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모든 입학 작품들이 망가졌기에 심자영은 하는 수 없이 밖에서 화실을 빌려야 했고, Y국에 가기 전에 모든 그림을 완성해야 했다.
화실에 하루 종일 있었기에 그녀는 요즘 계속 주경민과 만난 적 없었고 주성호의 생일이 되어서야 하는 수 없이 출석했다.
연회는 아주 크게 열렸고 손님들도 많았다.
주성호는 장미숙의 옆에 서 있었고, 강유리가 다정하게 주경민의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네 사람이 무대에 서 있으니, 다정한 한가족 같았다. 오히려 추영자와 심자영이 가족이 아닌 것 같았다.
심자영은 이모가 속상해하는 게 느껴져 조용히 손을 잡았고 위로해 주었다. 이모가 슬퍼하는 걸 보자 그녀는 마음이 아팠고 자책했다.
그동안 그녀의 부모님이 남긴 사업 때문에, 그녀 때문에, 이모가 주씨 가문에서 억울함을 많이 당했었다. 그걸 보면서 심자영은 무능력한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특히나 오늘 밤, 이모부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전혀 이모의 체면을 봐주지 않고, 자신의 첫사랑을 데리고 대놓고 연회에 참가했을 때, 심자영은 처음 이모한테 이혼하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성호가 장미숙을 데리고 술을 부으러 간 틈을 타, 그녀가 나지막하게 추영자한테 말했다.
"이모, 그동안 주씨 가문에서 행복하지 않았던 거 알아요, 아니면, 나랑 같이 Y국에..."
"어딜 가려는 거야?"
심자영이 고개를 들자 주경민이 그녀의 앞에 서서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걸 보았다.
그녀는 움찔했지만 애써 침착한 척했다.
"아니야, 방학에 이모랑 바람이나 쐬러 갈 가해서."
주경민이 더 말하려고 했는데, 강유리가 술잔을 들고 와서 그들의 대화를 끊었다.
"민아,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주경민은 하려던 말을 삼켰다.
"아니야, 왜 왔어?"
"아버님이 어머님한테 오라고 했어."
추영자도 애들 앞에서 난감하게 굴기 싫어서 심자영한테 몇 마디 당부하고는 주성호한테로 갔다.
그녀가 가자 강유리가 술잔을 들고 심자영한테 말했다.
"자영아, 방금 아버님이 나랑 민이 약혼식 날짜를 잡았다고 했어, 우릴 축복해 줄 거지?"
심자영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고 술잔을 들고 일어서더니, 애틋하게 서 있는 그들을 보고 억지미소를 지었다.
"오빠, 새언니, 행복하게 살아."
그러고는 술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녀는 주경민의 낯빛이 안 좋아진 걸 보지 못했다.
강유리는 더 환하게 웃었다.
"민아, 나중에 우리 결혼식에, 자영이를 신부 들러리로 세우는 거 어때?"
술잔을 쥐고 있던 심자영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네가 좋을 대로 하면 돼."
심자영은 어색하게 웃고는 술잔을 놓고 떠나려고 했는데 갑자기 사고가 생겼다. 그들 머리 위에 있던 샹들리에가 갑자기 떨어졌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심자영은 피할 틈도 없었다. 샹들리에가 떨어진 순간, 그녀는 주경민이 재빨리 강유리를 품에 끌어안고 뒤로 물러서는 걸 보았다.
오른쪽 손목이 심하게 아파왔고 새빨간 피가 줄줄 흘러 그녀의 치마를 빨갛게 물들였다.
그러나 주경민은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고는 놀라서 우는 강유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모두 놀랐다. 추영자가 재빨리 달려왔는데, 심자영이 피범벅이 되어 있는 걸 보고는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구급차 불러, 자영이 병원으로 데려가!"
추영자는 심자영을 깔고 있는 샹들리에를 밀어내고는 무릎을 꿇은 채로 계속 피가 흘러나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애원했다.
주경민은 그제야 심자영을 보았고, 그녀가 피범벅이 된 걸 보고 다가가려고 했지만, 강유리가 먼저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민아, 나 발 삐었어, 아파."
그 말에 주경민은 바로 걸음을 멈췄고 순간 망설이더니 바로 강유리를 들어 안고는 옆에 있는 호텔 직원한테 말했다.
"병원 보내요."
그러고는 강유리를 안고 뒤도 안 돌아보고 성큼성큼 나갔다.
주성호도 힐끗 보고는 장미숙을 데리고 계속 손님들을 접대했다. 추영자는 사람들의 연민과 비웃는 눈빛 속에서 홀로 심자영을 데리고 다급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심자영은 크게 다쳤다. 팔뚝은 골절되고, 오른손의 힘줄은 날카로운 금속의 끝에 의해 끊어졌다. 두 시간 동안 수술해서야, 겨우 손힘줄을 이어 붙일 수 있었다.
그녀는 병실로 옮겨졌고, 추영자는 그녀 곁에 앉아 그녀가 잠들기를 기다려서야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잠든 줄 알았던" 심자영은 눈을 떴고, 밖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들었다.
"의사 선생님, 제 조카의 상태는 어때요? 완전히 회복되면 그림 그리는 데 문제가 없을까요?"
"여사님, 죄송하지만 심자영 씨의 손목 부상이 너무 심해서 회복이 잘 되더라도 앞으로 전처럼 섬세한 작업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담하지 마세요. 잘 회복하면 언젠가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심자영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눈을 감았는데 그 순간 머릿속에 주경민이 망설임 없이 강유리를 보호했던 모습과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꿈과 엄마의 유언이 오늘 끝이 났다는 걸 알게 됐다.
그녀는 Y국에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날밤, 심자영은 잠에 들지 못했다.
창밖에 햇살이 비쳐서야 그녀는 흐리멍덩하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걸 들었다. 심자영은 간호사인 줄 알았는데 누군가 걸어와 침대 옆에 앉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만지고는 부드럽게 그녀의 눈가에 있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었다.
주경민한테서 나던 은은한 향이 풍겨왔다.
심자영이 눈을 떴고 어둑한 병실 불빛으로, 그녀는 아직 숨기지 못한 주경민의 눈빛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주경민의 눈빛에서 후회와 안타까움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주경민은 바로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뒤로 물러섰다.
"깼어? 아줌마한테 많이 다쳤다고 들었어, 몸조리 잘하고, Y국에는 가지 마."
심자영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아 주경민을 빤히 쳐다보았다.
"언제 안 거야?"
"며칠 전에 네 학교를 지나다가 네 선생님을 만났어, 네가 해외 유학을 신청했고 절차를 다 밟았다고 들었어. 왜 나 몰래 그렇게 큰 결정을 했고, 말 안 한 건데?"
심자영은 그때 연회에서 주경민이 왜 자신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는지 바로 알아챘다. 그때부터 그는 그녀가 거짓말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Y국 가는 걸 막으려고 일부러 안 구해준 거야?"
심자영은 낯빛이 창백해졌고 손바닥에 피가 날 정도로 손에 힘을 주었다.
주경민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안 구해준 건, Y국에 가는 거랑 상관없어. 유리의 꿈이 언젠가 비엔나 금색 홀에서 연주하는 거야, 유리 손이 아주 중요해, 다치면 안 돼."
"그럼 내 손은? 내 꿈은 어떡해? 그건 우리 엄마 유언이야, 다 알잖아!"
심자영은 더는 참지 못하고 흥분에 차서 되물었다.
"자영아, 진정해."
주경민은 철없는 아이를 보듯 눈빛에 무기력함과 피곤함이 섞여 있었다.
"유리는 국제 상을 받은 적이 많아, 하지만 넌 그쪽 분야에 재능이 없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네가 엄마 유언 때문에 그림을 자기 꿈으로 하는 걸 지지하지 않아. 게다가 주씨 가문에서 널 충분히 지원할 수 있으니, 그렇게 힘들게 할 필요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