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도시아가 교실을 나서자 유시영이 뒤를 따랐다.
전영미는 유시영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간식을 내려놓고 그 뒤를 따랐다.
“시영아, 너 주은우 찾으러 가는 거야?”
“응, 오랫동안 배드민턴을 못 쳤는데 배드민턴 좀 같이 쳐달라고 하려고!”
며칠 동안 이어진 복습에 유시영도 긴장을 풀고 싶었다.
앞서가는 도시아를 힐끗 쳐다본 전영미가 중얼거렸다. “도시아도 주은우를 찾으러 가는 것 같은데?”
요즘 도시아와 주은우는 매우 가까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아는 각 과목 성적이 모두 우수해. 주은우는 도시아에게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뿐이야. 강성대학교에 입학하기로 작정했으니 어쩔 수 없잖아.”
유시영은 마음이 좀 복잡했다. 지난 3일 동안 자신이 주은우의 눈에는 낯선 사람처럼 보였고, 그녀는 이런 느낌이 매우 싫었다.
“쳇, 주은우가 강성대에 합격한다면, 내가 걔를 따라 주씨 성을 쓸 거야...” 전영미는 시큰둥하게 웃었다.
주은우의 학업 성적은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매번 시험은 거의 꼴찌였다.
전문대라도 갈 수 있으면 조상에게 고마워해야 할 정도인데 대학교에 지원한다니?
운동장.
주은우는 몇 명의 남학생들과 농구를 하고 있었다.
유월의 날씨는 매우 더웠다.
주은우와 진태용의 농구복은 이미 흠뻑 젖었다.
“태용, 공을 받아...”
진태용은 몸을 돌려 3점 라인 밖의 주은우에게 공을 던졌다.
공을 잡은 주은우는 곧바로 점프슛을 했다.
콰당!
3점 슛이 적중했다.
“나이스.”
진태용은 펄쩍 뛰며 주먹을 휘둘렀다.
“젠장, 은우, 너 몰래 연습한 거 아니야?”
“말도 안 돼, 이것도 들어가?”
“...”
상대편은 의기소침해졌다.
“운이 좋았어.”
주은우는 미소를 지으며 땀을 닦았다.
“어, 유시영 왔네...”
진태용은 눈을 가늘게 뜨고 콜라를 들고 있는 유시영을 바라보았다.
다른 남학생들도 잇달아 고개를 돌렸다.
“시영의 콜라는 주은우에게 사주는 거겠지?”
“아니면 너에게 사줄까 봐?”
“은우 오늘 먹을 복이 있구나!”
“...”
몇몇 남학생들이 주은우를 향해 부러운 눈길을 보내왔다.
주은우조차 의아한 눈빛을 지었다.
전생에 농구를 하다가 유시영이 콜라를 사주는 일은 없었다.
자신의 환생으로 운명의 궤적이 바뀌었으니 유시영도 변한 것일지도 모른다.
곧 유시영과 전영미가 운동장으로 왔다.
유시영은 손에 든 차가운 콜라를 주은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덥지? 내가 아이스 콜라 사 왔어. 더위 식혀!”
주은우는 멍하니 유시영을 보고 있었다.
만약 환생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매우 흥분했을 것이다.
유시영은 전생에 자신이 죽었을 때도 얼굴 한 번 보이지 않던 사람이다. 심호흡을 하고 난 그는 침묵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하, 감동하였지?”
“시영이가 남자한테 물 사준 건 처음이잖아.”
전영미는 유시영이 처음으로 주은우에게 물을 사준 것이 주은우의 영광인 것처럼 하얀 턱을 치켜들었다.
“주은우...”
그때 반장 도시아가 백산수 한 상자를 안고 다가왔다.
작고 가냘픈 몸으로 백산수를 한 상자 가득 안고 있기가 힘들었다.
희고 보드라운 이마에는 곱게 땀이 배어 있다.
진태용은 급히 다가가 상자를 받았다. “반장, 우리한테 사주는 거야?”
도시아는 주은우를 슬쩍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반장, 너무 자상하다...”
“자자, 다들 물 마셔!”
진태용은 씩 웃으며 모두에게 생수를 나눠주었다.
“반장, 고마워...”
“반장. 너무 좋아.”
“잘 먹을게.”
학생들은 생수를 받으며 잇달아 고맙다고 말했다.
유시영은 안색이 파랗게 질린 채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자신의 매력이 이렇게 가려졌다고 생각하니 도시아가 일부러 자기랑 맞서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유시영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전영미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쯧쯧, 반장, 집안이 그렇게 잘사는데 까짓 생수를 산 거야?”
도시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우리 엄마가 사이다는 치아에 안 좋다고 했어.”
“많이 마셔야 치아에 안 좋은 거지 조금 마시는 건 괜찮아.”
전영미는 계속 반박했다.
도시아는 고개를 들어 주은우를 바라보았다. “콜... 콜라로 바꿔올까?”
“바꾸긴 뭘 바꿔, 생수 좋지!”
주은우는 상자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반병 넘게 마셨다.
차가운 생수는 갈증을 해소하고 몇 모금만 마셔도 가슴속이 시원해졌다.
“와... 시원해...”
주은우는 만족스럽고 편안한 표정으로 빙그레 웃으며 도시아를 바라보았다. “반장, 고마워...”
“고맙긴!” 도시아는 고개를 숙인 채 목까지 빨갛게 변했다.
‘반장 너무 쉽게 수줍어해.’
주은우는 시선을 거두며 속으로 웃었다.
“주은우...” 유시영이 주은우를 노려보았다.
“왜?” 주은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사준 콜라 왜 안 마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유시영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애틋한 표정을 지었다.
“쿨럭... 다 똑같아. 그리고 사이다 별로 안 좋아해.” 주은우는 건성으로 설명했다.
“흥... 마시기 싫으면 관둬!”
유시영은 코웃음을 치고 나서 콜라를 진태용에게 건네주었다. “진태용, 너 이 콜라 마셔!”
진태용은 주은우를 한 번 보고 고개를 저었다. “나도 사이다를 좋아하지 않아. 생수는 갈증을 해소해!”
유시영은 진태용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자신의 호의를 거절하는 남자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체육부장 장선규가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냥 나 줘. 난 콜라 좋아해!”
유시영은 다들 자신의 콜라를 받지 않자 난감해 있다가 주저하지 않고 그에게 콜라를 건넸다.
전영미는 친구를 대신해 불평하며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은우, 진태용, 너희들은 정말 주제를 몰라!”
진태용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주은우는 전영미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이었다.
마음을 추스른 유시영이 주은우에게 말했다. “주은우, 나랑 배드민턴 좀 치자.”
그동안 주은우가 배드민턴을 치자고 자주 졸랐지만 그녀가 번번이 거절했다.
도시아 앞에서 주권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주은우에게 배드민턴을 치자고 한 것이다. 그러면 주은우가 반드시 동의할 것이라고 믿었다.
도시아는 곁눈질로 주은우를 바라보며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녀도 주은우가 류시영의 초대에 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녀도 주은우를 찾아가 배드민턴을 치고 싶었지만, 말을 꺼내기가 부끄러울 뿐이었다.
“아니야, 이따가 복습해야 해.”
주은우는 고개를 저으며 유시영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는 이미 유시영이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주은우 너...”
유시영은 다시 멍해졌다.
주은우가 어떻게 이렇게 깔끔하게 자신을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설마 정말 나를 포기한 것일까?’
유시영이 멍해 있을 때, 주은우는 생수를 다 마시고 나서 진태용에게 말했다. “우리 한 게임 더 하고 교실로 돌아가서 복습하자.”
진태용도 주은우가 유시영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한 것을 보고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좋아, 계속해...”
“시아야, 넌 그늘에서 쉬어!”
주은우는 몸을 돌려 운동장으로 향하면서 한마디 남겼다.
‘시... 시아야?]’
‘날 사아라고 불렀어?’
도시아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란 눈빛으로 주은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