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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집으로 가는 차 안. 박강우가 줄곧 음침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차 안 분위기는 팽팽한 저기압 상태였다. 강은영은 조심스럽게 그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여보, 왜 또 화났어?” 지난 생의 기억을 되짚어도 그는 이렇게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모든 관심을 그에게 쏟고 보니 그는 자그마한 실수에도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박강우는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며 싸늘하게 물었다. “이 집에 온 이유가 뭐야?” “응?” “혼자 친정 오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강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이 결혼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강준형은 당당하게 박강우에게 투자를 요구했다. 처음에는 박강우도 어느 정도 부탁을 들어주었지만 점점 시간이 길어질수록 강준형의 욕심은 커져만 갔고 이에 짜증이 난 박강우는 그녀에게 혼자 친정에 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 뒤로 박강우에게서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자 친정에 갈 때마다 강은영을 쓸모없는 자식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박강우와 결혼한 사람이 애초에 강설아였으면 절대 이렇지 않았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집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 그녀가 말이 없자 남자가 음침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박강우가 기억하기로 강형준 일가는 강은영에게 잘해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병원 앞에 버려진 것도 그렇고 10년이 넘도록 딸을 찾지 않은 것도 그랬다. 박강우의 부모님이 그녀를 입양할 시에 뉴스에 그렇게 크게 났었는데도 찾아가지 않은 걸 보면 버린 게 분명했다. 강은영은 짙은 분노가 담긴 그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거만 떠올리면 숨이 막혔다. “그래. 전에는 사랑을 바랐었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박강우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슬픔이 담긴 눈으로 불안해하는 그녀를 보자 조금 전까지 치밀었던 화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품에 안으며 다시 물었다. “지금은?” “지금은 아니야. 신경 안 쓸래.” 강은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난 생에 그 고생을 했는데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박강우의 팔에 얼굴을 비비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당신뿐이야.” 그 말 한마디에 차 안을 무겁게 짓누르던 저기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제부터 무척 지쳐 있는 상태였기에 강은영은 그의 팔에 기댄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별장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린 진기웅은 상사의 품에 안겨 잠든 강은영을 보자 짜증이 치밀었다. 그가 퉁명스럽게 강은영을 깨우려던 찰나, 박강우가 손짓으로 그를 제지했다. 진기웅은 아무리 강은영이 못마땅해도 상사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한참이 지난 후. 창밖이 어슴푸레 밝아올 때쯤, 강은영은 목이 뻐근한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남자의 창백한 얼굴에 그녀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여보, 왜 나 깨우지 않았어?” 그녀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남자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잘 잤어?”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이러다 상처 벌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녀는 박강우의 명령에 따랐다는 건 알지만 그를 말리지 않은 진기웅마저 원망스러웠다. “또 피나는 건 아니지?” 그녀는 급급히 상처부터 살폈다. 셔츠가 깨끗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아침 뭐 먹을래? 내가 직접 만들어 줄게.” 어제 저녁도 직접 해준다고 해놓고 강설아와 박성철이 번갈아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바람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미안했다. 남자는 그녀의 작은 손에 부드럽게 키스하며 말했다. “아줌마들 시켜. 너 집안일이나 시키려고 데려온 거 아니야.” 강은영은 순간 얼굴이 확 붉어졌다. 예전에 박강우와 함께할 때는 항상 싸늘한 인상이었는데 그에게 이렇게 자상한 면도 있을 줄은 몰랐다. “당신도 예전에 날 위해 직접 요리 많이 해줬잖아.” 강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릴 때 박강우는 종종 그녀를 데리고 해연 별장에 놀러왔다. 그때는 별장에 따로 고용인을 두지 않아서 요리 임무는 전부 그가 맡았다. 박강우는 열세 살 때부터 뛰어난 요리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성격이 좀 싸늘하고 무뚝뚝한 것 외에는 완벽한 남자였다. 나중에 강준형 일가가 강은영을 다시 집으로 데려가면서 더 이상 그의 요리를 맛볼 기회가 없었다. 시간이 더 지나 박강우는 부현그룹 대표 자리를 물려받게 되었고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더더욱 기회가 없었다. 예전 얘기가 나오자 박강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네? 난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린 줄 알았지.” “기억해. 옛날 일들 나 다 기억해.” 강은영이 말했다. 박강우는 짙은 슬픔이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녀를 와락 껴안으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강은영이 변한 뒤로 박강우는 줄곧 무엇 때문에 그녀가 이렇게 변했는지 이유를 고민했다. 아무리 허점을 발견하려고 관찰해도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 “내가 말했잖아. 강설아 말만 믿고 당신을 오해했다고. 그런데 다 거짓말이었어. 예전에 강설아가 내 앞에서 당신 나쁜 얘기 정말 많이 했거든. 난 언니라서 그 말을 믿었고.” 강은영은 회귀했다는 사실만 숨기고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박강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체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했길래?” “당신 때문에 여자들 많이 죽었다고 했어!” 그 말을 들은 남자의 표정이 음침하게 굳었다. 물론 좀 과장된 부분은 있지만 강설아 같은 가식적인 인간에 대해 거짓말 좀 보탠다고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래서 그 말을 믿었다고?” 박강우는 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를 세게 튕겼다. 강은영은 울먹이며 이마를 감쌌다. 분명 모든 잘못을 강설아의 탓으로 돌렸는데 어째 뭔가 잘못된 기분이었다. 박강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잡았다. 놀란 강은영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헀다. “처음에는 당신을 믿으려고 했어. 그런데 매일 내 앞에서 그런 얘기만 하는데 세뇌 안 당하고 배겨? 시간이 차차 흐르다 보니 어느샌가 믿게 됐어.” 강은영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의 목을 껴안았다. 물론 그런 작은 거짓말에 넘어갈 박강우가 아니었다. 그는 크게 콧방귀를 뀌고는 다시 물었다. “그래서 지금은? 왜 갑자기 강설아를 의심하게 된 거야?” “당신은 일관적으로 나에게 잘해줬으니까. 나도 완전히 바보는 아니야. 당연히 그런 거짓말에 계속 속아줄 이유가 없지.” 강은영은 진심을 담아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자신을 한껏 치켜세우는 그녀의 말에 박강우도 기분이 좋아졌다. 용기를 내서 눈을 살짝 뜨자 남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은영은 순간 속은 느낌이 들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뭐야? 나 놀린 거였어?” 박강우는 그런 그녀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건 아니고. 키스해도 돼?” “아니! 안 돼!” 강은영은 지난밤 거칠던 그의 몸짓이 떠올라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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