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누군가가 SNS에 표절 사건을 하나 폭로했는데 이 일에 연루된 주인공이 바로 오늘 미술 전시회를 여는 연나은과 주미나였다.
열혈 네티즌들이 어느새 비교하기 쉽게 비슷한 두 그림을 묶어서 올렸는데 그림 구성과 색채 조합까지 거의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곧이어 [신인 화가 연나은 표절 의혹]이라는 문구가 실검에 오르며 열띤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몇몇 친구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가시방석에 앉은 불개미처럼 초조해서 어쩔 바를 몰랐다.
“나은이가 표절이라니? 이게 말이 돼?! 이 그림 속 교복은 우리 고등학교 때 그 교복이잖아. 다들 눈멀었나 봐!”
“그러게 말이야. 이 여자애가 바로 연나은 장본인이잖아. 우리가 다 입증해줄 수 있다고!”
“분명 주미나가 표절한 건데 왜 저렇게 뻔뻔스러운 거야?”
그 시각 연나은은 이성을 다잡고 부랴부랴 집에 달려가 원고를 찾아낼 생각뿐이었다. 일단 원고가 있어야 본인 작품이란 걸 입증할 수 있으니까.
돌아가는 길에서 그녀는 머리가 터질 듯이 복잡했지만 애초에 이 그림을 그릴 때 광경을 애써 되새겨보았다.
그해 연나은은 18살이었고 진시준은 더 이상 그녀의 하굣길에 마중 오지 않았다.
연나은은 전교 1등이라는 성적표를 들고 집에 돌아와 곧바로 서재에 뛰쳐들어갔다. 얼른 삼촌에게 보여줘서 기쁘게 해드려야 하니까.
다만 방안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진시준이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들어버리자 그녀는 살금살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붉은 노을빛이 그의 눈가에 드리워져 눈 부신 빛이 반짝였다. 진시준은 아무도 선뜻 다가설 수 없는 그런 아우라를 풍겼다.
다만 연나은은 한사코 그에게 다가갔다. 이 남자에게 다가설 수 있는 첫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그녀는 성적표를 진시준의 얼굴에 내려놓고 살며시 입을 맞췄다.
인기척에 놀란 진시준이 잠에서 깨고 또 한 번 그녀를 호되게 꾸짖었다.
그럼에도 연나은은 그의 질책을 전혀 마음에 새겨두지 않은 채 얼른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다. 결국 그 그림을 수년간 소중하게 간직해온 것이다.
이제 와서 돈이 시급하고 진시준을 향한 마음도 접었으니 다시 이 그림을 전시회의 작품으로 내놓았는데 본인에게 이런 오점으로 들이닥칠 줄이야.
집에 도착한 연나은은 생각나는 대로 방구석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원고는 그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그녀는 그제야 당황하기 시작했다. 또 어디 빠트린 곳은 없는지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열어보니 친구가 링크를 하나 보내오며 얼른 열어보라고 했다.
링크를 연 순간 주미나의 얼굴이 화면에 떡하니 나타났다.
뒤에 적힌 [기자발표회]라는 몇 글자가 연나은의 심장을 거침없이 내리쳤다.
라이브방송에서 주미나는 엄숙한 표정으로 표절 건에 대해 상세하게 진술하며 이 그림을 그렸던 과정 전체를 생생하게 설명했다.
이어서 원고를 하나 꺼내더니 수많은 기자들과 카메라를 향해 선뜻 보여줬다.
“표절 사건에 연루된 신인 화가 연나은 씨와 저는 서로 아는 사이입니다. 그분이 아직 나이가 어려서 잠시 그릇된 선택을 했을 뿐 저에 대해 나쁜 취지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연나은 씨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기자회견이 열린 뒤 SNS의 여론이 순식간에 한쪽으로 기울었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연나은의 계정에 들어와 온갖 악플을 달았고 댓글이 무려 십만 개를 돌파할 지경이었다.
그 시각 또 다른 실검이 서서히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주씨 가문 장녀와 진수 그룹 대표 달콤한 키스 현장 포착, 결혼 임박?]
멘트와 함께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됐는데 진시준이 스포츠카를 몰고 직접 발표회 현장에 왔고 주미나가 웃으며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는 장면이었다.
두 사람은 다정하게 뒷좌석에 앉았고 창문이 올라가기 전, 카메라에 두 사람이 뜨겁게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찍혔다.
이 둘은 일찌감치 열애설이 터졌고 이 커플을 응원하는 팬들까지 생겨났는데 이런 영상이 올라오자 아래에 댓글이 미친 듯이 달렸다.
[너무 설레잖아! 나대지 마 심장아!!]
[창문을 왜 올려? 나 같은 팬한테는 더 많이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님?]
[진시준 연나은 삼촌이라고 하던데, 연나은이랑 주미나가 동시에 표절 사건에 휘말리자 바로 주미나 편들어주는 것 좀 봐. 이렇게 되면 연나은 표절로 더 굳혀지는 거 아닌가?]
연나은은 굳어버린 얼굴로 묵묵히 SNS에서 나왔지만 휴대폰 상단에 댓글 알림이 거의 빗발치듯 쏟아졌다. 클릭해보니 온통 그녀를 향한 악플이었다.
어려서부터 못된 것만 배웠다느니, 기본이 안 됐다느니, 수준이 너무 저질스럽다느니 못하는 말이 없었고 심지어 누군가는 그녀의 가족들까지 저격했다.
교양 없는 년이라고 부모도 없는 년이라고 미친 듯이 악플을 퍼부었다.
이 댓글을 본 순간 연나은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고 덩달아 온몸을 벌벌 떨었다.
눈물 한 방울이 휴대폰 액정에 툭 떨어져 글자가 흐릿해졌지만 그녀 마음속에 박힌 가시는 좀처럼 빼낼 수가 없었다.
연나은은 피가 철철 흐를 것 같은 마음을 뒤로한 채 진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