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그 남자의 부재중 전화
진현수는 그녀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 술에 취해 얌전히 잘 줄 알았는데 통밤을 지새우며 토하고 아무 말이나 내뱉고 또 잠깐 잠잠해지다가 계속 토하기를 반복했다.
진현수는 밤새 바삐 돌아치다가 날이 서서히 밝아질 때 겨우 침대 맡에 엎드려 쪽잠을 잤다.
한편 성시연은 숙취로 괴로워 잠을 설치다가 곧장 깨어났고 어렴풋이 정신이 들었다. 깨질듯한 머리가 어젯밤에 얼마나 마셨는지 몸소 말해주고 있었다.
낯선 환경과 침대 맡에서 곤히 잠든 남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의 두통이 더 심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
그녀가 왜 진현수네 집에 있는 걸까?!
기억이 파편처럼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녀는 이런 저 자신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릴 심정이었다. 통화기록을 확인하고 나서야 어젯밤에 진현수에게 전화했다는 걸 알아챘다. 그밖에도 강찬우한테서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는데...
그녀는 멍하니 넋을 놓았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강찬우가 왜 갑자기 그녀에게 이토록 많이 전화한 걸까?
성시연이 깨어나자 진현수도 비몽사몽 한 채 일어나서 그녀를 쳐다봤다.
“깼어?”
그녀가 강찬우의 부재중 전화를 들여다보는 걸 힐끔 보더니 진현수가 해명했다.
“너 어젯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인사불성이 됐어... 강찬우 씨한테서 걸려온 전화인 걸 보고 일부러 안 받은 거야. 괜히 오해를 사면 안 좋잖아 너한테.”
진현수는 그야말로 꼼꼼하고 섬세한 사람이다. 성시연과 강찬우의 관계도 어느새 정확하게 짚어냈으니 말이다.
성시연은 난감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래도 한때 나를 좋아해 줬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하다니, 이보다 더 뻘쭘할 순 없었다.
“미안해,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먼저 갈게. 얼른 좀 쉬어.”
진현수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잠깐만, 아침이라 쌀쌀해. 너 어제 외투도 더럽혀져서 일단 내 거 입고 가. 여기 택시 잡기 불편하니까 내가 데려다줄게.”
성시연이 거절하려고 할 때 진현수가 미리 알아챈 듯 계속 말을 이었다.
“어젯밤에 통밤을 지새웠는데 데려다주는 것쯤이야 뭐가 문제겠어? 괜찮아,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
성시연은 결국 입가에 다다른 말을 꾹 집어삼켰다. 그녀는 지금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창피해서 미칠 지경이니까...
이때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는데 이연아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그녀가 전화를 받을 때 진현수가 외투를 걸쳐주었다.
성시연은 일부러 전화에만 집중하는 척하며 그의 배려를 외면했다.
“연아야, 어제는 잘 들어갔어?”
곧이어 이연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지금 내 안부가 문제야? 아직 SNS 안 봤지? 대체 누가 몰래 찍어서 올렸는지 지금 너랑 현수 씨 사진으로 도배됐다고. 어떡해 시연아?!”
성시연은 도통 두뇌가 작동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뭐? 뭐라고?”
이연아도 더는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아 전화를 끊고 링크를 보냈다. 클릭해보니 어제 진현수가 그녀를 데리고 차에 올라탈 때 누군가가 찍은 사진인데 성시연은 마치 연체동물처럼 진현수의 몸에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이 유난히 애틋하게 나왔고 게다가 그녀가 취기에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니 사람들의 상상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
[모 병원 신경외과 여의사 문란한 사생활 유출, 술집 드나들며 재벌 2세와 사치스러운 술 파티.]
댓글에는 이미 익명으로 성시연에 관한 정보와 병원 이름까지 낱낱이 밝혀졌고 진현수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맑은 하늘에 내리친 천둥 벼락처럼 성시연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강찬우가 전화한 이유도 바로 SNS의 기사 때문이란 걸 그제야 알아챘다.
진현수는 그녀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휴대폰을 뺏어와 쭉 훑어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럼에도 일단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괜찮아, 다 근거 없는 헛소문일 뿐이야.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일단 너부터 집에 바래다주고.”
성시연은 난생처음 이런 일을 겪는지라 화나면서도 무기력해졌다.
“미안해, 어제 너한테 전화만 안 했어도 이렇게 휘말리지는 않을 텐데...”
진현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다고 했지? 가자 이만.”
성시연은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걸음을 비틀거렸고 이에 진현수가 자연스럽게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대문 앞에 다다랐을 때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진씨 저택 입구에 세워진 검은색 롤스로이스를 발견했다. 차 앞에는 강찬우가 떡하니 서 있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아침 바람과 반듯한 자세로 서 있는 그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처럼 느껴졌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자세와 표정, 담담해 보이는 저 눈빛 속에 싸늘한 한기와 소외감이 감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