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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장

과거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박시아와의 관계는 예전에는 이렇게 냉랭하지 않았다. 그녀와 결혼하기 전 우리 사이의 유대감은 이현태와의 것 못지않게 깊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한때 순진하게도 박시아가 언젠가는 내 사랑에 감동할 것이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내 부모님이 이현태의 본모습을 알아차리고 박시아에게 나와 결혼하라고 했을 때 우리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다. 그 후, 그녀는 이현태에게 더욱 깊은 애정을 품게 되었고 그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도 이현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박시아는 여전히 긴장한다. 내 마음은 이미 마비된 지 오래였다. 나는 감정이 없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박시아, 우리 사이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어. 내가 너에게 했던 약속들은 네가 이현태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할 때 이미 끝나버렸다고.” “지금부터는 각자의 길을 가야지. 더 이상 내 삶에 간섭하지 마.” 이 말을 마치고 나는 김아진의 손을 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떠나는 순간 내 귀에 강시후와 박시아의 대화가 들려왔다. “시아 씨 잊었어요? 당시 이도준이 이현태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잖아요. 이현태가 살아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이도준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강시후의 목소리에는 긴장과 절박함이 가득했고 박시아의 목소리에는 의심하는 듯한 기색과 혼란이 섞여 있었다. “나도 알아. 이도준이 하는 말은 쉽게 믿을 수 없어.” 김아진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나는 다시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잠시 몸을 풀고 짐을 챙겨 퇴근 준비를 했다. 막 건물을 나서자 익숙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도준, 네가 이런 짓을 한다고 해서 시아 씨가 마음을 돌릴 거라고 생각해? 꿈 깨라.” 증오가 가득 담긴 눈빛을 한 채 강시후가 한 걸음씩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말했다. “네가 여기는 왜 왔냐?”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도준, 무슨 증거로 이현태가 살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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