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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장

나는 무의식적으로 김아진의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 “윤오 씨, 이분은 내 여자친구 김아진이라고 해요.” 나는 더 이상 박시아와 엮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난다면 그게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구윤오는 모든 걸 이해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어서 타세요. 제가 이미 식당을 예약해 두었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구윤오는 우리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떠나기 전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제가 보기에 김아진 씨는 정말 도준 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꼭 저 초대해줘야 합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윤오 씨를 빠뜨릴 일은 없을 거니까.” 그렇게 택시를 잡아타고 구윤오와 작별한 후 나는 김아진의 손을 잡고 차에 올랐다. 김아진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도준아, 아까 나더러 여자친구라고 말한 거 진짜야? 이제 마음을 정리한 거야?” 그녀의 질문에 나는 무심코 김아진의 손을 놓으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네 동의도 없이 미리 말도 안 하고 그냥 연기하게 해서...” 갑자기 손을 놓친 김아진은 잠시 멍해졌다. 그러나 이내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그러나 김아진은 옷깃을 꽉 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나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거야?” 나는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직 박시아가 남아 있었다. 과거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건 나 자신에게도 김아진에게도 옳지 않다고 느꼈다. 한숨을 내쉬며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미안해. 나는 너를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어. 그 이상은 아니야.” 내 말에 김아진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실망감으로 가득 차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문득 어젯밤 박시아가 술에 취해 내게 했던 행동이 떠올랐다. 내 마음은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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