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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연나은은 깊게 잠들지 않았던지라 곧바로 인기척에 놀라서 깨났다. 남자의 옷깃에서 전해지는 익숙한 코롱 향수 냄새에 그녀는 곧장 상대가 누군지 알아챘다. ‘삼촌?’ ‘삼촌이 왜 갑자기 나한테 키스하지?’ 그녀가 몸을 움찔거리며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진시준의 거친 숨소리와 잠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나야...” 그 순간 연나은은 온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코를 찌르는 술 냄새까지 더하니 그녀는 곧장 상황파악이 됐다. ‘삼촌은 지금 술에 취해서 날 미나 언니로 착각한 거야!’ 잠깐 방심한 틈에 진시준의 두 손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연나은은 당혹감에 휩싸인 채 허리를 더듬는 그 손을 꽉 잡고 밀쳐내려 애썼다. 그녀는 초조한 목소리로 진시준에게 말했다. “삼촌, 나 나은이에요. 미나 언니가 아니라고요!” 다만 진시준은 인사불성이 되어 그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고 또 오히려 그녀가 몸부림치니 괜히 욕구를 더 끌어올린 듯싶었다. 그의 키스가 점점 더 거칠어졌다. 진시준은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연나은은 숨이 쉬어지지 않고 초조한 마음에 눈물이 찔끔 흘러내렸다. 그녀의 눈물이 거즈를 적셨고 끝내 흉터에도 닿았다. 이따금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마냥 괴로울 따름이었다. “삼촌, 나 아파요. 상처가 너무 아프단 말이에요...” 술 때문인지 그녀의 고함 때문인지 진시준은 별안간 몸이 굳어버리고 그녀를 잡고 있던 두 손도 놓아줬다. 연나은은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챙겨 신을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거실로 도망쳤다. 그녀는 결국 담요를 뒤집어쓰고 날이 밝아지고 나서야 겨우 잠들었다. 다음 날 오후, 눈 떠보니 진시준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어젯밤 그 일이 또다시 뇌리를 스쳤고 식겁한 연나은은 소파 구석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진시준은 눈가에 싸늘한 한기가 맺혔다. “어젯밤에 네가 날 네 방으로 끌고 갔어?” 연나은은 그의 질문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제 막 해명하려는데 이 남자가 또다시 미간을 확 찌푸렸다. “앞으론 이런 수작 부리지 마. 자꾸 이럴 거면 그만 이 집에서 나가.” 단호한 그의 말투에 연나은은 ‘어제 삼촌이 취했어요’라는 말을 꾹 집어삼켰다. 전에 몰래 키스한 적이 있던지라 그녀가 아무리 해명해도 진시준은 안 믿어줄 게 뻔했다. 결국 그녀는 해명을 포기하고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바닥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다. 진시준의 그림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는데 이 남자가 글쎄 살며시 손을 들고 있었다. 이에 연나은은 참지 못하고 머리를 들었고 진시준이 손도 마침 그녀의 머리 위에 닿았다. 아마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듯싶었다. 그 모습을 본 연나은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가에 못 믿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릴 때 그녀가 가족을 그리면서 슬프게 흐느끼고 외로움에 젖어있을 때 진시준은 항상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위로해주었다. 이 제스처는 이젠 거의 두 사람의 암묵적인 시그널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가 17살이 되고 난 이후로 둘은 어떠한 스킨쉽도 없었다. 연나은은 바짝 긴장해서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진시준이 손을 더 높이 들더니 그녀 뒤에 있는 캐비닛에서 와인을 한 병 꺼냈다. ‘내가 괜한 생각을 했네.’ 연나은은 저 자신이 너무 하찮고 우스웠다. 한편 급하게 모든 걸 내놓는 바람에 중고 시장에 걸어뒀던 물건들과 옛 저택 모두 시장가격보다 낮은 편이었고 속속들이 팔려나갔다. 은행카드에 180억 원을 모았지만 그녀가 예상하는 상환 금액에 비해 여전히 몇십억이 모자란 상태였다. 곧 해외로 나갈 예정이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는 이 돈을 모으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다행히 연나은은 미술을 배웠고 아직 신인이지만 요 몇 년간 상도 많이 받고 업계에서 나름 유명했다. 그녀는 미술 전시회를 열어 그림을 팔기로 했다. 다만 혼자만의 힘으론 짧은 시간에 이뤄낼 수 없어 진시준을 찾아갔다. 마침 옆에 있던 주미나가 그녀의 말을 듣더니 놀란 표정으로 웃으며 다가왔다. “잘됐네. 나도 마침 전시회 준비 중이었는데 이참에 같이 할래?” 연나은은 진시준을 힐긋 바라봤다. 그 남자가 아무 이의가 없자 그녀도 선뜻 동의했다. 닷새 뒤 두 사람의 전시회가 동시에 미술관에서 열렸다. 주미나는 그림을 배운지 십여 년 만에 처음 대형 전시회를 여는 거라 진시준이 유독 신경을 많이 써줬다. 그는 아예 주미나를 위해 몇십 평 되는 홀을 마련했고 게다가 인테리어까지 신경 썼으며 다양한 수단으로 홍보에 힘을 썼다. 결국 주미나의 전시회에는 각 계층의 유명인사들과 문인들이 참석하며 역대급 초호화 스케일을 이뤘다. 그에 비해 옆 미술관에서 진행된 전시회는 그다지 운이 좋지 못했다. 고작 몇 평 남짓의 방안에 백 장 가까이 되는 그림이 빽빽이 들어차서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아예 이동하기조차 어려웠다. 끝내 아무도 참관하러 오는 사람이 없었고 낙찰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연나은은 문 앞에 서서 저 멀리 시끌벅적한 전시장을 바라보며 침울한 눈동자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를 도와주러 온 몇몇 친구들이 이제 막 그녀를 위로해주려고 다가가려던 찰나, 방안에서 별안간 비명이 들려왔다. “나은아, 큰일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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