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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다만 그녀의 동향을 훤히 다 꿰뚫어 보고 있어서 아쉽네... 절대 도망 못 가! 그러나 만사에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놔야 직성이 풀리는 경도준은 변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전부 차단해 버려야 하는 성격이었다. 경도준은 휴대폰을 꺼내 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15분 줄게. 모든 인맥과 인력을 동원해서 경화 호텔로 보내. 모기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여기 호텔 입구를 전부 봉쇄시켜버려.” 지금은 새벽 2시라 호텔을 지키고 있는 경비원들의 인원수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그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사람들을 더 불러 모아야만 했다. 그 여자가 양동작전을 벌이고 있으니 그 또한 경계심을 늦출 수는 없는 것이다. “형, 무슨 일이야?” 잠결로 비몽사몽했던 서지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큰 일이라도 벌어진 건가? 형이 이 많은 사람을 동원할 정도면 아주 드문 일인데? “형, 누구 잡으려고 그래?” “여자.”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로 임하고 있는 경도준은 서지민한테 상황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여자라니?” 언성이 살짝 올라가 있는 서지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형! 여자라니? 형 여자야?” 그런데 형의 말투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좀 이상한데? 경도준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은 채 통화를 뚝 끊어버렸다. 그도 그녀가 여자라는 것 외에는 아는 정보가 없었던 것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통화가 끊긴 전화를 멀뚱멀뚱 들여다보고 있는 서지민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형이 알려주지 않으면 직접 가서 확인하면 그만이다. 이 재미진 구경을 놓칠 수는 없지! “도련님, 회사 감시카메라를 확인해 봤는데 찍힌 동영상이 전부 망가져 있었어요.” 진구는 도련님의 지시에 따라 가장 빠른 속도로 감시카메라를 확인하러 갔었는데 끝내는 한발 늦어버렸다. 경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그의 방을 나서고 2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도망을 치면서 감시카메라를 망가뜨렸다고? “추 도련님이 주최한 가면 파티는 끝났어?” 경도준은 추적기의 위치가 3층에 멈춰선 걸 보고 오늘 밤 가면 파티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니.” 고오한은 의아하긴 했으나 재빠르게 답을 했다. “알았어.” 가볍게 응답을 하고 난 경도준은 그녀가 무슨 일을 꾸미려는지 예상이 갔다. 가면 파티에서 숨으려고? 괜찮은 생각을 지닌 여우 같은 여자네? 건방진 데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여우! 가면 파티에 참석하려면 옷을 갈아입어야 할 테니 그녀는 어쩌면 손에 들린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의 추적기가 그녀의 가방 안에 들어있다. 경도준은 엘리베이터에 올라 3층 버튼을 눌렀고 문이 닫히기 직전 재차 지시를 내렸다. “여기 엘리베이터 모든 입구들 지키고 있으면서 내려오는 사람들이라 하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막아버려.” 도망가려고? 그럼 어디도 도망갈 수 없게 뒷길을 봉쇄해 버리도록 하지! 갑작스레 임명을 받은 이 지배인은 온통 의문투성이긴 하나 의아함을 물을 용기가 없으니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경도준은 즉시 3층으로 올라갔다. 직접 가면 파티로 들어와 그녀를 잡아낼 작정이었다. 그리고 고하진은 정말로 가면 파티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의 그녀는 옷을 갈아입은 채 여우 탈을 쓰고 있었고 현재 상황으로 보아 혼자 호텔을 떠나는 건 불가능할 테니 한 사람의 도움이 급히 필요했다. 그녀는 파티에 모인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고 홀의 빛이 워낙 어두운데다 다들 분장을 하고 있으니 도울 사람을 찾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사람을 곧바로 찾아냈다. 그 사람은 바로 진우남이었다. 사실 진우남 자체로 봤을 때는 위험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온갖 유흥업소를 돌아다니며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 집안 자식으로 교활하고 속이 검은데다 진우빈의 사촌 동생이었다. 게다가 그녀와 진우빈은 혼약이 맺어져 있었다. 웬만하면 진우남을 찾고 싶지는 않았으나 지금으로서는 딱히 좋은 선택이 없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진우남에 대해 가장 많이 요해하고 있는데다 진씨 가문의 비밀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니 이용하기 딱 좋은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진우남!” 고하진은 그의 곁으로 다가와 나지막이 소리를 질렀다. 동작을 멈춘 진우남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고 별 개의치 않아하는 담담한 표정으로 보아 그저 자신한테 말 걸러 온 여인인 줄로 여기는 듯했다. 고하진은 재차 입을 열었다. “진씨네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여기서 즐기고 계시네요? 요즘 집안에서 일어난 골칫거리들을 다 해결하셨나 봐요?” 느릿느릿 입을 열던 그녀는 그한테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말을 덧붙였다. “예를 들면 그쪽 사촌 동생인 진우천이 운전하다 고의로 두 사람을 치어 사망하게 이르렀다던가... 또 당신의 아버지 내연녀가 임신 도중에 갑작스레 사망하게 됐다던가... 또...” 그녀는 평소에 천박해 보이는 진우남이 자신의 집안일이라 하면 절대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표정이 삽시에 변해버린 진우남은 그녀의 손목을 되잡았다. “너 누구야?” 고하진은 눈가에 미소를 머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 원하는 게 뭐야?” 진우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그는 눈앞의 여자가 분명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이 호텔을 빠져나가야 돼. 최대한 빨리.” 고하진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음은 초조함이 극에 달했을지언정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호텔을 빠져나가는 게 어려워?” 진우남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녀의 요구가 이해도 안 되고 의아하기만 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어려워요. 그래서 그쪽의 도움이 필요해요.” 고하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한 남자가 오직 그녀를 잡겠다고 호텔 모든 입구를 막아버렸으니 그녀 혼자서 빠져나가기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것이다. “손님, 여긴 가면 파티예요. 가면을 써주세요.” 홀의 입구에서 직원이 경도준을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괜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은 경도준은 옆에 놓은 가면을 마구 골라 착용한 뒤 안으로 들어섰다. 경도준은 추적기의 위치를 따라 찾아갔으나 가방만 보이고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옷을 갈아입고 파티 안에 들어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속도도 빠르네! 또 한발 늦은 거야! 지금 그녀의 몸에 추적기도 없고 옷도 갈아입었을 테니 이 넓은 홀에서 그녀를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다 방법이 있지! “그래요. 도와줄게요.” 가면 파티장 사이에서 고하진을 바라보고 있는 진우남의 눈빛에는 의미심장한 기운이 곁들어 있었다. 이 여자는 누구인 걸까? “갑시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은 그 자세 그대로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가 제안한 요구가 그다지 힘들다고 느끼지 않은 것이다. 생각보다 일들이 더 순조롭게 잘 풀려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고하진은 진우남을 따라나섰다. 바로 그때 그녀의 허리가 누군가의 손에 잡혔고 그녀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낯선 남자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고하진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남자와 눈빛이 마주친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떠한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는 평온한 눈빛을 지니고 있는 이 남자한테서 숨이 막힐 듯한 위험을 느끼고 만 것이다. 약간 어두운 불빛에 가면을 쓴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기는 하지만 그 위협적인 기운으로 그녀는 어쩌면 아까 침대에 수갑을 채운 그 남자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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