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미친놈
연수호는 곧장 자신의 바이크를 향해 걸어가더니 긴 다리로 올라타고 싸늘하게 말했다.
“타.”
김유정은 어이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미쳤어? 자동차를 놔두고 바이크를 타게? 허술한 바이크보다 내 오픈카가 훨씬 더 좋거든?”
말을 마치고 나서 운전석에 궁둥이를 붙이기도 전에 커다란 손아귀에 팔이 붙잡혀 질질 끌려 나와 다짜고짜 조수석으로 향했다.
이내 문이 열리고 그녀를 억지로 밀어 넣더니 다시 닫혔다.
연수호의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김유정이 정신을 차렸을 때 연수호는 이미 운전석에 올라탔다.
“미친놈.”
그녀는 나지막이 투덜거리면서도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씰룩거렸다.
연수호가 갑자기 돌아앉더니 바짝 다가와 한 손으로 조수석 창문을 짚었다. 결국 커다란 몸집에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곧이어 입술에 뜨거운 숨결이 닿았고 거침없은 키스는 반항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김유정은 숨이 막히는 느낌에 신음을 내뱉으며 연신 버둥거렸다. 그제야 뒤로 살짝 물러난 연수호는 다시 한번 새빨간 입술을 깨물었다.
비록 고통스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아프게 느껴졌다.
그녀는 입술을 가리고 얼굴을 찡그렸다.
“당신 강아지야?”
연수호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점점 빨갛게 부어오르는 그녀의 입술을 응시하며 무시무시한 경고를 날렸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다시 언급하는 순간 그 입을 꿰매버릴 거야.”
그러고 나서 액셀을 밟자 스포츠카는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김유정은 고분고분 입을 다물었다. 진짜 눈이 돌아버리면 못 하는 짓이 없는 게 바로 연수호였다.
...
경성시의 밤은 불빛이 환했고 유흥과 사치로 가득한 잠들지 않는 도시였다.
김유정이 차에 앉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자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차는 도심을 질주했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자연스럽게 창문에 걸친 연수호는 담배에 불을 붙인 채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었다.
건방지면서도 멋진 모습은 잘생김의 극치를 보여주었고, 다소 어울리지 않은 무난한 검은 팔찌가 손목에서 찰랑거렸다.
이때,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김유정은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결국 미간을 찌푸리고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죠?”
곧이어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수호는 그녀를 힐긋 쳐다보았고 짜증이 가득한 표정을 발견한 순간 누구의 연락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유정아, 주말에 시간 내서 저녁 먹으러 와.”
김상엽의 말투는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다.
“시간 없어요.”
김유정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하준의 여섯 번째 생일인데 누나가 와서 같이 보내줬으면 좋겠대.”
아들을 언급하는 순간 김상엽의 목소리는 한결 다정해졌고, 아버지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녀가 오랫동안 경험해본 적이 없는 감정이기도 했다.
“알았어요.”
전화를 끊기 직전 김상엽이 말을 보탰다.
“수호랑 같이 와. 이러다 얼굴 까먹겠네.”
김유정은 운전 중인 연수호를 힐끔거리더니 금세 시선을 돌렸다.
“워낙 바쁜 사람이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이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연수호는 뼈마디가 선명한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들고 웃는 둥 마는 둥 하는 얼굴로 김유정을 빤히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주말에 유정이랑 같이 갈게요.”
김유정은 그를 흘겨보았다. 그나마 아빠 앞에서는 예의 바른 사위가 따로 없었다.
전화를 끊고 연수호는 김유정의 무릎에 전화기를 휙 던지더니 액셀을 끝까지 밟아 눈 깜짝할 사이에 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녀의 팔을 덥석 붙잡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안으로 끌고 가 벽에 밀착시켰다.
이내 한 손으로 양 손목을 움켜쥔 다음 머리 위로 번쩍 올리고 몸으로 단단히 눌렀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턱을 고정하고 굶주린 늑대처럼 새빨간 입술을 탐했는데 그야말로 난폭하기 그지없는 키스였다.
등 뒤로 차갑고 단단한 벽이 느껴졌고, 김유정은 숨이 막힐 지경이지만 도망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미친놈! 질식해서 죽여버릴 셈인가?’
물론 연수호와 처음으로 하는 키스는 아니었지만 매번 숨이 안 쉬어질 정도라서 무기력하게 신음만 내뱉으며 반항할 수밖에 없었다.
워낙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인지라 상대방이 발버둥 치면 점점 더 흥분되는 듯 눈빛도 서서히 능글맞게 변해갔다.
이내 한 손으로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끌어당기더니 진한 키스를 퍼부었고 마지막 숨결마저 앗아갈 기세였다.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갈 무렵 연수호는 문득 그녀를 놓아주었고, 마치 목적을 이룬 듯 두 눈에 장난기가 묻어났다.
“내가 없으면 잠이 안 온다며? 기껏 소원을 이뤄줬더니 이렇게 약해빠져서 되겠어?”
김유정은 가슴을 들썩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얗고 고운 얼굴도 산소 부족으로 인해 핑크빛이 감돌아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
불이 꺼진 별장 안에서 매처럼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던 연수호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몸매든 외모든 김유정은 충분히 매력적인 여자였다.
유일한 흠이라면 거침없는 말만 내뱉는 입이라고 할 수 있다.
“수호 씨, 아무리 독수공방하고 싶어도 이런 비열한 짓거리로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지.”
김유정의 호흡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곧이어 커다란 손이 목덜미를 감싸더니 앞으로 끌어당겼고, 연수호는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매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독수공방은 관심 없지만 너랑 자는 건 나쁘지 않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유정은 그를 힘껏 밀어냈다.
“이런 뻔뻔스러운 남자 같으니라고!”
하지만 커다란 몸집은 꿈쩍도 안 했고, 연수호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게 최선이야?”
“비켜, 이...”
그러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고 남자의 어깨에 들쳐 업힌 채 2층으로 올라가 침대에 내동댕이쳐졌다.
김유정은 몸을 일으켜 위에서 내려다보는 연수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수호...”
곧이어 산만 한 덩치가 그녀를 덮쳤고 한 손으로 뒤통수를 움켜쥐더니 말랑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거절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리고 능숙하게 원피스의 지퍼를 내렸다. 훤히 드러난 피부에 서늘한 밤공기가 닿자 김유정은 깜짝 놀랐다.
지난 3년 동안 설령 사랑하지 않더라도 결혼해서 연수호와 사랑은 나눈 적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혼인 신고 하고 나서 같이 보냈던 첫날 밤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시달린 탓에 하얀 살갗은 보라색 멍으로 뒤덮였고, 마치 트럭에 깔린 듯 온몸의 뼈가 욱신거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물론 그가 욕구불만인지 아니면 분풀이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짝!
갑자기 들려오는 찰진 소리에 김유정은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결국 연수호의 손바닥에 얻어맞고 나서야 원피스는 물론 속옷까지 벗은 채 어느새 알몸으로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른 생각할 여유도 있어?”
연수호는 입꼬리를 올린 채 비아냥거렸고, 가늘게 뜬 두 눈은 심연처럼 깊었다.
어차피 그녀는 지금 도마 위의 물고기 신세라 도망가기는 글렀고 기껏해야 입씨름이나 가능했다.
김유정이 피식 웃었다.
“수호 씨보다 테크닉이 뛰어난 남자가 있나 생각해봤지.”
연수호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죽고 싶어 환장했군.”
김유정은 체념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이 주둥이가 방정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