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서지수는 잠시 멈칫했다. 진하늘이 이런 일까지 알게 될 줄은 예상 못 했다.
“그럼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는 것도 다 알고 있겠네.”
그녀는 어떻게 아이에게 말해야 상처를 최소화할지 고민해 왔으나, 결국 들켜버린 모양이었다.
진하늘은 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서지수는 그를 안으며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미안해.”
“엄마는 정말 바보예요.”
진하늘은 천진난만한 얼굴에 걱정스러운 기색을 띠고는 그녀 손을 잡았다.
“차라리 저를 아빠한테 넘겨버렸어야죠.”
서지수는 잠깐 멍해졌다.
‘혹시 나와 살기를 원치 않는 건가?’
“제가 아빠랑 산다고 해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엄마예요.”
진하늘은 고개를 살짝 들어 단호하게 말했다.
“매일 엄마 보고 싶어질 거고, 방학되면 바로 엄마 만나러 갈 거예요.”
서지수는 웃음을 띠었지만 눈가가 촉촉해졌다.
“엄마가 저를 아빠한테 맡겼으면, 아빠도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을 텐데.”
진하늘의 목소리는 아직 어리지만 말투만은 조금 어른스럽다.
“싫어.”
서지수는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어머니와 진하늘이라고 생각해 왔다.
“난 네가 이런 집안에서 지내는 게 싫어. 네 어린 시절과 미래가 항상 행복하고, 사랑으로 가득했으면 해.”
그래야만 아이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테니까.
만약 진성규, 김진희, 그리고 진수혁과 오래 지내면, 당장은 큰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언젠가 그 가치관에 물들 위험이 크다.
진성규가 바람피우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듯, 진수혁도 밖에 하나둘씩 거느리는 걸 자연스러운 일로 치부했으니, 그런 환경에서 자랄 아이가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엄마는 정말 바보예요.”
진하늘은 다시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동그랗고 맑은 눈동자에는 그녀를 향한 깊은 애정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런 엄마도 전부 좋아요.”
그 말을 들은 서지수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이 해온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엄마.”
진하늘이 부를 때 목소리가 한층 더 귀여워졌다.
“응?”
“오늘 낮에 아빠가 말했던 그 비서 때문인 거죠? 그래서 엄마랑 이혼하는 거예요?”
진하늘의 작고 순진한 얼굴에 망설임이 비쳤다.
서지수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며칠 전 올라왔던 그 기사도 봤고, 오늘은 아빠가 출장 간다고 했는데 몇 시간 동안 운동량이 계속 올라가더라고요.”
진하늘은 작지만 야무지게 상황을 짚었다.
“너...”
서지수는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아이에게 충격이 클까 두려웠다.
동시에 운동량을 확인해서 거짓말을 간파했다니, 이 아이가 너무 어른스럽게 자라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엄마가 걱정할 거 없어요. 저는 괜찮아요.”
진하늘은 크고 맑은 눈으로 그녀에게 안심시켰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어도 자신에게는 여전히 다정하고 자상할 거란 걸 알고 있으니 상관없다고 말이다.
그가 정말로 신경 쓰는 건 오직 어머니, 서지수가 제대로 견뎌낼 수 있을지였다.
서지수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채 아이 등을 살살 두드리며 달랬다.
“엄마랑 아빠가 이혼해도, 우린 둘 다 너를 사랑해.”
그리고 한동안, 서지수는 진하늘과 다른 놀이나 하며 주의를 돌려주었다.
그 뒤로 이틀 동안 집을 구하고 일자리를 찾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5년 동안 전업주부로 지낸 그녀가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명문대 졸업장이 있다고 한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신입들을 앞지르긴 어려운 법이니까.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소채윤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근황을 물어보다가 곧 제안을 내놓았다.
“그럼 우리 회사로 와. 내가 널 최고 대우로 맞아줄게.”
“조금만 더 알아볼게.”
서지수는 친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만약 내가 이쪽에서 일을 잘하면 상관없지만 잘못되면 괜한 말이 나올 테니까.’
“그래도 안 되면 그때 갈게.”
“그럼 네 이력서라도 좀 보자. 내가 수정 해줄게.”
소채윤은 전문 배우이면서도 소진 그룹 산하 엔터 회사를 이끄는 사장이기도 했다. 이런 쪽 일은 물론 이력서 보는 눈도 충분히 있을 터였다.
서지수는 고민 끝에 이력서를 보냈다. 그러자 소채윤은 한숨을 쉬며 투덜거렸다.
“아니, 너 왜 대학교 갓 졸업한 신입처럼 솔직 담백하게만 써놨어? 진수혁이랑 몇 년이나 같이 살면서 아무것도 배운 게 없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