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장
솔직히 주한준한테 정말 실망했다.
만약 임지아가 완고하게 질타한 거라면 주한준은 단도직입적으로 위협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이런 일에 낭비하고 싶지 않아 참으며 말을 이어갔다.
"협상할 때 융통성이 없다는 걸 저도 인정해요. 하지만 제가 관찰한 데 의하면 한 대표님은 저희 계약에 혹했어요. 하지만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아서 한 번 더 해보겠다는 겁니다."
"말 못 할 사정은 무슨."
주한준은 콧방귀를 뀌더니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가 자기 찾으러 완남까지 왔다고 일부러 엿 먹이는 거죠. 남 팀장 아주 한 대표 생각 많이 하네요."
주한준의 비꼬는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저 계약을 성사하려는 건데 왜 이렇게 비꼬는 거야?'
"왜? 안준연 친구라서 내가 교훈 줄까 봐서 그래요? 당신의 그 좋은 동생한테 면목 없을까 봐?"
"좋은 동생"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거슬렸다.
나는 숨을 들이쉬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주 대표님, 조금 진정하셨으면 좋겠네요."
"진정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야."
주한준은 나를 힐끗 보고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충분히 혹 할만한 조건을 내걸었다. 한석훈이 주제를 몰라서 그렇지."
주한준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로 나올 줄 몰랐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한 번만 더 해보려는 거예요. 하루만, 하루도 안 돼요?"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라 주한준이 기다려 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미 인내심을 잃은 주한준은 차갑게 답했다.
"시간 아까워."
임지아는 말을 마치고 가려던 주한준을 세우고는 주한준의 팔을 잡고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화내지 마요. 진아 선배한테 한 번만 기회를 더 줘요. 혹시 알아요? 정말 진아 선배 말처럼 말 못 할 사정이 있는지."
주한준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숙여 임지아를 보며 말했다.
"넌 남 팀장을 위해 사정하는데 재미 들렸어?"
"프로젝트를 위해서 그런 거죠."
임지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오빠도 우리 조건이 혹할만하다고 했잖아요. 한 대표님이 바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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