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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장

“내일 저녁에 하씨 가문에서 할머니 생신 연회가 있으니까 나랑 같이 저택으로가.” “나?” 나는 놀란 얼굴로 하지훈을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우리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닌데...” “하! 아무 사이가 아니야?” 하지훈이 비웃는 것을 본 나는 서둘러 설명했다. “내 말은 다른 사람들 눈에 우리는 이혼한 사이이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내가 가면 적절하지 못한 거 아니야?” “그딴 거 신경 안 써.” 하지훈은 담배연기를 뱉어내며 담담하게 대꾸했다. 나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당연히 내가 가도 되는 장소와 아닌 장소를 따져야지. 이런 장소에 내가 참석하는 건 적절하지 않아. 고청아 씨가 가면 몰라도.” 하지훈은 싸늘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더니 비웃었다. “널 데리고 놀러 가는 줄 알아? 이젠 네가 궁상맞은 처지가 됐으니 너에게 모욕을 주려고 연회에 데리고 가는 거야. 네가 처음에 어떤 도도한 태도로 우리 하씨 가문을 조롱했는지 잊지 마. 지금은 너희 집이 망했으니 이 기회에 하씨 가문 사람들도 널 모욕하고 싶지 않겠어?”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날 모욕하게 하려고 연회에 데려가는 거라고?” 하지훈을 바라보며 묻자 그는 고개를 돌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런 게 않으면?” 하지훈의 말에 나는 순간 가슴이 욱신거렸다. 하지훈이 나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한 말이라고 내가 또 착각을 한 모양이다. 연회에 고집스럽게 날 데려가겠다고 하는 이유가 하지훈의 마음속에 내가 고청아보다 더 중요해서는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사실 알고 보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역시 나는 하지훈에게 일말의 환상도 가져서는 안 된다. 나는 시선을 내리며 대꾸했다. “걱정하지 마. 내일 퇴근하면 바로 돌아올 테니까.” 하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날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미간에 짜증이 진득이 묻어 있었다. 내 앞에서 하지훈은 항상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훈의 모습에 나는 자연스럽게 결혼 3년 동안 나도 그의 앞에서 언제나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게 되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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