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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침대 위, 가희는 한 남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남자의 큰 손이 가희의 작은 손을 덮었고,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애타게 부르고 있는 것은 진이나의 이름이었다. "이나야, 이나야." "난 진이나가 아니야, 난 가희야, 가희라고." 하지만 남자는 그녀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언니 진이나와 꽤 닮은 그녀의 얼굴을 잡고 한참을 바라보더니, 그녀에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가희는 이불을 안은 채로 침대에 앉아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이미 단장을 마친 채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잘생긴 얼굴은 무표정을 하고 있어, 아주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이 남자가 바로 하도훈인데, 그는 가희의 이복 언니 진이나의 전 약혼자였다. 가희는 사실 사생아인데, 그녀가 15살이 되던 해에 그녀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고, 이로 인해 그녀에게는 6살 차이가 나는 언니 진이나가 생기게 되었다. 가희가 18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언니 진이나는 약혼식을 하게 되었고, 상대는 강남에서 유명한 재벌가의 아들이었는데,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죽마고우 사이였다. 언니의 약혼식 날, 언니를 데리러 온 남자는 턱시도를 갖춰 입은 남자였다. 그날, 18살이 된 가희는 언니와 오랜 시간 사귄 남자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진중하고 멋있는 그 남자가 부드러운 미소로 언니를 맞이하였다. 그때의 진이나는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모두가 진이나는 태어날 때부터 행운스러운 아이였다고 얘기했지만, 이 모든 게 두 사람이 결혼하려고 했던 3년 후의 그해에 무너지게 되었다. 진이나가 병에 걸린 것이였다. 그것도 아주 심한 백혈병에 걸려,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차례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고 있었다. 진이나에게 적합한 골수를 찾기 위해 가족 전원이 검사를 받았으나 진이나와 맞는 골수는 없었다. 심지어 골수 은행에서도 진이나에게 적합한 골수를 찾을 수 없었다. 본인이 살기 위해, 항상 가희를 차갑게 대하던 진이나는 그녀에게 애걸하듯이 자신을 대신해 아이를 낳아달라고 부탁했다. 가희가 낳은 아이라면, 자신에게 적합한 골수를 제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희는 어릴 때부터 아주 바른 아이였고,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친구도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이런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끊임없이 거절했다. 하지만 언니가 계속해서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게 되자, 연로하신 아버지가 가희에게 애원하였다. "가희야, 제발 네 언니를 좀 도와줘. 너만 동의하면 네 언니가 하도훈이랑 헤어지고, 네가 하도훈의 아내 신분으로 그의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해준다고 했어." 가희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했었다. 비록 아버지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애원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진이나의 어머니 고희숙 여사마저 울면서 그녀에게 부탁했다. "내가 그때 널 받아들여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니? 네 엄마가 병상에 있을 때도, 내가 돈을 보내줘서 네 엄마가 치료를 받을 수 있었잖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가희는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가희는 남자친구 우지성에게 결연하게 문자를 보냈다. "지성아, 우리 헤어지자." 우지성의 답장이 오기도 전에, 가희는 재빨리 전화를 꺼버리고, 두 손으로 핸드폰을 꽉 쥐고 있었다. 그날 이후에도 우지성이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왔으나 가희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달, 하도훈이랑 약혼식을 올린 지 꽤 되는 진이나는 혼약을 취소했고, 가희가 하도훈의 곁으로 가게 되었다. 가희는 이불을 안은 채로 앉아있었고, 가슴 속에서 무언가 요동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 샤워해도 돼?"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계속 침묵을 지키던 남자는 한참이 지나서야 대답했다. "씻고 싶으면 씻어도 돼." 그는 오늘 전처럼 바로 떠나지 않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녀의 말에 답했다. 그리고는 또 한 마디 더 보탰다. "고생했어." 고생했다는 말은 얼마나 공식적인 감사 인사인가!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해." 가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차가운 얼굴을 바라보며 가희는 이 남자가 언니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황당한 일에 동의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가희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언니가 좋아지고, 아빠도 좋아졌으면…" "그래." 그는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신사답게 물었다. "내가 데려다줄까?" 가희는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 나 혼자 집에 갈 수 있어." 그는 당연히 그녀를 강요하지 않았고,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는 이토록 성숙하고 지혜로운 남자였다. 호텔에서 나온 가희는 마치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 같았고, 머리 위의 뜨거운 태양이 심장을 태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오자, 고희숙이 한약 같은 걸 그릇에 담아 와서는 그녀에게 마시라고 했다. 가희는 그게 무슨 약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재촉하는 고희숙의 성화를 못 이겨 단숨에 그 약을 다 마셔버렸다. 고희숙은 가희에게 아이가 빨리 생기고, 빨리 아이를 낳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본인과 남편은 이미 나이가 들어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모든 희망을 가희에게 걸 수밖에 없었다. 가희는 이런 생활을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때 고희숙이 또 말했다. "가희야, 네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돼." 말을 마친 고희숙은 자리를 떠나려고 했고, 가희는 이런 일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웠으며, 누군가 자신을 염탐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녀는 고희숙을 붙잡고 말했다. "이, 이모, 일단 이번 결과를 먼저 볼까요?" 고희숙은 그녀를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본인도 이 일은 급하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란 걸 알았는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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