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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가만히 있던 지수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너한테 연락했다는 건, 내가 이미 마음의 결정을 했다는 뜻이야.” 신설리는 미소 지으며 차의 시동을 걸면서 말했다. “네가 진작에 허정운 씨를 차버리길 바랐어. 네가 정성껏 다리 치료도 해줬는데 해외에 있는 네 동생이랑 엮여있을 줄은 몰랐네. 아주 그냥 쓰레기야! 남자 생각은 그냥 접어. 역시 너는 돈이나 버는 게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신설리는 말을 이어가면 갈수록 화가 치밀었다. 차의 속력도 따라서 높아졌다. 지수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 좀 침착해져 봐. 결혼이라는 무덤에서 탈출하자마자 진짜 무덤에 묻히고 싶진 않으니까.“ 농담까지 하는 지수현의 모습을 보자 신설리는 그제야 안도하며 지수현을 떠보듯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지수현이 먼저 연락하지 않더라도 신설리는 얼마 못 가 지수현을 먼저 찾아갔을 것이다. “일단은 좀 쉬려고. 회사는 요즘 좀 어때?” 그동안 지수현은 모든 정성을 허정운에게 몰부었고 직접 설립한 패션 회사인 오트 쿠튀르 MY의 운영을 주주들에게 맡겼다. 지난 3년간, 지수현은 통장 잔고에 돈이 찍히는 것만 확인할 뿐, 경영에서는 손 떼고 있었다. 지수현은 잔고에 얼마가 찍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기가 회사 운영을 내려놓기 전에 제정했던 경영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면 나름대로 잘 돌아가고 있을 거라고 여겼다. 지수현의 말에 신설리는 표정이 조금 굳어지는가 싶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회사 일이라면 일단 푹 쉬고 다시 얘기하자......” 지수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신설리의 태도로 보아하니 회사 상황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지수현은 지금 회사 업무를 인계받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 일단 나 공항으로 좀 데려가 줘.” “어디 가려고?” “아직 모르겠어. 그냥 아무 곳이나 골라서 가려고.” 공허한 눈빛의 지수현은 손을 손잡이에 올려둔 채,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피곤한 기색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았다. 신설리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일지라도 사랑 앞에선 이성을 잃는 순간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뒤, 차에서 내린 지수현은 신설리에게 말했다. “캐리어를 느릅만 저택으로 가져다줘.” “알겠어. 언제 올 거야?” “한 달 정도 있다가 올게.” “그래, 기다릴게!” 지수현은 덤덤히 손을 흔들며 인사한 뒤, 공항에 들어섰다. ...... 한 달 뒤, 한샘 그룹 시애틀 지사의 회의실에서는 허정운이 팀장과 함께 다음 분기 운영 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허정운의 엄마 정현정이었다. 허정운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5분 쉬었다가 합시다.” 회의실을 나선 허정운은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정현정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흘러나왔다. “정운아, 나 수현이를 만나려고 저택에 여러 번 갔었는데 계속 집을 비우더라. 혹시 너희 싸웠니? 그래서 걔가 나한테 일부러 그런 식으로 시위하는 거야?!” 정현정의 말투에는 불만과 분노가 가득했다. 안 그래도 지수현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던 정현정은 이번 일로 지수현에 대한 마음의 골이 더 깊어졌다. 허정운은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 그는 요즘 시애틀에서 바쁘게 지냈다. 첫 며칠은 그래도 지수현이 미안하다고 연락해 오기를 기다렸지만 나중에는 업무에 치여서 아예 지수현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정현정의 연락을 받고서야 허정운은 깨달았다. 지수현으로부터 한 달째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제가 이따가 연락 한번 해볼게요. 수현이한테 볼 일이라도 있으세요?” 정현정은 아니꼬운 말투로 말했다. “곧 너희 할머니 생신이잖니? 같이 할머니 생신 선물 고르러 갈까 했는데 며칠째 바람 맞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러니까 그때 연정이랑 결혼했더라면 얼마나 좋아? 적어도......” 허정운은 미간을 찌푸리며 정현정의 말을 잘랐다. “알겠어요, 일단 전화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허정운은 덤덤하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어서 그는 지수현에게 연락했다. 몇번이고 전화했지만 통화가 어려웠다. 허정운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수현이 허정운의 번호를 차단한 것이 틀림없었다. 허정운은 분노를 억누르며 강수영에게 말했다. “지수현한테 연락해!” “알겠습니다.” 강수영은 지수현에게 연락했지만 지수현은 받지 않았다. 허정운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강수영은 허정운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 전화를 안 받습니다......” 허정운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어. 일단 난 미팅을 마저 해야 할게. 강 비서는 저택의 관리실에 연락해 봐.” 한 시간 뒤, 허정운은 회의실에서 나왔다. 강수영은 겁에 질린 채 허정운에게 다가갔다. “대표님, 관리실에 연락했더니 대표님께서 출장 오신 바로 이튿날에 지수현 씨가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고 합니다.” 허정운과 지수현은 비밀 결혼이었다. 그 때문에 지수현에 대한 강수영의 호칭은 줄곧 아가씨였다. 예전의 허정운이었다면 아무런 생각이 없었겠지만 지금만큼은 허정운도 반사적으로 표정을 구겼다. 그는 마음속에 피어나는 불길함을 억지로 억누르며 냉랭하게 말했다. “지금 지수현이 어디 있는지 당장 알아봐. 그리고 한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공권을 예약해 줘.” “알겠습니다. 그럼 지연정 씨도 저희와 함께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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