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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5년 전, 박시아는 내가 자신의 첫사랑을 죽였다고 오해했다. 그렇게 감옥에 간 나는 직장도 가정도 전부 파탄 나고 말았다. 5년 후, 출소한 나는 새로운 인생을 꿈꿨다. 그런데도 박시아는 나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녀는 붉은 눈시울로 물었다. “이도준, 너 어떻게 딴 여자랑 결혼해서 애 낳을 수가 있어?” “너랑은 상관없지 않나? 우린 이혼한 거로 기억하는데.” 나는 박시아를 완전히 포기했다. 지금은 가업을 이어가서 아버지 대신 복수할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시아의 집착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나는 참다못해 바다에 뛰어들어서 떠났다. 그날 이후 박시아는 미친 듯이 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드디어 다시 만난 어느 날, 그녀는 나를 있는 힘껏 끌어안으며 말했다. “도준아, 나 네 아이를 가졌어. 제발 날 버리지 말아줘.” ... 이현태가 죽었다. 나는 멍하니 소파에 앉아서 박시아가 던진 이혼협의서를 바라봤다. 분위기는 마치 얼음처럼 얼어붙었다. 3일 전, 이현태가 손목 긋고 자살했다. 죽기 전에는 SNS에 유언을 올렸다. 오로지 나를 공격하기 위한 글이었다. 그는 나 때문에 자신이 죽었다고 했다.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았으니 이런 식으로 갚는다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친부모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 그러고는 또 부처님이라도 납신 듯 내 친부모님에게 잘해주라고 했다. 유언에는 피가 가득 담긴 욕조의 사진이 첨부되었다. 유언과 사진은 인터넷에서 금방 화제를 끌었다. 그렇게 나는 살인범이 되었다. 박시아는 병원에서 3일 밤낮을 샜다. 그리고 돌아와서 한 일이 이혼협의서를 내던지는 것이었다. “빨리 사인해. 귀찮게 굴지 말고.” 뒤늦게 정신 차린 나는 빨개진 눈으로 설명했다. “이현태가 탈세한 거, 내가 신고하지 않았어. 걔가 한 노예 계약도 난 밝힐 생각이 없었어. 제작진한테 뇌물을 준 것도, 회사 동료를 괴롭힌 것도, 전부 걔가 한 짓이야. 나랑은 상관없다고. 왜 내 말은 하나도 안 믿어줘?” 박시아는 주저 없이 나의 뺨을 때렸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한다고 현태가 다시 살아날 것 같아? 현태는 너 때문에 죽었다고 했어. 죽은 사람은 말을 못 하니, 넌 뭐라고 떠들어도 다 되겠지.” 얼굴은 심하게 화끈거렸다. 하지만 아픈 가슴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박시아는 나를 범인으로 단정 지은 모양이었다. 설명은 소용이 없었다. 그건 이현태가 살아 있을 때도, 죽은 다음에도 똑같았다. 나는 가만히 박시아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넌 결혼한 3년 동안 날 사랑 적 있어? 단 한 순간이라도?” “없어. 단 한 순간도. 내 사랑을 원해? 그러면 가서 죽어.” 그녀의 말은 비수처럼 나의 심장에 꽂혔다. 피는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처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내가 10년 낭비한셈 치지 뭐.” 나는 싸늘하게 식은 마음으로 협의서에 사인했다. 모든 획이 10년의 사랑이 끝에 다다랐음을 알리고 있었다. 박시아는 여전히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설마 사인으로 끝날 줄 알았어? 그럴 수는 없지. 현태의 죽음에 너희 집안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할 거야.” 나의 안색은 빠르게 변했다. 박시아의 말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박시아는 10년 동안 좋아했다. 결혼한 지는 3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은 몰랐다. 이현태의 부모는 아이를 낳자마자 바꿔버렸다. 그렇게 이현태는 나 대신 10여 년간 재벌가 도련님의 인생을 즐겼다. 나는 이현태 친부모의 학대를 받으며 자라났다. 이현태가 우연한 사고로 수혈이 필요할 때가 되어서야 나의 친부모는 이상함을 눈치챘다. 이현태는 O형이지만, 나의 친부모는 A형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금방 나를 찾아냈다. 나는 16살이 되던 해 집으로 돌아갔다. 죄책감에 친부모는 배로 나한테 잘해줬다. 그렇다고 해서 이현태를 방치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성인이 된 날, 로엘그룹 지분을 각각 5%씩 받게 된 것만 봐도 그랬다. 나와 박시아는 어릴 적부터 맺어진 사이였다. 그래서 그녀는 이현태가 아닌 나와 결혼하게 되었다. 박시아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당연히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박시아는 함께 놀면서 자란 이현태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부모를 잃은 고통에 잠겼을 때 이겨내게 해준 사람이기도 하니 말이다. 눈앞의 사람은 한결같이 아름다웠다. 한때 나는 자신이 그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자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나는 그녀를 잘 모르겠다. 나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 “진정해, 우리 집안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현태가 얼마나 곱게 컸는지, 너도 모르는 건 아니잖아. 어떻게 애꿎은 사람까지 건드릴 수가 있어? 너한테도 친딸처럼 잘해줬었어.” 박시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해줘? 나를 친딸로 생각했다면 너 같은 놈이랑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겠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현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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