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장
나는 자조적인 말투로 말했다. 원래는 서로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 생각이었지만 주한결은 여전히 굳은 얼굴을 한 채 거들떠도 보고 싶지 않다는 기색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임지아도 앞으로 나서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진짜 우연이네요. 진아 선배랑 엄 교수님도 룸 예약했어요? 괜찮으면 우리 합석할래요?”
이것 역시 우리가 미리 정해놓은 시나리오였다.
내가 막 대답을 하려는데 주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같이 이렇게 중요한 날에 굳이 남을 둘이나 불러서 흥을 깨야겠어?”
그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일부러 ‘남’이라는 말에 강조했다.
주한준의 말도 맞았다. 아무리 우리 둘 사이에 남들과는 없었던 친밀함이 있었다고 해도 말이다.
임지아는 되레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입꼬리에 보조개가 폭 파이게 웃었다.
“진아 선배랑 엄 교수님이 왜 남이에요. 게다가 사람이 많을수록 떠들썩하고 좋잖아요.”
임지아의 목소리는 몹시 달콤했고 끝음은 또 사랑스러웠다. 어린 아가씨가 애교를 부리자 도무지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엄겨울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이야?”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오늘은 저랑 한준 오빠가 사귄지 백일째 되는.”
임지아의 사슴 같은 눈망울에 행복이 가득했다.
“기념일이에요.”
엄겨울은 그 말에 곧바로 나를 쳐다봤다.
그의 두 눈에 연민이 스치더니 입술만 달싹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임지아를 따라 연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확실히 남이 같이 하는 건 적절하지 않을 것 같네요. 엄 교수, 우리는 따로 먹어요.”
이 대답은 아무 문제 없었고 이제는 임지아가 어떻게 받아치냐의 문제였다.
“에이, 진아 선배, 한준 오빠가 농담한 거예요.”
임지아는 나의 손을 잡으며 흔들더니 애원하는 눈빛으로 주한준을 쳐다봤다.
“오빠, 말 좀 해봐요.”
담담한 눈동자가 내 얼굴을 훑더니 주한준이 조금 풀어진 안색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니까, 네가 하고싶은 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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