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하룻밤 사이에 염아연은 나에게 서른 통이 넘는 전화를 걸었다.
부재중을 부며 나는 조금 웃음이 났다.
“그렇게 임선아를 도와주고 싶으면 왜 직접 나서지 않는 건데?”
친구로서 말리는 것쯤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번 생에 난 그저 방관자가 될 생각이었다.
임선아에게는 자신의 선택을 할 자유가 있었고 나는 이번 생에 임선아에게 모든 것을 잃는 게 어떤 느낌인지 보여줄 생각이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평온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이른 아침, 아침 식사를 마친 나는 임선아와 한우현이 딱 붙은 채 행복한 얼굴로 밖에서 돌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딱 봐도 밖에서 밤을 보내고 온 듯했다.
임선아는 머리가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은 어제 입었던 옷이었다.
나는 속으로 냉소를 흘렸다.
플레져 호텔?
어제 한우현은 다른 여자와 그곳에서 나왔었다.
어쩌면 임선아를 데리고 간 방이 자고 나온 그 방일 수도 있었다.
정말 더럽기 그지없었다.
두 사람도 마침 나를 발견했고 눈이 마주치자 한우현은 시선을 피했으나 임선아는 한껏 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우현의 귓가에 대고 뭐라고 말하자 한우현은 임선아를 끌고 황급히 다른 길로 도망쳤다.
그것을 본 나는 냉소를 흘렸다.
그저 나를 찾아와 귀찮게만 하지 않으면 두 사람의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어떻게 나갔는지는 그들의 일이었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학교에서 출발한 나는 다시 회사로 향했다.
오늘의 대본은 이미 어느 정도 수정이 되었고 오디션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찾아온 사람들 중 얌전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여자가 하나 있었다.
“안녕하세요, 은이라고 해요. 오은이요.”
“대본은 봤습니까?”
“네. 봤어요.”
대화를 하는 내내 여자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몹시 청순한 모습이었다.
“그럼 카메라 테스트 시작하죠.”
나는 옆에 있는 감독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니 감독은 여자의 외모에 만족스러운 듯했다.
파트는 빠르게 시작됐고 대학을 중심으로 한 학원물이었다.
5분도 되지 않아 자리에 있는 모두가 손뼉을 쳤다.
“좋아요! 너무 좋아요. 딱 원하던 첫사랑 이미지예요!”
대본을 쓴 원작가도 여자의 외모가 자신이 글을 쓸 때 상상하던 이미지 그대로라고 칭찬했다.
오은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감히 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감독이 내 곁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아니면, 저 사람으로 정할까요? 오늘 밤에 식사 자리 마련할 테니까 같이 한잔하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 속뜻을 알아차렸다.
이 업계에는 확실히 이런 접대가 많았다.
특히 오은이 같은 신인은 올라가려면 이번 술자리를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술자리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전부 내 기분에 달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바로 계약하죠.”
감독은 놀란 얼굴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정말로 이대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