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고분고분한 사람을 괴롭히다
이소희는 절대 하강우가 발표회 현장에 가지 못하게 할 거라고 속으로 맹세했다.
그녀는 촌놈인 그를 3일 내로 쫓아버릴 생각이었다.
송아영의 비서가 된 이소희는 절대 순진하지 않았다. 그녀는 수완 좋은 노련한 직장인이었다.
하강우처럼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은 처리하기가 아주 쉬웠다.
두 사람은 백화점으로 들어갔고 이소희는 싸구려 옷을 몇 벌 고른 뒤 하강우에게 탈의실로 가서 입어보라고 했다.
이때 안소영이 걸어왔다.
안소영은 이소희의 대학 동기였고, 하늘 그룹이 고찰 리스트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비서인 이소희 덕분이었다.
“이 비서, 안녕.”
“오 대표, 오랜만이야.”
“아까 그 사람은 누구야?”
“송 대표님이 최근에 채용한 비서래. 촌놈이야.”
비서?
머리를 굴리던 안소영은 곧바로 깨달았다.
송아영이 롤스로이스를 탄 유승철을 보내 하강우를 마중 나온 이유는 그와 파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송아영은 똑똑한 편이었다.
파혼한 뒤 하강우에게 비서 자리를 내어줬으니 말이다.
촌구석 출신인 하강우에게 있어 한스 그룹의 비서가 된 건 큰 복일 것이다.
하지만 하강우는 그런 복을 누릴 자격이 없었다.
그날의 비참했던 모습을 떠올린 안소영은 곧바로 화가 끓어올랐다.
그녀는 하강우를 잘리게 하고 싶었다.
“이 비서, 그날 내가 열차를 타고 올 때 변태를 한 명 만났었거든. 그런데 저 촌놈이랑 엄청 닮은 것 같아. 혹시 같은 사람일까?”
안소영은 찍어뒀던 사진을 찾아서 보여줬다.
이소희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무척 기뻤다.
“맞아. 바로 저 촌놈이야. 그냥 촌놈인 줄로만 알았는데 변태였을 줄이야! 이 사진 나한테 보내줘. 인사팀에 얘기해서 잘라버리라고 해야겠어.”
안소영은 서둘러 사진을 보내주고는 루이뷔통 가방 안에서 뷰티샵 카드를 꺼내 이소희에게 건넸다.
“이 비서, 여기 뷰티샵 꽤 좋던데 시간 되면 한 번 가봐.”
안소영의 선물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소희는 익숙하게 뷰티샵 카드를 건네받아 자기 가방 안에 넣었다.
“안 대표, 걱정하지 마. 이번에 고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회사는 아주 많지만, 마지막까지 남는 회사는 반도 안 될 거야. 하지만 안 대표는 성의가 있으니 하늘 그룹은 틀림없이 리스트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탈의실 문이 열렸고 곧 하강우가 나왔다.
“이 비서, 그러면 일 봐. 난 먼저 가볼게. 다음에 내가 밥 살게.”
안소영은 또각또각하는 소리를 내면서 떠났다.
이소희는 힐끗 보더니 말했다.
“이걸로 해주세요.”
옷을 산 뒤엔 하강우를 데리고 직원 기숙사로 향했다.
송아영은 좋은 방을 내어주라고 했지만 이소희는 하강우를 데리고 지하실로 향했다.
그녀는 습하고 어두우며 창문조차 없는, 쓰레기 더미 옆 쥐와 바퀴벌레가 가득한 방으로 하강우를 데려갔다.
“여기서 지내.”
“송 대표님이 지시한 건가요?”
“뭐 불만 있어?”
“아뇨.”
“기숙사에서 쉬고 있어. 오늘은 출근 안 해도 돼. 내일 오후 네 시 반에 회사로 와.”
이소희는 하강우를 골탕 먹일 생각이었다.
하강우가 잘리길 바라서 말이다.
이소희가 떠난 뒤 하강우는 기가 찬 얼굴로 기숙사를 바라보았다.
노인이 찾아준 약혼녀들은 참 형편업1ㅅ었다.
‘나한테 이딴 방을 내어준다고? 내가 견디지 못하고 먼저 이혼하자고 하길 바라서 그러는 건가? 일단초를 손에 넣지 못한다면 절대 떠나지 않겠어!’
회사로 돌아간 뒤 이소희는 곧장 대표 사무실로 향했다.
“하강우는?”
“그 촌놈은 회사 규율을 무시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기숙사에 짐을 두고 바로 회사로 오라고 했는데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안 오겠다고 하고는 기숙사에 퍼질러 잤어요!”
“피곤한가 보지. 신경 쓰지 마.”
“대표님, 저도 피곤해서 그러는 거로 생각해서 좋은 마음으로 오늘은 오지 말고 내일 오전 9시에 회사에 출근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자기는 평소에 점심이 돼서야 깨나니까 오후쯤에나 출근할 수 있대요. 그것도 자기 기분을 봐야 한대요. 저렇게 게으른 사람은 우리 회사에서 일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저런 직원이 있다면 다른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회사에는 엄연히 규정과 규율이 있는데 저렇게 막 무시해도 되는 건가요?”
이소희는 이렇게 고자질하면 송아영이 버럭 화를 내면서 하강우를 해고할 줄 알았다.
하지만 송아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하 비서는 내가 직접 관리할 거야. 인사팀에 얘기해. 하 비서 출석은 신경 쓰지 말라고. 그리고 인사 평가도 없다고 전해. 내가 직접 할 거니까.”
이소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머리가 어지럽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출석 관리도, 인사 평가도 안 하고 대표님이 직접 관리한다고? 일개 비서 따위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걸 누린단 말이야? 송 대표님과 몇 년 동안 함께 일한 나조차도 그런 대우를 받지 못했는데!’
겨우 성질을 참고 있던 이소희는 결국 폭발했다.
그녀는 하강우를 쫓아내기 위해 히든카드를 꺼낼 생각이었다.
그녀는 하강우가 정상적으로 입사하는 걸 꼭 막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후환이 없을 테니 말이다.
이소희는 휴대전화를 켠 뒤 사진을 찾아내 송아영에게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