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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어찌 이리 나약한 척하는 것이냐? 고작 이 정도로 못 버티겠느냐? 도망쳐선 아니 된다.” 커다란 손에 발목이 잡혀버린 강희진은 저도 모르게 신음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온몸이 흠뻑 젖었는데 바람이 불어오니 한기가 스며들어 솜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그녀의 발목을 움켜쥔 손에 갑자기 힘이 가해지더니 강제로 그녀를 끌어당긴 다음 허리를 감싸 안았다. 강희진이 눈을 번쩍 뜨자 시야에 축축하게 젖은 이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남자는 핏줄이 튀어나올 듯한 손으로 뒤에서 그녀를 안으면서 턱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죽은 거 아니었어?’ 정실부인의 딸인 강원주를 대신해 황자를 낳은 후 강희진은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고 뼈와 살마저 늑대의 먹이가 되었을 텐데 어찌하여 아직도 살아있단 말인가? “지금 정신을 딴 데 팔 여유가 있느냐?” 또다시 누군가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강희진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가느다란 손으로 이불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이 실렸다. 몸의 불편함이 심해지던 그때 상대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못 버티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짐이 보기엔 아직 버틸만한 것 같은데.” 남자의 낮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순간 강희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앞의 남자를 똑똑히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낯익은 검은 눈동자에 수줍음과 놀라움으로 붉어진 그녀의 얼굴이 비쳤다. 남자의 옷이 다 풀어 헤쳐졌고 밝은 황색의 곤룡포가 침상에 반쯤 걸쳐져 있었다. 평소 오만하고 귀티가 흐르던 얼굴이 술기운 때문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강희진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폐하?” 그녀가 부르든 말든 남자의 입술이 그녀의 백옥같은 피부에 닿았다. 강희진은 또다시 몸을 파르르 떨었고 이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머릿속에 다른 생각은 사라지고 저도 모르게 숨을 헐떡이면서 떨었다. ... 날이 점점 밝아오자 선우진은 그제야 침상에서 일어났다. 탁자 위의 붉은 초는 거의 다 타들어 가고 있었고 바닥에 떨어진 곤룡포의 소매 끝부분이 약간 젖어 있었다. 여자는 그의 팔을 잡고 웅크린 채 누워 있었는데 눈가가 아직 촉촉했고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에 손자국과 붉은 흔적이 가득했다.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선우진의 눈빛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원래는 이렇게 빨리 그녀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지금 궁에 황후 자리가 비어있고 강원주는 정승의 적녀였다. 후궁과 조정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어찌 그 위선적인 인간의 기세를 드높여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책봉식에서 과음한 바람에 내관에게 이끌려 침소로 돌아오자마자 욕망을 참지 못하고 가져버리고 말았다. “폐하, 조정에 나가실 시간이옵니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내관이 공손하게 말했다. “소인이 의복을 갈아입혀 드리겠나이다.” 선우진은 생각을 거두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인기척에 강희진도 놀라 눈을 떴다. 남자의 탄탄한 가슴과 어깨의 붉은 잇자국이 한눈에 보였다. 몸에 걸친 곤룡포가 느슨했지만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가 돋보이면서 몹시 위풍당당했다. 선우진은 강희진이 깨어난 걸 알아채지 못하고 옷을 입은 다음 나가려 했다. 강희진은 이유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꿈을 꾸는 건 아닐까 두려워 본능적으로 그의 손가락을 잡았다. “폐하...” 그러자 선우진이 발걸음을 멈추고 얼굴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 눈동자가 어둡고 깊어서 기분이 좋은 건지 화가 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내관이 기침하면서 눈치를 줬다. “마마, 폐하께서 조정에 나가셔야 하옵니다. 이러시면...” 순간 멍해진 강희진은 손가락을 파르르 떨다가 황급히 손을 놓았다. “소첩이 무례를 범했사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선우진의 시중을 3년간 들었기에 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조금 전 그의 손을 잡은 건 너무나 주제넘은 행동이었다. 그는 강희진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내려다보았다. 비단 이불 속에 웅크린 채 부드러운 어깨만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이 흩어져내려 가뜩이나 손바닥만 한 얼굴이 더욱 작아 보였다. 그 모습에 선우진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이례적으로 인내심을 보이면서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쉬고 있거라. 오늘 밤에 다시 오겠다.” 긴장해서 잔뜩 굽었던 등이 드디어 펴졌다. 얼굴에 스치는 차가운 감촉에 정신이 살짝 돌아왔다. 강희진은 입술을 깨물면서 고분고분 대답했다. “알겠사옵니다.” 목소리가 어찌나 간드러지는지 마음이 다 녹아내릴 정도였다. 선우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간밤에 그의 품에 안겨있을 때도 그를 더욱 갈망하게 만들었다. 원래는 울면서 용서를 빌게 할 생각이었는데... 선우진은 고개를 돌려 시선을 거두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침소를 나섰다. 이불속에서 입술을 깨물던 강희진의 두 눈에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정말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지금쯤 강원주는 막 화비로 책봉되었을 것이고 그녀는 적녀를 보필한다는 명목으로 궁에 들어와 궁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강원주를 대신하여 승은을 입기 위해서였다. 비록 강희진 또한 정승의 딸이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교방사 죄인의 서녀였다. 강상목이 강제로 첩으로 들였으나 지위가 평범한 노비만도 못했다. 강상목은 원래 강희진을 할아버지뻘 되는 대신에게 첩으로 팔아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강원주가 입궐한 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강씨 가문은 황실의 외척이라는 부귀영화를 포기할 수 없어 어머니로 협박하면서 강원주와 얼굴이 비슷한 서녀를 궁에 들여보내 강원주 대신 황실의 후손을 낳게 했다. 전생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치자 강희진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강원주에게 수모와 고통을 당하면서도 승은을 입기 위해 몸을 바쳐야 했다. 강씨 가문은 그녀가 입궐한 지 6개월 만에 어머니가 천연두에 걸렸는데도 그냥 죽게 내버려 두었고 시신까지 태워버린 후 지하 물도랑에 던져버렸다. ‘하늘이시여... 이번 생에는 절대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승은을 입을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어머니와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강씨 가문에도 전생의 피의 복수를 할 것이다.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강희진이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보니 선우진을 모시는 내관 정허운이 웃으면서 다가오는 것이었다. “마마, 편히 쉬셨사옵니까?” 그의 말투가 매우 공손했고 뒤에 궁녀 두 명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소인이 폐하께서 마마께 내리신 하사품들을 명광궁으로 가져다 놓았나이다. 지금 명광궁으로 돌아가시겠사옵니까? 아니면 좀 더 쉬시겠사옵니까?” 강희진이 가느다란 손가락을 움츠리면서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사람의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목소리였다. “일단 목욕물을 준비해주게.” 정허운은 남녀의 일에 대해 잘 몰랐지만 3대에 걸쳐 궁중의 비빈들을 모셔왔다. 화비 강씨 같은 요물은 정말 처음이었다. 무뚝뚝한 황제마저 그녀를 눈감아주는 게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그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궁녀들에게 강희진을 맡기고 공손하게 물러났다. 두 궁녀가 강희진을 부축했다. 하지만 쑥스러운지 그녀의 매혹적인 몸에 남은 야릇한 흔적을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새하얀 명주 수건 위에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아직 축축한 기운이 남아 있는 듯했다. 강희진의 피부가 너무나 부드러워서 목욕을 할 때도 힘을 세게 주지 못했다. 조금만 세게 문질러도 몸에 붉은 자국이 생겼다. 강희진은 두 궁녀에게 몸을 맡겼다.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부축을 받으면서 명광궁으로 돌아갔다. 그녀 전에 현빈, 숙빈, 덕빈 세 명이 있었지만 선우진은 그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어제 소식이 이미 사람들에게 파다하게 퍼졌다. 명광궁으로 돌아가는 내내 궁녀들은 공손하고 아첨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철없는 어린 계집종들은 강희진의 목덜미에 남은 붉은 흔적을 보면서 수군거렸다. ‘화비마마께서는 입궁하자마자 승은을 입으셨으니 앞으로 얼마나 귀한 영광을 누리실까?’ 전생에 강희진은 그들의 이런 시선에 부끄러워하고 당황했지만 이젠 익숙해져 아무렇지도 않게 명광궁으로 향했다. 선우진의 시중을 3년간 들면서 매번 이렇게 시달려야 했다. 그는 낮에는 고고하고 냉정한 황제였지만 침상에 오르면 심술궂은 어린아이가 돼버렸다. 강희진이 매번 울면서 빌어야 만족했고 일부러 흔적을 남겨 남들에게 보여주기를 좋아했다. 마치 사람들에게 그녀가 그의 소유물이라는 걸 알리려는 것처럼. 그 3년을 떠올리던 강희진은 다리마저 풀리는 것 같았다. 어느덧 명광궁 문 앞에 도착했다. 궁인들은 고개를 숙여 강희진을 마마라 불렀고 강원주의 몸종 춘희가 웃으면서 그녀를 부축했다. 그러고는 두 궁녀에게 두둑한 돈주머니를 쥐여준 다음 차가운 얼굴로 안으로 들어갔다. 춘희가 손목을 어찌나 꽉 잡았는지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아팠다. 두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지만 반항하진 않았다. 살짝 열려있는 문 사이로 춘희가 강희진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강희진이 비틀거리면서 발을 내딛자마자 많은 금은보화 장신구를 늘어놓고 웃을 듯 말 듯 하는 강원주를 보았다. “그래도 쓸모가 있긴 있구나. 폐하의 승은을 다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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