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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학교 근처의 식당. “어디가 이해가 안 돼?” 임지현이 밥을 먹으며 정은지에게 물었다. 정은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휴! 다 모르겠어... 지현아, 너만 믿는다.” “뭐?” 임지현은 정은지가 이 정도로 기초가 약한 줄 몰랐다는 듯 놀라며 말했다. “좋아... 내가 모든 중요 과제를 표시해 줄게. 집에 가서 꼭 복습해야 해.” 임지현은 세심하게 펜을 들고 정은지의 노트에 중요한 부분들을 빠짐없이 표시해 주었다. 임지현의 친절한 모습에 정은지는 그녀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성격도 좋고, 예전에 자신이 괴롭힌 일을 전혀 앙금으로 남기지 않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지현아, 정말 고마워.” 임지현은 귀찮아하기는커녕 오히려 열정적으로 말했다. “별거 아니야. 필요하면 내가 더 도와줄 수도 있어.” 정은지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고마워. 학교에서 모르는 부분이 생기면 꼭 너한테 물어볼게. 하지만 수업 끝나고는 괜찮아. 집에 가면 전담 지도 교수님이 계시거든.” 지도 교수 이야기가 나오자, 정은지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지며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정은지와 임지현은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 후 정은지는 택시를 타고 이준 그룹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한아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지만, 정은지는 모르는 척하며 받지 않았다. 한아진은 연달아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정은지가 받지 않자 점점 불안해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정은지, 뭐 하느라 전화도 안 받는 거야! 설마 일부러 안 받는 거야?’ 모든 것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자, 한아진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 이준 그룹. 정은지는 당당하게 회사 로비로 들어갔다. 서달수는 멀리서 걸어오는 정은지를 보자마자 거의 반사적으로 두통에 시달렸다. ‘사모님, 무슨 일로 또 회사로 오신 거죠? 이번에도 트집 잡으러 온 건가요?’ 서둘러 다가간 서달수가 물었다. “사모님, 무슨 일로 오셨어요?” 그러자 정은지는 주저하지 않고 물었다. “준수 씨 좀 보려고 왔어요. 회사에 있죠?” 서달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표님은 지금 사무실에 계십니다. 제가 빨리 보고드리고 올까요?” “그래요. 가서 제가 왔다고 말해줘요.” 정은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앉았다. 서달수는 급히 자리로 돌아가 대표님 집무실 유선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사모님께서 오셨습니다. 지금 소파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긴 왜 왔지?’ 여준수의 잘생긴 얼굴에 미세한 주름이 접혔다. “알겠어.” 전화를 끊은 여준수는 이내 집무실에서 나왔다. 그는 훤칠한 키를 부각시키는 맞춤 정장을 입고 있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정은지는 여준수를 보자마자 싱긋 미소를 지었지만, 여준수는 정은지를 마주하고 나서도 여전히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는 왜 온 거야?” 여준수는 정은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은지는 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공부하러 왔어.” 여준수는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들썩였다. “공부?” “응! 곧 졸업이잖아. 그런데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준수 씨한테 개인지도 받으려고 왔어.” 정은지는 여준수가 메이플리치대학교에서 경제금융학과와 행정학과의 박사 학위를 땄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뛰어난 멘토가 있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게다가 준수 씨와 더 가까워질 절호의 기회잖아!’ 하지만 여준수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회사는 업무를 보는 곳이지, 네 개인 교습소가 아니야. 나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고. 집에 돌아가.” 하지만 정은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준수 씨, 절대 방해 안 할게! 제발 부탁이야! 이대로라면 이번 학기도 모두 F 학점을 받을지도 몰라. 지금이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졸업도 못 할 거야. 안 된다고 해도 절대 안 갈 거야! 내 부탁 들어줄 때까지!” 정은지는 애원하는 표정으로 여준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여준수는 이마를 짚었다. 그는 결국은 돌아서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따라 들어와.” “역시!” 정은지는 기쁨에 차서 책을 잔뜩 안고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곧 사무실 문이 닫혔고, 서달수는 그 자리에 남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진짜 그 오만했던 사모님 맞아? 어떻게 이렇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버린 거지? 여자는 정말 변덕스러운 존재인가 보구나!’ 사무실에 들어간 정은지는 책을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가 여준수의 책상에 눈독을 들였다. “준수 씨, 책상 좀 빌려도 될까?” 정은지는 거절당할까 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묻고 나서, 한마디 더 보탰다. “걱정하지 마! 책상 끝자락에서 공부할 거라서 절대 방해되지 않을 거니까!” 여준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정은지는 웃음을 지으며 옆으로 가서 의자를 가져와 여준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노트를 펼치고 임지현이 가르쳐준 대로 차근차근 공부를 시작했다. 여준수는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지만, 정은지가 진지한 모습을 보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한참을 참다 결국 물었다. “예전엔 공부와 담을 쌓을 정도로 공부를 싫어하지 않았나? 갑자기 왜 이래?” 정은지는 여준수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예전엔 공부를 싫어했지만, 지금은 달라졌어. 이제 정말 열심히 공부하려고. 학업을 더 이상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 다만...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정은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여준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한데?” 정은지는 임지현이 표시해 준 자료 뭉치를 여준수 앞에 놓고 말했다. “이거야! 난 전혀 모르겠어. 좀 가르쳐줄 수 있어?” 여준수는 자료를 보지 않고 정은지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정은지는 기뻐서 벌떡 일어났다. “가르쳐준다고? 정말 고마워! 열심히 할게!” 정은지는 기쁜 마음에 책상을 넘어가 여준수의 목을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추며 말했다. “준수 씨, 역시 준수 씨가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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