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힐리우스는 아주 값비싼 재벌가들이 사는 별장구였다.
소지연은 송민우의 재력에 감탄했다.
그녀의 숙모도 돈이 많지만 그년 소씨이고 그건 심씨 가문의 것이었다.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해야 그녀는 당당히 숙모를 떠날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목적지에 도착하자 소지연은 차를 잘 세우고는 뒤돌아 송민우를 부르려고 했는데 그가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는 머리를 옆으로 살짝 돌리고 있었는데 완벽한 턱선을 보였고 아주 멋있었다. 넥타이는 언제 풀어 헤쳤는데 후줄근하게 목에 끼어워 있었고 가슴 앞에 있던 단추도 몇 개 풀어져 있었다.
그 모습은 퇴폐하기도 했고 섹시하기도 했다.
소지연은 그저 몇 초만 보고는 그를 툭툭 쳤다.
"송민우 씨, 도착했어요."
송민우는 얕옅은 잠에 들었기에 눈을 떴을 때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고, 공격성도 없는 눈빛이 잠깐 비쳤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차갑고 날카로라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응, 고마워."
그는 차에서 내렸지만 걸음은 여전히 안정적이지 않았다. 소지연은 원래 그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려고 했지만 지금 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집에 그쪽 보살펴줄 사람 있어?"
"아니."
"가정부는?"
"없어."
송민우는 술에 많이 취했지만 술버릇이 없었고 그저 가만히 서 있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얌전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됐어, 내가 데려다줄게."
그러고는 그가 오해할까 봐 얼른 급하게 다시 말했다.
"미리 말해두는데, 다른 뜻 없어. 그냥 그쪽이 나랑 같이 있는 동안에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봐 무서워서 그래, 난 책임 못 지거든."
송민우는 그녀의 잔소리가 귀찮았는지 혼자 몇 걸음 걸어갔고 소지연이 달려와 그를 부추겼고 그도 거절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별장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별장은 아주 호화로웠고 깔끔했지만 인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싸늘했다.
소지연은 그를 거실 소파로 데리고 가서 앉혔다.
"방에 데려다줄까?"
그 말에 송민우는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고 소지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내가 아무리 너랑 하고 싶어도 그렇지, 이런 순간에는 안 해. 그리고 난 주정뱅이한테 관심 없거든!"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술 취하면 발기부전..."
송민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한 마디만 더 하면 발기 되는지 안 되는지 보여줄 거야."
소지연은 얼굴이 뜨거워 났지만 애써 침착한 척했다.
"내가 오늘 너한테 관심 없거든, 아직 멀쩡한 걸 보니까 방에는 안 데려다줄게, 나 먼저 간다."
'이 시간에 차가 잡힐지 모르겠네.'
그녀가 가려 하는데 송민우가 갑자기 물었다.
"요리할 줄 알아?"
소지연은 어리둥절했다.
"아무거라도 끓여봐, 배고파."
"밥은 가격 추가해야 해, 먼저 돈 이체해서 성의를 보여봐."
주방은 아주 깔끔했지만 있을 건 모두 있었다.
소지연은 앞치마를 두르고 냉장고를 열었다. 안에는 제일 간단하고 기초적인 식재료들만 있었지만 꽤 신선했다. 매일 와서 청소하는 하인이 준비한 듯했다.
그녀는 제일 간단한 국수를 끓이려고 했다. 술을 마시고 나서 그걸로 위를 따뜻하게 하면 아주 좋기 때문이었다. 아까 송민우가 사실 별로 먹지 않았고 계속 심미자한테 끌려 일 얘기 하느라 밥 먹을 생각도 없었던 것 같았다.
"계속 이렇게 지냈어?"
소지연은 생각이 떠오르자 바로 물었다.
주방은 오픈식이었다. 송민우는 밖에 있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뒤돌아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것 같았다.
"뭐라고?"
"오늘 같은 식사 자리 있을 때, 음식은 잘 안 먹고 술만 마시더라고."
"배가 비어 있어야 정신을 차릴 수 있거든."
사실 공복에 술을 마시면 더 쉽게 취한다는 걸 소지연은 잘 알고 있었다.
'술 자리에서 몇 년이나 단련되어야 빈속으로 끝까지 버티고 인사불성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건지.'
'카리스마 넘치는 이 남자도 참 쉽지는 않았겠네.'
소지연은 뜨거운 국수를 가져오고는 또 차를 가져와 송민우의 곁에 놓았다.
"술 깨는 차야, 술 깨야 숙취 때문에 힘들지 않지."
송민우는 한 모금 마셨지만 평가는 하지 않았다.
"네가 이런 일도 할 줄 아는지 몰랐네."
"어려서부터 숙모가 나한테 아주 엄격해서 뭐든 배워야 했어, 나 바느질도 할 줄 알아, 믿어?"
소지연은 자조하듯 말했고 송민우는 별 감정 없이 헛웃음을 쳤다.
"성호가 좋은 와이프 놓쳤네."
소지연은 손으로 턱을 괴고 눈을 깜빡였다.
"지금 당신이 이렇게 와이프를 가질 기회가 생겼는데, 어때? 나한테 반했어?"
송민우는 웃지 않았고 그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수심이 깊은 눈동자에 빛이 아른거렸다.
소지연은 그 눈빛에 소름이 끼쳤다.
"농담이야, 나도 주제를 알아, 당신은 아마 자기 수준에 맞는 여자랑 결혼하겠지."
송민우는 더 대꾸하지 않고 고개 숙여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사실 그도 잠깐 그녀가 한 말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만약 소지연이 내 와이프가 된다면, 와이프 노릇 잘 할 거야. 우리 둘은 오늘 밤처럼 이렇게 평범하고 따듯하게 살겠지...'
그런 생각은 순간 또 날아가 버렸다.
'소지연이랑 결혼한다고?'
'허, 내가 미쳤나 봐.'
소지연은 시간이 늦은 것 같아 일어섰다.
"내가 더 필요하지 않은 것 같으니까 이만 가볼게."
"정말 갈 거야?"
그는 그릇을 들어 마지막 국물까지 마셨다. 소지연이 한 음식이 그의 입맛에 딱 맞았다.
그릇을 내려놓고 그는 아주 우아하게 티슈로 입꼬리를르 닦고는 한참 지나서야 서서히 말했다.
"숙모가 널 남겨둔 게, 그냥 단순하게 내 기사 노릇해서 날 집에 데려다주면 되는 줄 알아? 네가 오늘 밤에 집에 가면, 네 숙모가 너한테 어떻게 할 것 같아?"
소지연은 순간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맞아, 내가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그녀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날 거래하는 물건으로 생각해서 우리 숙모의 호의를 받아 오늘 밤에 날 잘 즐기려고? 내가 지금 올라가서 잘 씻고 대기라도 할까?"
송민우는 갑자기 그녀의 웃음이 너무 거슬렸다. 그는 그녀가 이러는 게 싫었다.
뭔가 이판사판인 느낌이었고 자포자기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시간이 늦었고 택시 잡기도 힘들어, 여자가 밖에서 혼자 자는 것도 안전하지 않아. 여기 객실이 있으니까 오늘 밤에 여기서 자고, 내일 구현우한테 널 데려다주라고 할게."
그러고는 또 이어 말했다.
"걱정 마, 너 안 건드릴 테니까."
소지연은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자기로 했다.
객실은 바로 그의 안방 옆방이었다.
옷장은 모두 비어 있었기에 그녀는 휴대폰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고는 샤워하고 누웠다.
소지연은 잠자리를 가리지 않았기에 눕자마자 바로 잠에 들었고 밤새 잘 잤다. 이튿날 아침, 그녀는 어렴풋이 물소리를 들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물을 가르는 소리였다.
소지연은 침대에서 내려 소리를 따라 창가로 가서 커튼을 열었는데 아래에 아주 큰 실외 수영장이 있는 걸 보았다. 새파란 수영장에서 훤칠하고 긴 그림자가 물속을 누비고 있었다.
송민우가 수영하고 있는 거였다.
소지연은 옷을 갈아입고 작별 인사하러 수영장으로 갔다.
그는 딱 붙는 수영복 바지만 입었고 머리에 수영 모자와 고글을 하고 있었다. 얇은 허리와 튼실한 팔, 운동할 때 강력한 남성 호르몬이 흘러나왔다.
"송민우 씨, 어젯밤에 재워줘서 고마웠어, 나 먼저 갈게."
소지연이 수영장 옆에 서 있었다.
송민우는 또 한 바퀴 수영하더니 드디어 물에서 나왔고 얇은 피부 위로 물방울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좀 더 기다려, 조금 있으면 기사 올 거야, 기사한테 데려다주라고 했어."
그는 어떤 방면으로는 아주 매너 있었다.
"그럼 하라는 대로 할게."
그때 소지연의 휴대폰이 울렸고 소지연은 옆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는데 전에 찾았던 부동산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소지연 씨, 정말 죄송해요, 전에 얘기했던 방, 전세 못 주겠어요."
"왜요? 전세금에 무슨 문제 있어요? 다른 생각 있으신 거면 더 얘기 나눠도 돼요."
상대방은 우물쭈물거렸다했다.
"아니요... 전세 못 줍니다, 아가씨한테 못 줘요, 정말 죄송해요."
소지연은 입술을 깨물고 물었다.
"숙모가 그러라고 했어요?"
"그만 물어보세요, 저도 그냥 일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전화가 끊겼고 소지연은 낯빛이 어두워진 채로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며칠 전에 그녀가 해윤대에 성공적으로 입사했다. 이번 겨울 방학이 지나고 내년 봄이 되면 그녀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틈을 타 숙모의 집에서 나오려고 했지만 심미자의 반대가 너무 심했다.
심미자는 반응이 아주 격렬했고 심지어는 소지연을 열흘 넘게 가둬두었다.
심미자는 소지연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걸 무서워했다. 그녀는 자신이 20년 동안 공들여 키운 소지연이 가치를 발휘하기를 원했다. 소지연은 반드시 자기가 보는 곳에서 좋은 시댁을 찾아 시집가야 했고 좋기는 심씨 가문의 회사에 도움이 되는 가문에 시집가야 했다.
소지연은 송민우가 곁을 지나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왜? 집 구하게?"
송민우가 무심하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