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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그는 병상 옆으로 다가가 앉았고, 얼굴에는 한없이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말했다. "좀 괜찮아? 사과 먹을래?" 진이나는 병상에 누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좀 힘들어, 입맛도 별로 없고." 진이나는 입구에 서서 들어오지 않는 그녀를 열정적으로 맞이했다. "가희야, 얼른 들어와." 입구에 서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가희는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병실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괴이할 정도로 이상하고 조용했다. 가희는 손바닥에서 계속 땀이 나는 것 같았으나, 하도훈은 그녀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그는 진이나를 도와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주었다. 진이나가 친절하게 그녀에게 물었다. "가희야, 뭐 먹고 싶어?" 가희는 진이나를 흘깃 보았는데, 진이나의 표정도 아주 자연스러웠다. 마치 세 사람 중에 이상한 사람은 가희 혼자뿐인 것 같았다. 가희도 그런 이상한 기분을 떨쳐내려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다. "아무거나 다 좋아." 그녀의 대답을 들은 진이나는 웃으면서 옆에 있는 하도훈에게 애교 부리듯이 말했다. "도훈아, 포도 좀 씻어줘, 가희가 포도 좋아해." 병상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그래."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자매 사이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진이나의 이불에서 손을 떼고 일어나 탕비실을 향해 걸어갔다. 하도훈이 자리를 뜬 후에도 가희는 원래 있던 자리에 계속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진이나는 다시 열정적으로 가희에게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가희야, 이리 와, 침대 옆에 와서 앉아." 가희와 진이나는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비록 한 지붕 아래 살고 있기는 하나, 대화를 나눈 적도 별로 없었다. 가희는 아주 부자연스러웠으나, 남의 말을 잘 따르는 편이었기에, 진이나가 오라고 하자 그녀는 병상 옆으로 다가가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이어 진이나가 물었다.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 그 말을 들은 가희는 갑자기 손을 꽉 쥐고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대답했다. "다 좋아." 가희의 눈빛은 계속 땅을 보고 있었고 마치 진이나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듯했다. 두 사람 사이에 순간 침묵이 맴돌았다. 이때 다행히 간병인이 들어왔고, 진이나는 간병인에게 말했다. "가희한테 우유 한 잔 따라주세요." 간병인은 "네, 이나 씨."라고 대답했다. 말을 마친 간병인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왔다. 사실 가희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주 어색해서 계속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간병인이 우유를 건네줄 때도 가희는 계속 고개를 떨구고 있었기에, 순간 조심하지 않아 우유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옷에 다 쏟고 말았다. 차가운 우유가 옷에 쏟아지자, 가희는 순간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진이나도 순간 멈칫하다가 간병인을 바라보았다. 간병인은 서둘러 사과하면서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방금 잘 잡지 못했네요." 가희는 얼른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잘 받지 못했어요, 저 옷 좀 정리하고 올게요." 진이나가 말을 하기도 전에, 가희는 얼른 탕비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탕비실 입구에 도착해서야 하도훈이 안에서 과일을 씻고 있다는 게 생각이 났다. 가희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셔츠 소매의 단추를 풀어 검은색 소매를 말아 올렸다. 단단하고 힘 있는 그의 팔뚝이 드러났고, 그는 약간 허리를 숙인 채로 꼼꼼하게 포도를 씻고 있었다. 물줄기가 그의 손가락 틈새로 흘렀고, 기다란 그의 손가락이 물방울이 맺힌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꼼꼼히 씻고 있었다. 가희는 자기도 모르게 그가 거친 숨을 내쉬면서 지금 포도를 씻고 있는 그 손으로 자기 손을 꼭 감싸고 있던 화면이 떠올랐다. 가희는 심장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순간 호흡마저 멈춘 듯했다. 입구에 사람이 있다는 걸 눈치를 챈 하도훈은 고개를 들고 그곳을 바라보았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린 채로 물었다. "왜 그래?" 가희는 우유에 젖은 청바지 부분을 손으로 잡고 있었고, 모기소리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유를 좀 쏟아서..." 하도훈은 그녀의 바지가 젖은 것을 보고, 몸을 돌려 과일을 들고는 그녀에게 살짝 자리를 비켜주며 말했다. "들어와서 좀 닦아." 가희는 그의 말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마음이 혼란스러운 탓인지, 그녀는 바닥에 포도가 한 알 굴러다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하고 밟고 말았다. 순간 포도의 보라색 과즙이 가희의 새하얀 신발을 어지럽혔고, 그녀는 미처 몸을 가누지 못하여 앞으로 기울어졌다. 가희는 너무 놀라 순간 소리를 질렀다. 방금 돌아서던 하도훈이 재빠르게 손에 있던 접시를 내려놓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 그녀를 품으로 안았다. 가희의 얼굴이 강하게 그의 가슴에 묻히게 되었고, 손은 그의 가슴 앞의 셔츠를 세게 잡아, 셔츠가 쭈글쭈글하게 되었다. 익숙한 나무 향이 가희의 코끝을 자극했다. 두 사람의 숨소리는 모두 거칠었고, 둘의 숨소리가 번갈아 들려왔다. 이미 다 씻었던 포도가 접시에서 굴러 나와 바닥에 떨어져 다시 더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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