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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정은지는 고하준의 손을 불만 가득한 얼굴로 확 밀어내며 말했다.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요! 정말로 식욕이 없다고요. 그냥 간단히 포장해서 갈 거라니까요? 정말로 바람 쐬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세요. 고하준 씨 같은 바람둥이가 함께할 사람이 없을 리 없잖아요?” 정은지는 이렇게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에 바빠 멀리서 한아진이 휴대폰을 들고 이 상황을 녹화하고 있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화면 속에서 정은지와 고하준은 마치 연인처럼 손을 맞잡고 있었고, 고하준의 눈빛은 마치 사랑에 빠진 남자처럼 애정이 가득해 보였다. 이 장면을 확인한 한아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한 건 제대로 건졌어!’ 사실 한아진은 최근 정은지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예전의 정은지와는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았다. 예전에는 한아진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그녀가 하라는 대로 모든 것을 따랐던 정은지가 요즘 들어 한아진의 부탁을 자주 거절했고, 심지어 예전에 그렇게 좋아했던 고하준에게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변해버린 정은지를 보며 한아진은 불안해졌고, 그녀는 계속해서 마음속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수업이 끝나자마자 한아진은 정은지와 임지현이 밥을 먹는 곳까지 몰래 따라갔고, 계속해서 미행하다가 이준 그룹까지 오게 됐던 것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한아진은 그들이 점심을 먹으러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과 우연히 마주칠 기회를 노렸고, 고하준을 불러 밥을 먹자고 했다. 그렇게 마침 그들과 마주쳐 오해를 일으키려고 치밀하게 계획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참지 못해 화장실에 다녀온 한아진은 뜻밖에 이런 중요한 장면을 포착했다. ‘정말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이보다 완벽한 시나리오는 없어!’ 한아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 사진을 카톡으로 여준수에게 보냈다. 그리고 무척이나 순진한 척하면서 메시지를 덧붙였다. [준수 씨, 오늘 여기서 밥을 먹다가 은지를 우연히 만났어요. 혼자 온 줄 알았는데, 고하준 씨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둘이 무척 가까워 보였어요.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준수 씨와 은지가 약혼한 걸로 알고 있는데, 은지는 왜 고하준 씨와 함께 있는 걸까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너무 속상하네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은지를 잘 타일러 볼게요.] 한아진이 여준수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마치 정은지를 위해 억울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여준수를 위해 걱정하는 척하면서 정은지의 잘못을 지적했다. 마지막에는 정은지의 잘못을 바로잡아주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여준수의 좋은 친구 역할을 자처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아진은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고 했다. 한편, 여준수는 회의 중에 휴대폰 알림음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확인했다. 한아진이 보낸 사진을 본 순간, 그의 얼굴이 어둡게 변하며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이 모습을 본 이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의아해했다. 여준수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더 이상 회의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는 노트북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합시다!” 그렇게 말한 뒤 회의실을 나섰고, 서달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뒤따랐다. 여준수가 짙은 살기를 내뿜으며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정은지는 예상대로 집무실에 없었다. 여준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서달수에게 물었다. “정은지 어디 갔어?” 서달수는 깜짝 놀라며 얼어붙은 채 대답했다. “대표님, 사모님께서 배가 고프시다며 점심 식사 메뉴를 포장해 온다고 하셨어요.” 여준수는 속으로 분노를 삭이며 생각했다. ‘테이크아웃 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다고? 회의가 시작된 지 거의 40분이나 지났는데, 밥을 먹고 온다고 해도 지금쯤이면 돌아왔어야지.’ 이때 한아진이 보내온 사진이 떠오르자, 여준수는 저절로 주먹이 살짝 쥐어졌고 눈가엔 순간적으로 폭력적인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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