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어마마마가 나를 달래려는 듯 말을 잇자, 아바마마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지러운 상황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한참을 침묵하던 아바마마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윤정왕후의 간청을 고려해, 민 씨는 죽음은 면하되 벌은 피할 수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곤장 사십 대를 내리도록 하라. 이후로는 다시 궁에 발도 들이지 말거라!”
그 말에 민연아는 눈이 뒤집히듯 하며 거의 쓰러질 뻔했고, 이휘는 다급히 외쳤다.
“안 됩니다! 어찌 그런 벌을... 아바마마, 부디 연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어마마마도 조금 더 말려보려 했지만, 아바마마는 어마마마의 말조차 가로막듯 소매를 휘날리며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꾹 참고 있던 웃음이 터질까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
비록 장폐를 면했지만, 이 형벌도 절대 가볍지 않았다. 궁중 예법상, 곤장은 중의를 벗긴 채 공개적으로 시행되며, 그 모든 장면은 전각에 모인 신하들과 궁인들 앞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그리하여 이휘의 울부짖음 속에서, 민연아의 창백한 엉덩이가 곤장에 맞아 피멍이 드는 모습이 모두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휘는 내 탄신 예물을 빼앗아 민연아에게 바친 것도 모자라, 그녀를 세자빈으로 들이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써왔다.
하지만 신분 낮고 재주도, 명성도 없는 민연아는 동궁에 하급 후궁으로 들어가기도 어려운 처지였는데 하물며 세자빈이라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이번 일로 명성은커녕 체면만 구겼고, 궁 밖으로 내쫓긴 데다 수치까지 당했으니, 세자빈의 자리는 더는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세자빈은 장차 중전이 될 인물이다. 장차 국모가 될 세자빈이 온 백성 앞에서 엉덩이를 드러내놓고 곤장을 맞았다? 그 자체로 대성의 체통에 먹칠이로구나.’
궁인들 사이에선 묘한 흥분이 감돌았다.
수년 만에 여인이 대전에서 공개적으로 곤장형을 당하는 장면이라니, 누구에겐 구경거리요, 누구에겐 속 시원한 일이었다.
그 와중에도 송유빈은 시선을 돌려 고개를 살짝 틀고 있었다. 끝내 그 장면을 직접 보지 않았다.
민연아도 그걸 눈치챘는지, 얼굴에 기이한 집착이 스며든 듯한 표정으로 송유빈을 바라봤다. 무슨 망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송유빈 옆으로 다가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아까는 그렇게 매섭게 나서시더니, 지금 와선 눈길조차 피하십니까? 설마 연민이라도 생기신 겁니까?”
속으로는 그가 눈치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 여겨 호감이 생겼지만, 혹여 민연아에게 연민이라도 품는 사람이라면 내 편이 될 수 없었다.
송유빈은 내 시선을 받고 살짝 놀란 듯하다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로 예를 갖췄다.
“공주마마께서 농을 하시옵니다. 그자를 가엾다고 여긴 건 아니옵고...”
그의 눈빛이 조용히 빛나더니, 입가에 엷은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런 걸 괜히 눈에 담았다가는, 훗날 마음속 여인에게 핀잔이나 들을까 두려워 피했을 뿐이옵니다.”
그 대답에 나는 무척 만족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 순간, 민연아의 질투심 가득한 눈빛과 마주쳤다.
‘이휘가 옆에서 심장이 찢기듯 아파하고 있는데, 그 눈으로 딴 사내를 바라보다니. 정녕 저 여자의 속은 어찌 그리도 검은가.’
그때 송유빈이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공주마마께서 권경현과의 혼약을 파기하셨으니, 이제는 자유로운 몸이 된 셈이옵니다. 감히 여쭈옵건대, 언젠가 시간 되신다면... 차 한 잔 나누는 영광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확실히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진창 같은 일을 겪은 나로서는, 남자에게 마음을 쓸 여유 따위 없었다.
‘남정네는 괜히 끼어들어 내 복수를 늦추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지.’
단칼에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문득 민연아가 씹어먹을 듯한 눈빛을 보내오는 걸 보고 생각을 바꿨다.
‘차 한 잔쯤이야. 그 이상은 아니니까...’
더군다나 송유빈은 문신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텁고, 명문가 출신으로 영향력도 컸으니, 세자를 끌어내리기 위해서라면 지금 내게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