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하루 종일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강지훈이 찾아올 때까지 난 답을 얻지 못했다. 난 늘 그랬듯 강지훈이랑 퇴근했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10년이란 시간, 난 강지훈의 존재가 익숙해졌고 그와 함께 퇴근하는 게 이미 버릇이 되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돌아가는 길에 강지훈은 내 기분이 별로라는 걸 발견했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강지훈, 우리 그냥…….”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름이 없는 전화번호 한 줄이 핸드폰 화면에 나타났다. 하지만 핸들을 잡고 있는 강지훈 손에 힘이 들어간 게 보였다.
강지훈이 긴장하고 있었다. 보기 드문 반응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강지훈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연결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알았어. 지금 갈게.”
통화 시간은 아주 짧았다. 전화를 끊은 강지훈이 나에게 말했다.
“나은아,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너 집에 못 데려다주겠다.”
사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난 벌써 내가 버림받을 거라고 예감했다. 그래서 슬픈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강지훈은 굳어진 얼굴로 대답하지 않고 창밖을 쳐다보았다.
“저 앞에 세워줄게. 택시 타고 들어가.”
그는 설명조차 주지 않고 나 대신 모든 결정을 다 해놓았다. 여기서 뭐라 더 말하겠는가?
꼬치꼬치 캐묻고 난리 쳐봤자, 나만 더 난감해질 뿐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문자 보내줘.”
강지훈은 이렇게 분부하면 핸들을 돌렸다. 차는 이미 길가에 세워졌다.
난 가방을 꼭 잡고 차에서 내렸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그 낯선 번호를 본 강지훈의 반응이 이상했다. 날 피하려고 심지어 이어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느 정도 추측하긴 했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묻지도 않았다.
가끔은 모른척하면서 자신을 속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는 길에 조심해!”
급하게 가던 강지훈이 웬일로 날 걱정해 주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엑셀을 밟고 가버렸다.
난 그 자리에 서서 그가 사라진 방향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눈이 시큰거리는 게 느껴지자, 그제야 시선을 거두고 내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주머니에 있는 전화가 울렸다. 나의 절친, 세정이한테 걸려 온 전화였다.
“나은아, 어디 있어? 저녁 같이 먹을래?”
내 친구 유세정은 산부인과 의사인데, 젊은 나이에 아직 남자 친구는 없지만, 아주 유명한 의사이다.
“그래.”
내가 아주 시원하게 대답하자, 세정이가 약간 의아해했다.
“웬일이야? 평소에 같이 밥 먹자고 하면 늘 강지훈한테 한번 물어보던 사람이, 오늘 되게 시원하네?”
마음이 답답했다. 이 10년 동안 난 강지훈의 껌딱지처럼 살아왔다. 혹시 날 못 찾을까 봐, 친구랑 같이 쇼핑하고 밥 먹는 것도 그에게 보고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 강지훈의 말이 날 깨우쳤다. 그에게 있어서 난 짐이었고, 나 때문에 그가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너 병원이야, 집이야?”
난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유세정은 나한테 주소를 하나 보내더니,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왜? 강 대표랑 싸웠어?”
유세정은 날 보자마자 뭔가 눈치챘다.
세정이는 나의 많지 않은 친구 중 한 명이기에, 난 그녀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
유세정은 내 말을 듣고 욕설을 퍼부었다.
“남자들은 좋은 놈 하나도 없다니까. 버리기 아깝다고? 씨*, 너랑 많이 자본 것처럼 말하네.”
이 말은 내 위로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날 난처하게 했다.
나랑 강지훈이 사귄 지 아주 오래됐지만, 아직 자본 적이 없다.
스킨쉽이 없는 건 아니었다. 술에 취한 내가 주동적으로 들이댄 적은 있었지만, 강지훈은 이불로 날 말아서 내 방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그땐 강지훈이 날 존중해서, 내가 제정신이 아닌 생태에서 나랑 자고 싶지 않은 줄 알았는데, 이제야 진실을 알았다. 강지훈은 그냥 나한테 그럴 마음이 없을 뿐이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면 무조건 충동이 생길 거라고.
하지만 강지훈은 나한테 아무런 욕망도 없었다.
“세정아, 나 그만 포기하고 싶어.”
하루 종일 고민했던 문제, 이 순간 갑자기 답을 얻었다.
“그래, 난 네 편이야.”
유세정은 물컵을 들고 나와 잔을 부딪쳤다.
“세 발 두꺼비는 적어도, 두 발 남자는 많아. 네 미모로 어떤 남자 못 찾겠냐?”
유세정의 말이 맞았다. 18살 때, 난 미스코리아 우승자였다. 만약 강지훈이 날 말리지 않았다면, 난 지금 연예인이 됐을 것이다.
내 미모에 반한 남자가 수없이 많았지만, 난 단 한 번도 설렌 적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강지훈뿐이니까!
이 생각에 내 코끝이 찡했다. 유세정한테 들키고 싶지 않아, 얼른 화장실로 도망쳤다.
그런데 마침 안에서 나온 사람이랑 부딪치고 말았다. 너무 급하게 뛰어서 그런지, 상대방은 내 힘에 뒤로 넘어졌고, 난 그 사람 위에 쓰러졌다.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려는 순간 상대방이 먼저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변태! 뭐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