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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물론 정은지는 한아진과 당장 얼굴을 맞대고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들 사이에 풀어야 할 문제가 아직 많았고 이건 그저 시작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아진아, 준수 씨가 날 데리러 온 것 같으니까 나는 먼저 가볼게.” 정은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여준수의 팔짱을 꼈다. 한아진은 그들이 떠나려는 것을 보고 급히 정은지를 붙잡았다. “잠깐만.”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정은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렵게 여준수를 만났는데 어떻게 한아진이 그를 그냥 보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정은지가 여준수와 단둘이 있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억지로 웃으며 한아진은 말했다. “은지야, 오늘 제대로 못 놀았지? 마침 준수 씨도 왔고 하준 씨도 있는데 다 같이 좀 더 놀다 가는 게 어때?” ‘놀다 간다고?’ 정은지는 속으로 비웃었다. “하지만 너도 알잖아. 준수 씨는 시끄러운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냥 그만하자.” 이 늦은 밤에 한아진이 또 무슨 꿍꿍이를 부릴지 모르기 때문에 정은지는 굳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정은지는 여준수를 바라보며 웃었다. “여보, 여기서 잠깐 기다려. 가방 가져올게.” 여준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은지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자 한아진은 이를 악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은지, 너 오늘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여준수가 이미 고개를 끄덕였기에 한아진은 더 이상 억지로 붙잡을 수 없었다. 조금 전 일어난 사건을 떠올리자 한아진은 조금 난감해졌다. “준수 씨, 오늘 밤 일은 그냥 오해였어요. 제가 사람을 잘못 봤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 그저 은지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돼서 그랬어요.” 그 말을 들은 여준수는 한아진을 차갑게 바라봤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한아진의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때, 정은지가 가방을 들고 다가왔다. “아진아, 그럼 우리는 먼저 갈게. 재밌게 놀아.” 한아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호텔을 나섰다. 그 광경을 보는 한아진은 주먹을 꽉 쥐었는데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갈 정도였다. 질투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눈빛을 한 채 한아진은 당장이라도 정은지를 갈기갈기 찢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준수 씨 같은 훌륭한 남자가 어떻게 정은지 같은 여자를 옆에 두고 있을 수 있어? 그 사람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은 한아진 바로 나라고.’ 그 순간, 옆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인제 보니 오늘 밤 나 아진 씨 계획에 걸려들었네요?” 고개를 돌아본 한아진의 시선에 고하준이 회색 목욕 가운을 입고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누가 하준 씨를 속였다는 거예요?” 그러자 고하준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 보이니까 모르는 척하지 말아요. 아진 씨가 여준수한테 마음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근데 이런 방법은 좀 그렇지 않아요?”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며 한아진은 숨이 가빠졌다. “고하준 씨, 헛소리 하지 마요.” “헛소리라뇨? 여준수를 바라보는 그 눈빛, 거의 여준수를 삼켜버릴 듯한 눈빛인 거 알아요? 나랑 은지 씨를 맺어주려던 것도 모두 아진 씨를 위한 거였죠?” 고하준은 모든 것을 가감 없이 폭로했고 분노한 한아진의 얼굴은 곧바로 붉어졌다. “도... 도대체 뭘 바라는 겁니까?”” 고하준은 여전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흥분할 필요 없어요. 나는 단지 아진 씨와 협력하고 싶을 뿐이니까.” ‘협력?’ 한아진은 경계하며 물었다. “무슨 협력이요?” “아주 간단해요. 나는 은지 씨를 갖고 싶고 아진 씨는 여준수를 좋아하잖아요. 아진씨가 나를 도와서 은지 씨의 마음을 얻게 해주면 아진 씨도 여준수 씨를 마음껏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말에 한아진은 큰 유혹을 느꼈다. 혼자 정은지를 상대하는 것은 확실히 힘에 부치고 최근 정은지가 점점 더 통제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누군가의 도움이 나쁠 리는 없었다. 잠시 고민한 끝에 한아진은 고하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협력해요.” ... 호텔 문밖. 호텔을 막 나서자마자 여준수는 재빨리 손을 빼며 정은지와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정은지는 포기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다시 그의 몸에 달라붙었다. “이거 놔.” 여준수는 난감한 표정으로 팔에 힘을 주며 그녀를 떼어내려고 했다. “싫어. 안 놓을 거야.” 하지만 정은지는 마치 떼어낼 수 없는 강력한 접착제처럼 그를 꽉 붙들고 있었다. 여준수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정은지를 그대로 놔두었다. 차에 올라타고 각자 안전벨트를 매고 나서 여준수는 오늘 밤 일어난 일, 특히 한아진에 대해 생각하며 문득 고개를 돌려 정은지에게 말했다. “앞으로 한아진과는 거리를 둬. 그 여자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사람이야.” 그 말을 들은 정은지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지난 생에 여준수는 여러 번 이 말을 정은지에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 당시 정은지는 여준수가 자신과 한아진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했다. 인제 와서야 그녀는 여준수가 이미 한아진의 본성을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모든 게 그때 너무 어리석었던 자신의 탓이었다. 그래서 한아진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이용당한 것이다. 이 생각에 정은지는 다시 여준수에게 바짝 다가가 그의 팔을 꼭 껴안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응. 앞으로는 다 준수 씨 말 들을게.” 하지만 여준수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최근 며칠 동안 정은지가 변했다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내가 이런 말 했을 때 분명히 발끈했을 텐데... 왜 이제는 순순히 따르는 거지? 모든 게 너무 이상해.’ 잠시 후, 정은지가 여전히 손을 놓지 않자 여준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말했다. “운전해야 하니까 이 손 놔.” 그러자 정은지는 입술을 깨물며 마지못해 그를 잠시 놓아주었다. 10분 후, 스카이 별장. 여준수는 차에서 내린 뒤 정은지를 현관에 내려주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들어가서 일찍 쉬어.” 그러나 말을 끝내고 한 발자국도 채 가지 않아 그는 뒤에서 따뜻한 감촉이 전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가지 마.” 정은지는 무슨 생각인지 참지 못하고 뒤에서 여준수를 꽉 껴안았다. “준수 씨, 가지 마. 나 준수 씨 보내고 싶지 않아.” 그러나 그녀의 이런 행동이 여준수를 화나게 만드는 마지막 불씨가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너 대체 무슨 속셈이야?” 여준수는 갑자기 몸을 돌려 타오르는 듯한 눈빛으로 정은지를 바라보며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강력한 카리스마는 정은지에게 거부할 수 없는 압박감을 주었다. 정은지는 여준수의 이런 모습을 처음 봤기에 두려운 마음에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난...” “가식적인 행동 그만두고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해.” 여준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약혼식 밤 이후로, 정은지는 계속 여준수에게 다가가 가까워지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이건 전혀 그녀의 성격이 아니었다. 과거에 정은지는 죽어도 싫다며 여준수를 마치 전염병 환자 보듯이 멀리했었다. ‘인제 와서 왜 이렇게 변한 거지? 진짜 의도가 대체 뭐지?’ 과격한 여준수의 반응을 정은지는 탓하지 않았다. 과거의 자신이 너무 심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도 알고 있긴 한데... 근데 어떻게 해야 준수 씨가 다시 나를 믿게 할 수 있지?’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정은지는 조용히 말했다. “아무 속셈도 없다면... 내 말 믿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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