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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병실은 조용하기만 했다. 강다인은 창백한 표정으로 입만 뻥긋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도 없이 설명을 해보았지만, 오빠들은 믿지 않았다. 강서준은 침을 꼴깍 삼키더니 결국 손을 내려놓으면서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강다인을 쳐다보았다. “큰형이 돌아올 때까지도 이러면 난 너 못 도와줘. 알아서 잘 생각해 봐.” 강서준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이곳을 떠났다. 강다인은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느낌에 다시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자신을 비웃듯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뭘 바라겠어. 전생처럼 오빠들한테 잘 보이려고 고개를 숙였다가 결국 집에서 쫓겨나 정신병원에 갇히는 거?’ 강다인은 또다시 그렇게 살 수 없었다. “이거 받아요.” 이때 눈앞에 거즈로 감싼 얼음주머니 하나가 나타났다. 강다인은 퉁퉁 부어오른 얼굴에 얼음주머니를 갖다 대면서 옆에 있는 남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까는 고마웠어요.” 그의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 “왜 설명할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강다인은 고개를 숙인 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수도 없이 설명해보았다는 말, 믿으실 거예요? 심지어 증거까지 내놓았는데 제가 거짓말하는 줄 알고 믿지 않더라고요.” 이 둘은 잠시 침묵에 빠지고 말았다. 강다인은 더이상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은 강다인이 말 잘 듣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못 믿기 어려울 텐데요?” 강다인은 멈칫하고 말았다. ‘정말 내 말을 믿는 거야?’ 이석훈은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가 그녀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댔다. “열 내렸네요.” 그의 손이 차서 시원하기만 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아까처럼은 고통스럽지 않았다. 강다인이 그의 손목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이 상처, 교통사고 때문에 생긴 상처예요?” 이석훈은 깜짝 놀라더니 재빨리 손을 거두고 링거 빈 병을 회수하고는 잠시 후에야 대답했다. “네. 교통사고 때 생긴 상처 맞아요.” 그는 테이블 위에 얹은 손으로 몸을 지탱하면서 강다인을 등지고 있었다. 역광이라 그가 도대체 무슨 표정을 하고있는지 몰랐다. “저도 다리에 있는데.” 강다인은 치마를 위로 걷어 올리더니 말했다. “여기요. 선생님 상처랑 닮지 않았어요?” 이석훈은 가늘고 하얀 허벅지에 유난히 눈에 띄는 상처를 발견하고 말았다. 하지만 치마를 너무 높게 들어 올려 잠깐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다인 학생, 남자 앞에서 함부로 치마를 들어 올리지 마세요.” “보건실 선생님이시잖아요.” 이석훈도 남자인지라 침을 꼴깍 삼켰다. ‘이런 걸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나?’ 이석훈이 계속해서 말했다. “치료할 수 있는 상처를 왜 계속 내버려 둔 거예요?” 강다인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심장이 찌릿찌릿하게 아파져 오는 느낌이었다. 셋째 오빠인 강남준은 이 상처가 부모님을 의미한다면서 나중에 시간 날 때 직접 치료해 주겠다고 했다. 이 말을 믿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허벅지에 있는 이 상처가 싫다면서, 영원히 치료해 줄 마음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강다인이 부모님을 죽게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다인은 낙인과도 같은 상처를 남겨두고 평생 마음에 기억하기로 했다. 그때 충격받은 강다인은 정말 자기가 부모님을 죽인 줄 알고 더욱더 오빠들한테 잘 보이려고 애썼다. 강다인은 과거가 생각나 호흡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지만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어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왜 치료하지 않은 거예요?” “저는 남자라 상관없어요. 여자는 그래도 치료하는 것이 나을 거예요.” 강다인은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나중에요.” 이석훈은 고개를 숙인 그녀를 보면서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고 옆에 앉아 TV를 켰다. 그러다 지금 방송되고 있는 것이 오빠 강별이 참가한 경기가 아니라 다른 게임 방송인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강별이 김지우의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이번 시합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한성 이씨 가문의 도련님을 상대로 지고 말았다. 강다인은 전생에 강별이 시합에서 패배한 것도 모자라 상대방한테 무시당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화가 난 그는 돌아오자마자 강서준, 강하늘, 강우주, 강별, 강다인과 함께 패밀리 크루를 새로 만들었다. 예선전에서 패배했다고 해도 패자부활전이 있었다. 이들은 패자부활전에서 역전하고 결국 마지막 전국대회에서 한성 이씨 가문의 도련님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강다인은 시합에서 이기려고 매일 대량의 시간을 들여 게임을 연습했고, 한성 이씨 가문 크루 팀원의 특징을 연구하기도 했다. 김지우는 패밀리 크루에 속해있지 않았다. 게임 소질이 없었기 때문에 후보선수나 할 뿐 시합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강다인은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오빠들과 함께 게임하는 것을 좋아했다. 심지어 이 시합을 위해 수능을 한쪽에 내팽개칠 정도였다. 가장 중요한 시합을 이기고 우승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오빠들은 시합을 멈추고 강다인과 김지우를 교체시켰다. 오빠들은 강다인의 노력을 짓밟은 채 강다인이 아닌 김지우과 함께 챔피언 단상에 올라섰다. 김지우는 강다인의 것이어야 할 트로피를 들고 오빠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TV로 게임화면을 보고있던 강다인은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 듯 아프기만 했다. “왜 울어요? 비극 드라마도 아니고. 어떤 포인트에서 감동한 거예요?” 강다인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아까는 전생이 생각나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휴지를 건넨 이석훈의 손은 가늘고 긴 예쁜 손이었다. 강다인은 휴지를 건네받으면서 부끄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 게임을 할 줄 알아요?” “다인 학생, 지금은 시험 준비가 중요하지 게임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석훈은 편안히 의자에 앉아 강다인을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시합에 집중했다. 강다인은 시합 화면을 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강인 크루가 패배할 거예요.” 강인 크루라하면 강별이 속해있는 팀이었다. 이석훈은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뭘 좀 아나 봐요.” 시합이 끝나고, 강인 크루는 역시나 패배하고 말았다. 강다인은 방송을 통해 강별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키보드를 부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강별은 늘 그랬듯이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강다인은 그가 패배한 모습에 내심 기뻤다. 돌아오면 다시 크루를 만들겠지만, 강다인은 절대 강씨 가문을 위해 시합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신의 노력으로 프로게이머가 되어 직접 대학 등록금을 벌어 자신을 먹여 살리겠다고 다짐했다. 오빠들은 툭하면 용돈을 안 주겠다고 협박하면서 좋은 학교를 포기하고 김지우가 있는 학교로 가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강다인은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강씨 가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프로게이머가 지금은 핫하지 않지만, 내년부터 라이브 방송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었다. 게임 경험이 있는 강다인으로서는 이것이 가장 빠르고도 쉽게 돈 버는 방법이었다. 강다인은 속으로 결심을 내렸다. 게임 방송이 끝나고, 이석훈은 강다인 옆으로 가 링거 바늘을 빼주었다. 이석훈은 강다인의 손등에 지혈 밴드를 붙여주면서 말했다. “약은 테이블 위에 있으니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강다인이 약을 챙기고 보건실에서 나오자마자 어떤 젊은 남자가 보건실로 들어와 거들먹거리면서 말했다. “형, 웬일로 미인 구출 작전이야? 그런데 저 사람 학교에서 소문이 좋지 않던데? 학교 게시판에도 욕이 어마어마하더라고. 절대 미인계에 속아 넘어가지 마.” 이석훈은 편안히 의자에 기대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왜 아직도 안 갔어?” “궁금해서. 왜 하필 이 고등학교에 왔는지. 형이 시합 보러 안 와서 석민이가 불안한 마음에 계속 찾았잖아. 하마터면 강별 그놈한테 질뻔했어. 이유를 알려주면 바로 갈게.” 이석훈은 마스크를 벗고 옷소매에 가려진 상처를 드러냈다. 고준성은 보자마자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았다. “언제 적 일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는 거야. 그 사고는 형이랑 상관없다고! 설마 저 여자아이가...” “그만해!” 이석훈은 눈을 감은 채 그를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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