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강지훈은 고개를 돌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의아한 눈빛이더니, 곧 짜증과 분노로 바뀌었다.
“한나은, 성질부려도 상황을 가려야지. 주수연은…….”
“네 약혼자는 나야.”
난 그의 말을 잘랐다.
이 말은 너무나도 비참하게 들렸다.
전에 드라마에서도 이런 비슷한 장면을 본 것 같았다. 그땐 그저 여자 주인공이 너무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왜 이런 남자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는 건지.
그런데 그 여자 주인공이 내가 되자, 비로소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주수연 임신했어.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된다고!”
강지훈은 이렇게 말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몸을 돌리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강지훈은 결국 나와 주수연 사이에 남을 선택했다.
내 자리에서 아주 똑똑하게 보였다. 주수연을 쫓아간 강지훈이 그녀의 팔을 잡자, 주수연은 강지훈의 옷을 잡고 그의 품에 안기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어떤 사이든, 갈팡질팡하던 내 마음에 드디어 답이 생겼다.
음식을 몇 입 못 먹고 괜히 60만 원만 썼다.
난 강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고 유세정을 찾아갔다.
“정말 헤어지기로 결심했어?”
산부인과의 유명한 의사인 유세정이 마사지를 해주면서 생리로 인한 고통을 덜어주었다.
하지만 마음의 아픔은 나아지지 않았다.
“응.”
난 침대에 엎드린 채, 그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쉽게 헤어지지 못할 거야.”
유세정은 잠시 멈추었다.
“잊지 마. 너 강지훈 비서잖아.”
“그만둘 거야.”
오는 길에 이 문제를 생각해 봤었다.
그러자 유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회사는 그만둔다고 해도 강씨 가문은 어쩔 건데? 널 키워준 집안이잖아. 강지훈 때문에 강씨 가문이랑도 연락을 끊을 거야? 너랑 강씨 가문이 아직 연락이 있다면 강지훈이랑 헤어지기 힘들어.”
나도 순간 난처해졌다.
그렇지, 강씨 가문은 날 10년 동안 키워준 은혜가 있는데.
“그건 달라. 미연 이모한테 잘 설명할 거야. 내가 미연 이모 수양딸이 되면 되잖아.”
난 이미 마음을 먹었다.
유세정은 내 말을 듣고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난 너 응원할게.”
난 밤새 핸드폰을 껐다.
잠이 드니 슬프거나 서러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세정이는 이미 아침을 차려놓았다.
“대추 죽이야. 원기 회복하라고.”
유세정은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많이 먹어.”
그녀의 마음이 고마워서 죽을 두 그릇이나 먹고 계란도 두 개 먹었다.
세정이도 출근하고 나도 회사에 가봐야 해서, 둘이 같이 내려갔다. 그런데 밖에 나오자마자, 차에 기대고 서있는 강지훈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백장미 한 다발을 안고 있었다.
“사고하러 왔나 보네.”
유세정은 나를 툭 치고 먼저 가버렸다.
그리고 강지훈 옆을 지나갈 때, 한마디 했다.
“생리 올 때, 화가 나면 대출혈 할 수도 있어요. 알겠죠, 강 대표님.”
세정이는 긴말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강지훈이 나에게 걸어왔다.
“어제는 내가 미안했어.”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꽃을 나에게 건넸다.
난 받지 않았다.
“강지훈, 우린 이미 헤어졌어.”
어제 헤어지자고 했으니, 강지훈의 사과에 쉽게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