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소지연은 그가 뭘 하려는 줄 알았는데 그의 호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고 송민우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어디 갔어?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사라진 거야? 설마 여자 꼬시러 간 거야?"
조용한 환경에 있은 지라 고성호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송민우는 소지연을 힐끗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뭘 걱정하는 거야?"
"걱정은 무슨, 나르시시즘 오지네, 누가 널 걱정한다고 그래."
"내가 누구랑 있을까 봐 걱정 돼?"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네, 오든 말든 알아서 해, 같이 놀기 힘드네."
고성호는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고성호의 성격을 잘 아는 두 사람은 고성호가 지금 찔려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지연은 피식 웃었다.
"모르는 사람은 두 사람이 연애하는 줄 알겠어."
송민우는 그녀한테 눈을 흘겼다. 불이 밝아졌고 조금 전에 야릇한 분위기는 모두 사라졌고 송민우가 문을 밀고 나갔다.
"간다."
그는 또 다시 도도하고 차가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소지연은 그의 뒤를 따라 가며 그의 훤칠한 뒷모습을 보았는데 넓은 어깨, 얇은 허리, 긴 다리, 모델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짙은 회색 양복을 입은 그는 아주 무게감 있고 차분해 보였다. 완벽하게 재단되어 그의 라인을 제대로 보여주었고 날카로운 주름은 마치 송민우처럼 위엄있고 압박감 있었다.
송민우는 소지연을 그가 지금 삼촌이랑 숙모와 같이 살고 있는 군란 별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소지연은 송민우한테 오늘 장태훈이랑 같이 가지 않아 숙모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걸 말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집안 일이었고 그가 한 번, 두 번은 도와줄 수 있지만 여러 번 도와주면 부처도 귀찮아할 것이기에 송민우는 더 귀찮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소지연의 생각이 맞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심미자는 소지연한테 서재에 가서 무릎 꿇으라고 했다.
서재는 보일러를 틀지 않았고 또 추운 겨울이라 뼛속까지 시렸다.
소지연은 드레스 위에 추위를 막아줄 밍크를 입었지만 집에 돌아와서 따듯하다 보니 습관적으로 벗어서 진천댁한데 주었기에 서재에 들어가자 차가워서 몸을 움찔했다.
정말 추웠다.
소지연은 반항하지 않고 바닥에 무릎 꿇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굳어졌다. 바닥에 카펫을 깔았지만 그녀의 무릎은 여전히 아팠다.
서재의 문이 열렸고 심미자가 가느다란 채찍을 들고 걸어 들어왔다.
"옷 벗어, 널 혼내주려고 이렇게 비싼 드레스를 망칠 수는 없어."
소지연은 심미자의 말대로 드레스를 벗었고 피부가 노출되었다.
추웠고 굴욕스러웠다.
채찍과 원망은 40분 간 지속되었고 심미자는 드디어 힘이 풀려 소지연을 서재에 두고 혼자 방에 쉬러 갔다.
심미자는 오늘 저녁 술을 많이 마셨기에 전보다 훨씬 더 세게 때렸다.
소지연은 진작에 다리가 마비되었다. 그녀는 손을 부들거리며 옆에 있는 드레스로 몸을 가리고는 서재에 한참 앉아 있어서야 겨우 두 다리에 감각이 돌아왔다.
그녀는 겨우 몸을 지탱하고 일어섰는데 일어서자마자 바로 쓰러졌다.
등에 있는 상처에 부딪혀쳐 피부가 찢어질 듯 아팠다.
진천댁이 마침 들어왔는데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세상에, 사모님이 어떻게 이렇게 세게 때릴 수 있어요?"
진척댁은 소지연을 부추겼고 그녀의 뒤에 있는 상처를 보고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 집에서 진천댁이 심미자보다 더 소지연을 관심했었다.
진천댁의 부추김을 받고 방으로 간 소지연, 더는 버티지 못하고 침대에 닿자마자 침대로 쓰러졌다.
그녀는 몸이 너무 무겁고 힘들었고 피곤했지만 겨우 버티며 마지막 의식을 챙겨 휴대폰을 꺼내 송민우한테 전화했다.
신호음이 대여섯 번 울렸고 그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매력적인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고 소지연은 정신을 차리고 최대한 목소리가 멀쩡해 보이도록 했다.
"송 대표님, 나야, 소지연, 집에 무사히 도착했어?"
"응, 방금 도착했어."
"오늘 저녁에 고마웠어... 내가 신세 진 거야, 시간 되면 내가 밥 살게."
"나중에 다시 봐."
송민우는 잠깐 멈칫하고 물었다.
"졸려?"
소지연이 애써서 감췄지만 여전히 허약해서 소리가 나른했기에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졸린리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응... 오늘 술 많이 마셔서 그런가 봐!"
"일찍 쉬어."
송민우는 여전히 도도했고 말수가 적었다.
소지연도 인사하고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계속 베개에 엎드려있었고 그때 진천댁이 요오드포름이랑 약을 갖고 들어왔다.
소지연의 얼굴이 빨갛고 입술이 갈라져 새파란 걸 보자 진천댁은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어머! 왜 이렇게 뜨거워요? 사모님한테 말하고 병원 가요!"
"안 돼요- 습!"
소지연이 다급하게 불렀는데 등에 있는 상처를 또 건드릴 줄 몰랐다.
그녀는 뼛속 깊이부터 오만하고 도도했지만 그래도 연약한 여자였기에 그 아픔에 눈물이 흘러나왔고 울기 시작했다.
진척댁은 얼른 다시 돌아와 마음 아파하면서 조급해했다.
"알겠어요, 안 갈게요, 아줌마가 약 발라줄게요, 조금 이따 소염제 먹고 푹 자요."
아무도 소지연의 휴대폰이 아직 통화 중이라는 걸 몰랐다.
그녀는 너무 열이 났기에 휴대폰이 켜진 줄도 몰랐고 그렇게 휴대폰은 베개 옆으로 흘러내렸다.
수화기 너머에 있던 송민우는 예의상 그녀가 먼저 끊기를 기다렸는데 진천댁이 그녀의 체온을 느끼고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아픈 거야?'
'그래서 목소리에 힘이 없는 거였어.'
송민우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아니었다. 열이 나는 것도 그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지만 그는 자기도 모르게 휴대폰을 끊지 않았고 계속 대화를 들었다.
듣다 보니 소지연이 집에 돌아가서 맞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기 손으로 영감한테 보내놓고 조카가 시키는 대로 안 했다고 독하게 때리다니, 참 재미있는 집이야.'
조수석에는 비서 구현우가 타고 있었고 그가 송민우한테 서류를 건넸다.
"대표님, 이번 보고서..."
송민우가 손을 들어 그를 막았고 구현우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수화기너머로 그녀의 웅얼거리는 울음소리가 계속 되었고 열이 많이 나서 힘이 없어 보였는데 소리가 허약한 고양이 같았다.
"아줌마... 나 너무 아파요..."
"이걸 어떡해요... 나 여기 있어요, 내가 아가씨랑 같이 있을게요... 아가씨가 우니까 나도 눈물 나요. 이렇게 예쁘게 키워놓고 아까워 죽겠는데 어떻게 때릴 수 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들었는지 서서히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잠에 들었어도 가벼운 흐느낌은 여전히 들렸다.
송민우는 그제야 전화를 끊었다.
구현우가 서류를 건넸고 송민우는 집중해서 서류를 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경연만의 관광개발 프로젝트 어떤 것 같아?"
구현우는 멈칫했고 대표님이 왜 그걸 묻는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경연만의 요양 프로젝트를 심씨 가문에서 낙찰 받았었다.
'대표님이 요즘 심씨 가문 조카님이랑 친하게 지내던데, 혹시 도와주려고 그러는 건가?'
"요즘 정책이 신도시 개발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우리 투자자들한테 평가를 받아볼게요. 정말 심씨 가문 회사를 도와주려는 거면 우리한테는 이익이 적을 것 같습니다."
송민우는 머리를 들었고 흑요석과 같은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빛이 스쳤다.
"누가 도와준대? 심씨 가문이 내 도움 받을 자격 있어?"
구현우는 바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습니다."
그는 깜짝 놀랐다.
구현우는 송민우의 밑에서 8년을 일했지만 송민우가 스캔들 상대를 위해 뒷거래를 한 적 없었고 그깟 외모에 미쳐 맹목적으로 이익을 주는 일도 없었다.
송민우는 항상 사업이 먼저였고 공정하고 차갑기로 소문났었다.
유일하게 도와줬던 건 바로 나씨 가문 그분이었다.
'듣자 하니 나씨 가문 그분이 곧 귀국한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