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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다음 날 아침. 정은지는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눈을 찌르듯이 밝아 눈을 가늘게 떴다. 여준수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정은지는 그가 이미 출근했을 거라 생각했다. 세수를 마치고 나니 배가 너무 고팠다. 그래서 정은지는 잠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출근했을 거라 생각했던 여준수는 아래층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고 아침 일찍부터 집에는 뜻밖의 손님이 찾아와 있었다. 그 손님의 이름은 고승준으로 회사에서 여준수의 오른팔 같은 존재일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절친한 친구였다. 고승준은 여준수의 옆에 앉아 끝도 없는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여준수, 좋은 친구로서 말하는 건데 더 이상 못 참겠어. 네가 그렇게 아끼는 네 약혼녀 좀 봐봐. 약혼한 후에도 밖에서 계속 돌아다니고 있잖아. 넌 신혼집에 왜 돌아왔어? 우렁각시라도 되게? 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상대방이 알아줘야 의미가 있는 거 아니야?” 말을 멈추기는커녕 고승준은 점점 더 열을 올렸다. “내가 듣기로 네 약혼녀 맨날 밖에서 별 시답지 않은 놈들이랑 어울린다더라. 근데 넌 왜 집만 지키고 있어? 이해가 안 가네. 다른 집들은 남자가 밖에서 돌아다니는 데 왜 너만 반대야?” 그러나 여준수는 고승준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이 평온하게 아침 식사를 계속했다. 고승준의 말에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말이다. 답답한 마음에 고승준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이씨, 그 여자가 너한테 대체 무슨 마법을 걸었길래 네가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야? 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이면 그 썩은 나무에 목매달려고 하냐고? 바깥엔 너를 기다리는 숲이 있는데 너는 숲은 보지 않고 그 한 그루 나무만 고집하니...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고승준은 한참 열을 올리며 얘기하는 탓에 정은지가 이미 자신의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 정은지의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지금 누구 보고 썩은 나무라고 한 거예요?” “아이쿠, 깜짝이야.” 고승준은 크게 놀라며 돌아보았고 정은지를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 설마 정은지 씨?”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정은지는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고승준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약간 거만한 모습이었지만 동시에 장난스럽고 귀여운 매력이 느껴졌다. 고승준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이 사람이 정말 정은지라고? 에이 설마...’ 그는 정은지의 충격적인 스타일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호피 무늬 스타킹에 악어가죽 코트... 별의별 엉뚱한 옷차림을 하고 다녔는데...’ 하지만 오늘 아침의 정은지는 산뜻하고 깔끔한 모습의 소녀처럼 보였고 아름다운 얼굴이 더해져 마치 천사가 내려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외국 다녀왔어요? 내가 알던 정은지 씨랑은 완전히 다른 데요?” 고승준은 이렇게 말하면서 정은지의 얼굴을 살짝 만져보려 했다. 그 피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려는 듯 말이다. 하지만 정은지는 그의 손을 즉시 쳐냈다. “외국은 그쪽이 다녀왔겠죠.” 고승준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충 화제를 돌렸다. “근데 은지 씨는 왜 집에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정은지는 입을 삐죽 내밀며 반박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내가 왜 집에 있으면 안 되는데요? 여기는 나랑 준수 씨의 신혼집이에요. 뭐 문제 있어요?” 말을 마치고 정은지는 고승준을 날카롭게 노려보더니 곧바로 여준수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여준수의 팔짱을 끼고 작은 입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여보, 저 사람이 하는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바깥에 아무리 많은 숲이 있어도 집에 있는 이 나무만큼 좋은 건 없잖아요.” 그녀의 애교 섞인 목소리는 마치 여준수를 기쁘게 하려는 것 같았다. 이런 광경에 고승준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 사람 진짜 정은지 씨 맞아? 내 귀가 잘못된 건지 은지 씨 정신이 나간 건지... 어디 다친 거 아니야? 왜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 달라진 거야?” 그는 여준수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은지 씨 병원에 한 번 데려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비록 성격이 좀 거칠고 까다롭긴 하지만 그래도 네 와이프잖아. 혹시라도 진짜 뭔가 문제가 생긴 거라면 안 되잖아.” 이 말을 들은 정은지는 금세 화가 나서 벌떡 일어섰다. “고승준 씨, 죽고 싶어요?” 하지만 그녀가 분노를 퍼붓기 전에 여준수가 부드럽게 달랬다. “아침 먹어. 그만해.” 여준수의 한 마디에 정은지는 금세 화를 억누르고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 마치 주인에게 길들여진 고양이처럼 얌전한 모습이었다. 고승준은 이 상황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이게 정말 정은지 맞나? 혹시 바뀐 거 아니야?’ 아침 식사가 끝난 후, 여준수와 고승준은 회사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정은지는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배웅하며 떠나기 전에 밝게 말했다. “여보, 저녁에 꼭 돌아와서 같이 저녁 먹어요.” 그러자 여준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너무나 궁금했던 고승준은 차에 타자마자 여준수를 붙잡고 물었다. “여준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은지 씨 성격이 왜 이렇게 바뀐 거야?” 여준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도 몰라.” 고승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여준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약혼식 밤 이후로 이렇게 변했어.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지만 아마 은지 본인만이 제일 잘 알겠지.” 고승준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나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여준수에게 말했다. “여준수, 난 네가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은지 씨의 성격을 우리 둘 다 잘 알잖아. 이번에도 뭔가 꾸미고 있을지 몰라. 그러니 너무 쉽게 은지 씨 믿지 마.” 여준수는 고승준의 말을 들었지만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차를 몰고 회사를 향해 갔다. 정은지 역시 자신이 여준수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음을 알고 있었다. 이제 그 신뢰를 다시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정은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정은지는 화장을 하고 외출 준비를 한 다음 학교로 향했다. 정은지는 올해 대학교 4학년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성적 이야기가 나오면 이는 정은지의 약점이었다. 그녀의 성적은 형편없어서 졸업하려면 학점을 보충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과거에 한아진은 우수한 성적으로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그 덕분에 항상 정은지를 억누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마다 성실하게 공부하는 모범생과 공부에 소홀한 재벌 딸이라는 극명한 대조가 형성되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대학을 곧 졸업할 시점에 정은지는 결심했다. 실습 기간이 오면 이준 그룹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졸업 후에는 정식으로 이준 그룹에 입사하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여준수를 매일 볼 수 있을 것이고 자연히 그를 되찾을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 방법은 한아진의 견제도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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