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장
영화관 안, 엄겨울은 앞쪽의 커플석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해, 몰랐어...."
우리의 좌석은 중간쯤에 있었는데, 전후좌우에 모두 커플들로 꽉 차 있었다.
나는 애써 침착한 척했다.
"영화가 곧 시작되니 자리에 앉자."
털끝만큼이라도 선을 넘을까 봐 걱정된 엄겨울이 단정하게 옆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쓴물이라도 삼킨 듯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나도 저런 “멍청한 짓”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점은, 엄겨울은 무의식적이라는 것이고, 몇 년 전의 나는 일부러 그랬다는 것이었다.
일부러 공포영화를 골라 가장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 주한준의 품에 안기려 했다.
아무 욕심도 없고 욕구도 없어 보이는 부처 같은 주한준이 남몰래 나를 좋아하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주한준은 고고한 모습으로 선을 조금도 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그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생각에 잠겼던 내가 문득 손끝이 뜨거워져 고개를 숙여 보니, 뜨거운 음료를 쥐려던 내 손이 조심하지 않아 엄겨울의 손등에 부딪힌 것을 보게 되었다.
엄겨울이 흠칫하더니 깜짝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막 설명하려던 순간, 가방 안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나는 이 기회를 틈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발신자를 확인한 나는 그만 넋을 잃었다.
뜻밖에도 주한준에게서 온 전화였다.
또 무슨 시킬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미간을 주무르고 난 뒤, 전화를 받아 인사치레로 물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이제 막 아홉 시라, 사실 그리 늦은 편도 아니었다.
주한준의 가벼운 기침 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더니 곧이어 비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 팀장은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 모범 직원이 아니었던가? 왜 오늘은 다르지?"
나는 한숨을 내쉬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슨 분부가 있으시기에?”
"분부라 할 건 아니고, 나 대신 카톡에 플러그인을 깔아 달라고 부탁하려던 거야.”
일 얘기였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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