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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강다인은 이재필 교장의 말을 듣고 순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재필이 이 이야기를 꺼낼 줄은 강다인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반대편에 있는 강별과 김지우를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은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강별의 표정은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예전에는 강다인이 항상 그의 뒷꽁무늬를 쫓아다니기만 했고, 그를 곤란하게 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게다가 강별은 항상 오빠로서 높은 위치에 서는 데 익숙했기에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죽을 만큼 싫었다. 이때 김지우가 곧바로 나섰다. “다인 언니, 언제 이렇게 대단해졌어? 평소에 집에서 몰래 공부했어? 우리가 전혀 눈치 못 챘잖아. 언니가 좋은 성적을 내니까 부정행위로 의심받을 정도라니. 그래도 오빠가 제일 먼저 학교로 달려와서 도와줬잖아. 사실 오빠는 언니를 정말 아끼는 거야.” 김지우가 강별에게 퇴로를 열어주자 강별은 차갑게 말했다. “지우야, 그런 말 하지 마. 어떤 배은망덕한 인간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강별은 김지우의 태도에 더욱 만족스러워했다. 이것이야말로 동생다운 모습이었다. 강다인은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맞아, 오빠가 제일 먼저 학교로 와주긴 했지. 그런데 그다음엔 뭐 했더라? 선생님께 내가 정말 부정행위 했다고 말하더니, 내 머리를 억지로 숙이게 해서 반성문까지 쓰게 했지. 전교생 앞에서 사과하게 만든 건 덤이고. 그렇게 좋으면 너도 그런 대접 한번 받아볼래?” 김지우는 바로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별은 화가 나 얼굴이 벌게지며 말했다. “강다인, 네가 몰래 공부한 걸 말도 안 해놓고, 내가 오해하게 만든 건 네 잘못 아니야? 그래, 네가 성적이 올랐다고 치자. 그런데 이런 식으로 굴면 재밌어?” 그때 이재필이 나유빈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 강다인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의심했던 학생이 누구였죠? 불러서 사과하도록 하세요.” 나유빈은 즉시 그 두 명의 학생을 불렀다. 두 사람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강다인이 정말 부정행위를 한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선생님, 우리가 말했잖아요. 강다인이 부정행위로 좋은 성적을 얻었다고요. 조사 결과가 나왔어요?” 나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조사해 본 결과 강다인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어. 이제 너희 둘 강다인에게 사과해.” 박지민과 서예정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강다인이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니? 그게 가능해?’ 김지우는 얼른 착한 척을 하며 말했다. “다인 언니는 정말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어. 아까 내가 너희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이제 언니에게 사과해.” 이 한마디로 김지우는 교묘하게 빠져나가며 잘못을 전부 따까리들에게 떠넘겼다. 두 사람은 마지못해 강다인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우리가 잘못했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됐어.” 나유빈은 강다인을 보며 물었다. “혹시 더 요구할 게 있니?” 강다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없습니다.” 나유빈은 만족한 듯 말했다. “다인이는 최근 정말 열심히 했어. 반면에 지우 넌 이번에 성적이 크게 떨어졌더라.” 김지우는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특히 강다인이 좋은 성적을 낸 상황에서 자신이 이 정도 성적에 그쳤다는 건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변명했다. “저, 제가 시간에 쫓겨서 그랬어요. 다음에는 안 그럴 거예요.” 강별 역시 체면이 깎인 듯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좋은 성적이 뭐가 중요해. 나중에 프로게이머로 이름 날려서 번 돈이 이 성적 따위보다 훨씬 값지지.” 김지우도 내심 동의했다. 나유빈은 이런 가족들의 태도에 기가 막힌 듯 김지우를 보며 말했다. “지우 넌 다인이를 본받아야겠네.” 김지우는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돌리고 교무실을 뛰쳐나갔다. 강별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강다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쩌다 성적 한번 잘 나왔다고 굳이 지우 앞에서 잘난 척할 필요가 있어? 지우는 게임팀 때문에 성적이 떨어진 거라고. 너 같은 게 무슨 자격으로 잘난 척을 해?” 강다인은 천천히 눈을 들어 그를 보며 말했다. “내가 잘난 척했어?” 이때 이재필이 나섰다. “내가 듣기로는 다인 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요. 담임 선생님이 한 말인데, 가족으로서 그렇게 편애하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강별은 순간 말문이 막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편애라니요, 그냥 다인이는 원래 그런 애예요.” 그는 그 말을 남기고 교무실을 나가 김지우를 따라갔다. 강다인은 이재필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 네가 실력이 있으니 당연히 받아야 할 평가야. 교실로 돌아가렴. 선생님들과 회의하면서 이런 문제를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어.” 강다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교무실을 나섰다. 몇 걸음 걷다가 복도에 서 있는 이석훈을 발견했다. 그는 흰 가운을 입고 벽에 기대어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눈과 마주치자 강다인의 심장이 이유 없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석훈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결과는 어땠어요?” “당연히 내가 이겼죠! 교장 선생님이 새로 문제를 풀게 했는데, 이번엔 월말고사보다 더 잘 봤어요.” 강다인은 자신감 넘치게 고개를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이석훈을 마주하자 승리의 희열이 비로소 의미를 가진 듯했다. 이석훈은 살짝 내려다보며 느릿하게 물었다. “그 사람들이 사과했어요?” 강다인은 잠시 멈칫했다. 김지우와 강별을 말하는 걸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희생양들만 사과했어요. 정작 뒤에서 꾸민 사람들은 안 했죠. 근데 전 상관없어요. 방금 이미 제대로 한 방 먹였으니까요!” 그녀는 여전히 기분이 좋았다. 이석훈의 온화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수업 끝나고 나한테 와요.” 그는 짧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강다인은 복도 끝에서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는 발길을 돌려 교실로 돌아갔다. 원래 떠들썩하던 교실은 조금 조용해져 있었다. 곧 담임이 들어와 강다인의 성적이 정당하며 부정행위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김지우는 책상에 엎드린 채 기분이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평소 좋아하던 케이크에도 흥미를 잃은 듯했다. 그녀는 속으로 결심했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강다인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 방과 후 강다인은 곧장 보건실로 갔다. 이석훈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긋 보며 물었다. “숙제 다 했어요?” “선생님이 틀린 문제 다시 보라고 하셨는데, 다 끝냈어요.” 사실 그녀는 틀린 문제가 많지 않았다. 틀린 건 전부 복습하지 못했거나 아직 완벽히 익히지 못한 부분들이었다. 이석훈은 옆에 있는 컴퓨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게임 켜요. 계정 있어요?” “있긴 한데 새로 계정 하나 만들고 싶어요.” “잘됐네요. 나도 부계정 키우는 중이거든요.” 이석훈은 본계정으로 그녀와 게임을 할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강다인은 게임을 실행한 뒤 대충 [스위트 레몬]이라는 닉네임으로 새 계정을 만들었다. 게임 화면에 접속한 뒤 그녀는 이석훈을 보며 물었다. “선생님 닉네임은 뭐예요? 친구 추가해야죠.” 그녀는 살짝 그의 화면을 들여다보았고 그의 캐릭터 닉네임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시간을 거슬러]라는 이름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녀는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 전생에 그녀에게 온라인 남친이 있었는데, 그의 닉네임 역시 이와 똑같았다. 이석훈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보고 있어요? 친구 추가 승인해요.” 강다인은 순간 얼굴이 붉어지며 서둘러 친구 요청을 수락했다. 그의 캐릭터를 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전생에 그녀가 그 사람을 만났던 시기와는 다소 맞지 않았다. 혹시 우연의 일치일까? 강다인은 몰래 그를 힐끔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이런 닉네임으로 지었어요?” 이석훈의 손이 잠시 멈칫하더니 그는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그냥 대충 지은 거예요.” 강다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우연의 일치일지도 몰랐다. 게임이 시작되자 둘은 초보 구역으로 이동해 미션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강다인은 금방 눈치챘다. 이석훈이 단순 초보자가 아니라는 걸. 아마 그녀를 위해 새로 부계정을 만든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딱히 캐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어딘가 너무나 익숙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강다인이 물었다. “선생님, 본계정 이름도 이 이름이에요?” “아니요.” “그럼 오늘 처음 이 이름으로 계정 만든 거예요?” 이석훈은 그녀를 잠시 쳐다보며 말했다. “네, 왜요?” 강다인은 급히 고개를 떨구며 얼굴이 점점 달아올랐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는 속으로 고민했다. ‘선생님이 정말 그 사람일까?’ 하지만 전생과 지금은 만난 시기가 전혀 맞지 않았다. 이전 생에서 그녀는 부활전이 끝난 뒤에야 그 사람을 만났다. 그는 그녀에게 게임 실력을 키우는 법을 알려주었고, 덕분에 그녀는 끝까지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비록 죽을 때까지도 그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그가 베풀어준 도움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특히 거리에서 방황하던 시절 그의 도움은 그녀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주었다. 강다인은 자꾸만 집중이 흐트러졌다. 둘은 겨우 초보 구역 퀘스트를 마치고 다음 퀘스트로 이동했을 때 다른 팀과 마주쳤다. 강다인은 그 팀의 캐릭터 닉네임을 보자마자 비웃음을 지었다. 바로 강별과 김지우였다. 이석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붙을래요?” “붙다니요? 우리 둘 다 부계정에 장비도 형편없는데 덤볐다간 죽을 게 뻔하잖아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다인은 묘하게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이석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사람들이 퀘스트를 거의 끝낼 때쯤, 체력이 소진될 때를 노려서 보스를 뺏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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