고 싶으면 위험하니까 다른데 가지 말고 이곳을 찾으라고 말해주었다. 그날 이후로 난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이 술집을 찾았다. 지 사장은 술을 적게 마시라고 잔소리하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내 기분을 맞춰주었다. 술을 많이 마셔 꽐라가 돼도 언제나 내 안전을 지켜준 고마운 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에게는 고인이 된 딸 한 명이 있었다고 했다. 소녀는 어린 나이에 실연의 아픔을 겪고 나가서 술을 마셨다가 나쁜 마음을 먹은 자에게 붙잡혀 안 좋은 일을 당하게 되고 그 일로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했다. 그가 이 술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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