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12장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주한준의 술잔은 갑자기 테이블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어느새 술잔은 부서져 산산조각이 났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담담한 눈빛으로 나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새 술잔을 들고 단숨에 술을 원샷했다. 나도 술을 마시는 제스쳐를 취하며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즐거운 것 같았지만 사실 분위기는 어딘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순간, 나는 왠지 아주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의 생일 파티에서 사고를 치는 건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형, 진아 선배가 저렇게 얘기했는데 형도 마음 표시를 해야죠.” 그때, 김기온이 엄겨울을 부추겼다. 그 바람에 분위기는 더욱 어색해졌다. 나는 정말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잠시 후, 엄겨울은 술잔을 들고 건배 인사를 시작했다. “진아가 이렇게 나를 추켜세우니, 꼭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그는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는 눈가에 웃음을 머금고 나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나는 그의 지시에 따라 술잔을 들었다. 그렇게 식사는 약 한 시간 가량 지속되었다. 레스토랑에서 나오니, 주한준의 마이바흐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지훈은 차에서 내려, 곤드레만드레 취한 주한준을 부축해 그를 뒷좌석에 태웠다. 임지아도 그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 잠시 후, 그녀는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며 한 마디 했다. “선배님, 같이 가실래요?” 나는 당연히 웃으면서 거절했다. 누가 커플 사이에 끼고 싶어 할까? 주한준의 차에 탈 바에야 몇 천원짜리 지하철을 타는게 더 좋았다. “선배님, 겨울이 형한테 데려다 달라고 해요.” 김가온이 말했다. “시간도 늦었는데 위험해서 안 돼요.” 나는 얼굴 새빨갛게 달아오른 엄겨울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니야. 나는……” “같이 가.” 엄겨울은 불쑥 내 말을 끊었다. “학교에서 대학가 부근에 방 두개짜리 집을 마련해줬어. 어차피 같은 길인데 같이 가.” 나는 순간 엄겨울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엄겨울은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서류 가방에서 마스터 키를 꺼내며 말했다. “이제 믿을 수 있겠어?”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술에 살짝 취한 남자를 데리고 지하철을 함께 탔다. 하지만 결국엔 엄겨울이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는 조금 전 식사 자리에서 한 행동을 반성하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러자 엄겨울은 피식 웃었다. “진아야. 사실 오늘 너무 즐거웠어. 이런 네 모습…… 아주 보기 좋아.” 그의 말에 나는 약간 어떨떨했다. “이게 바로 우리 컴퓨터과의 자랑, 남진아지.” 엄겨울은 나를 컴퓨터 학과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어딘가 낯설고도 익숙했다. 그의 말은 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잠자코 창가에 앉아 만신창이가 된 내 인생을 생각하며 씁쓸하게 입꼬리를 슥 올렸다. 지금의 나한테 ‘자랑’이란 단어가 어울릴까? 휴대폰 화면이 잠시 반짝였다. 클릭해 보니, 주한준이 또 다시 친구 신청을 보내왔었다. 나는 2초 동안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끄고 침실로 돌아갔다. 방심한 사이에 금세 잠이 들어버렸다. 한편, 오영은이 전화를 걸어왔을때, 나는 지하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주한준은 도대체 뭐하는 거지? 대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정말 끝도 없다니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2분 동안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알고보니 주한준은 우리 작업실에 게임 기획부를 추가하고, 임지아가 기획부 매니저직을 맡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알아야 할 건, 게임의 개발은 주로 기획, 기술 및 미술 세 가지 필수 부문이 있어야 했다. 기획이 그 첫 번째이자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럽 앤 딥>의 전체 게임 맥락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때문에 지금 상황에 임지아가 개입하는 것은 확실히 부적절했다. “난 주한준과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그는 그저 돈을 투자한 것 뿐이야.”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주한준이 전에 임지아가 게임의 세부 사항에 개입 할 수 있다고 분명히 말한 적 있어?” “그런 적은 없어.” “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나는 이성적으로 분석했다. “임지아가 중간에 개입하려면 그럴 듯한 명분이 있어야 해. 만약 임지아가 선만 넘지 않으면 우리도 투자자들과 마찰을 빚을 필요도 없어." 주한준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리가 있어. 그럼 좀 기다려보자.” 오영은이 말했다. 잠시 후, 전화를 끊고 나는 재빨리 작업실로 달려갔다. 막 작업실에 들어서자 프런트 데스크 책임자인 이하연이 의자를 밟고 올라서서 작업실 문 위의 표지판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기술부 사무실이 새겨진 표지판이 코 앞에서 조금씩 뜯겨져 나갔다. 그때, 임지아가 커피를 손에 들고 해맑게 웃으며 탕비실에서 걸어나왔다. “참, 선배님. 제가 저희 단체 카톡방을 만들었어요. 제 친구 신청을 받아주세요. 그러면 제가 그룹으로 초대해 드릴게요.” 그녀의 말투는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눈빛에 오만함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주한준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단체 그룹방을 만드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일이 많은 게 적은 것보다 낫다는 태도로 그들에게 협조하고 있었다. 뜻밖에 주한준도 그 단체 채팅방에 있었다. 주한진의 프로필 사진과 임지아의 프로필 사진은 앞뒤로 오붓하게 이어져 있었다. 보아하니 투자 산업도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바쁜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대화창을 닫고 코드만 열심히 두드렸다. 이내, 단체방에서 첫 번째 문자가 왔다. 임지아가 보낸 것이었다. 나에게 코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겠는가고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향후 작업 진행 상황을 보름에서 주 1회에 보고할 것을 예의바르게 요구했다. 그때, 오영은은 곧바로 나한테 문자를 보냈다. [아직 정식 와이프도 아닌데 우리한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단 말이야?] [투자자가 아직 반대하지 않았잖아. 그냥 시키는대로 해. 혹시 알아? 우리의 태도를 높이 평가해 추가로 투자할지?] 그러자 오영은은 곧바로 따봉을 날렸다. [나랑 1년 넘게 같이 있더니 마인드부터 달라졌구나.] [다 언니가 잘 가르쳐 준 덕분이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임지아의 이런 행동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후에 임지아가 데이터 베이스에 접촉했을 때, 그만 실수로 데이터를 모두 삭제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그 바람에 김가온은 대노했다. “그 데이터들은 우리가 한 달 이상이라는 시간을 들어서 만든 거야. 넌 마우스 하나만 까딱거려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겠지만 우리에게 있어서는 한 달 동안 헛수고를 한 셈이 되는 거라고.” 김가온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작은 코드는 비록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전체 틀이 무너질 수 있었다. 임지아는 자책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전 그냥 제가 도와줄 건 없는지 보려고……" “부탁인데 제발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그냥 보기 좋은 꽃처럼 가만히 있어주면 안 될까?" 김가온의 이 말은 조금 도를 지나쳤다. 이 말에 임지아의 눈에 서리가 내려앉았다. 그녀는 곧 울것만 같았다. 나는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붉히며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 담담하게 한 마디했다. “싸워봤자 아무 소용없어. 지아야. 다음에 다시 그러면 절대 안 돼.” 임지아는 멍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정작 울어야 할 건 우리가 아니에요? 울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전 이 작업실을 물에 잠기게 할 수도 있어요.” 김가온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김가온을 불러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팀의 화합이 제일 중요했다. 임지아를 찾아다녔지만, 끝내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때문에 마지못해 임지아에게 문자를 남긴 후, 작업실로 돌아가 데이터를 하나 하나 주고 받았다.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바쁘게 보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임지아가 단체방에 메시지를 보낸 것을 발견했다. [선배님, 전 정말 쓸모없는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해요. 제 잘못으로 여러분들께 누를 끼쳤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울고 있는 이모티콘도 함께 보냈었다. 임지아가 이 메시지를 보낸 것은 두 시간 전이었다. 그때면 나랑 김가온이 임지아를 찾다가 아무리 찾아봐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아 마지 못해 작업실로 돌아왔을 때였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린 소녀의 잘못을 계속 잡고 늘어질 수는 없었다. 막 임지아의 전화번호를 찾아 그녀에게 전화를 걸려고 할 때, 작업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남 팀장, 잠깐 얘기 좀 합시다.” 주한준은 침착한 얼굴로 작업실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담담한 눈빛에 잠시 말이 막혔다. 얼마 전, 주한준은 임지아 때문에 작업실로 들이닥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특별히 임지아가 퇴근할 때까지 작업실에서 기다렸었는데 그때에도 두 눈이 발갛게 충혈된 임지아를 보고 가슴아파 했었다. 이번이 두 번째로 작업실로 들이닥친 것이었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