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옷을 갑아입자 송민우가 문 밖에서 들어왔고 소지연은 멈칫했다.
"네가 이미 간 줄 알았어."
송민우는 아무 말하지 않았고 그녀가 잠들었던 곳을 보았는데 새하얀 침대 위에 새빨간 핏피자국이 마치 피어난 두견화 같았다.
송민우는 아주 복잡한 듯했다.
사람들은 모두 소지연이 남자를 수도 없이 만났고 진작에 뒹굴었다고 했지만 그녀가 아직 처녀일 줄은 몰랐다.
소지연은 그가 자신이 이걸 핑계로 삼을까 봐 걱정하는 줄 알고 먼저 입을 열었다.
"걱정 마, 난 이런 거 별로 신경 안 써, 나한테 책임지라고도 안 할게, 내가 원해서 한 거니까."
잘생긴 송민우와 관계 맺었기에 그녀도 밑지는 게 아니었기에 아주 공평했다.
송민우는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기에 한참 지나서야 말했다.
"한 번 잔 게 확실히 아무것도 대표할 수 없지."
소지연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송민우는 호텔 서비스를 불렀고 웨이터가 풍성한 아침을 가득 가져왔다.
소지연과 송민우는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었는데 두 사람 모두 아무 말하지 않고 있었기에 분위기는 뭔가 이상했다.
죽을 마실 때 소지연이 실수로 죽을 입가에 흘렸고 그녀가 티슈로 닦으려고 하는데 맞은편에 있던 송민우가 갑자기 손을 내밀더니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다른 한 손의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입가에 묻은 죽을 닦아주었다.
뜨거운 밤을 보내고 나서 멀쩡한 정신으로 하는 스킨십이라 소지연은 얼굴이 뜨거워졌다.
"소지연, 나한테 구애하면, 다른 남자한테는 더는 못 해."
송민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갑작스러운 말을 꺼냈고 소지연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왜?"
송민우는 그녀의 질문이 갑작스러웠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구애하는 거면,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 내가 너 손에 못 넣어도, 포기 못 하고 다른 남자도 좋아할 수 없다는 거 아니야?"
소지연의 말에 송민우는 할 말을 잃었고 소지연이 또 이어 말했다.
"게다가, 난 이제 더는 너 안 쫓아다닐 거야."
송민우는 미간을 더 깊게 찌푸렸고 목소리를 깔았다.
"뭐라고?"
"내가 구애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관계 맺었잖아, 더 쫓아다닐 필요 있어?"
소지연이 손을 저었고 송민우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쳤다.
'허, 바람둥이.'
'역시 이름값 하네.'
"그러니까 넌, 관계를 맺는 걸 목적으로 하고 누군가한테 구애하는 거야?"
눈이 높은 귀공자 송민우의 말에 그녀는 자칫하면 "네가 날 가져도 내 마음은 못 가져"라는 신분에 어긋나는 말까지 할 뻔했다.
"그건 아니고."
소지연은 왜인지 찔렸다.
"송민우 씨가 나랑 결혼할 리가 없잖아."
"왜 없을 거라고 생각해?"
송민우가 느긋하게 말했고 소지연은 멍해졌다.
심씨 가문도 상류사회에 올라섰지만 고씨 가문과 송씨 가문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송씨 가문은 가문도 크고 사업도 넓게 하는데, 부동산, 관광, 에너지, 금융 등 많은 영역을 하고 있었기에 송씨 가문 이름만 대도 해성이 떠들썩 할 정도였다.
송씨 가문과 정략 결혼하고 싶어 하는 가문들도 가득했고 심씨 가문은 그 가문들과 비교할 정도가 안 되었다.
'송씨 가문에서 날 마음에 들어 하겠어?'
'송민우가 지금 나 놀리는 거야?'
소지연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나 배부른데, 민우 씨가 집에 데려다줄래?"
송민우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는 옆에 있는 담배를 꺼내 한 모금 피우고서야 천천히 말했다.
"재미있는 사람 만난 줄 알았는데. 지연 씨가 그냥 알아서 가시지, 나랑 가는 길이 달라서."
소지연은 가방을 들고 당당하게 일어섰다.
"나 자극할 필요 없어, 내가 명성이 안 좋긴 하지만, 원칙이란 게 있거든. 절대 내연녀는 안 해."
숙모가 그녀를 칠순이 넘는 영감이랑 결혼하라고 했을 때, 그녀가 급하게 도망친 건 맞지만 이 지옥에서 다른 지옥으로 가려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평등한 사이었다.
그래야 그녀는 자유가 있고 자신이 원하는 걸 추구할 수 있었다.
소지연은 뒤돌아 문을 열었고 송민우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꼭 너랑 결혼한다고는 장담 못 해, 하지만 제대로 된 연인은 될 수도 있어."
소지연은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확실히 정당한 신분이 필요했다.
특히나 송민우처럼 대단한 사람이라면 더 좋았다.
그래야만 함부로 지배당하는 운명과 맞서 싸울 수 있었다.
전에 고성호와 사귀었을 때도, 숙모가 고씨 가문의 지위를 보고서야 조용히 있었는데 지금 고성호한테 파혼 당했으니 집에 가서 어떻게 숙모를 봐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조금 전에 송민우한테 데려다 달라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만약 숙모가 그녀가 송민우랑 같이 있는 걸 보면 그녀를 그다지 탓하지 않을 것이었다.
"진짜?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나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소지연은 뒤돌아 눈을 반짝였다.
"내가 별로 잘하는 게 없는데, 제일 잘하는 게 바로 일편단심이야!"
소지연은 이 일이 어려울 거라는 걸 알았지만 송민우가 말했으니 그녀는 더는 겁나지 않았다.
'내가 구애한 경험은 없지만 구애 받아온 경험은 있잖아!'
'진심을 다하면 언젠간 송민우 마음에 틈을 생기게 할 수 있을 거야!'
송민우가 일어서 밖으로 걸어갔는데 몇 걸음 가서 소지연이 따라오지 않을 걸 보고 뒤돌아 미간을 찌푸렸다.
"안 따라와?"
소지연은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
"가는 길이 된 거야?"
송민우는 답하지 않고는 머리를 돌려 계속 걸어갔다.
소지연은 얼른 뛰어갔고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정교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더 예뻐 보였다.
송민우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는데 마치 얼음조각 같았다. 하지만 옆에 있는 여자의 환한 얼굴에 그도 그렇게 차가워 보이지는 않았다.
송민우는 소지연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롤스로이스가 전혀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별장의 마당까지 가서야 멈췄다.
"데려다줘서 감사해요, 송 선생님"
소지연은 차에서 내려 허리 숙여 인사했다.
"같은 길이었어."
송민우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차 창문이 이미 올라갔고 창문이 차가운 남자의 눈매를 숨겨주었다.
시동을 켰고 차는 떠났다.
소지연은 여전히 제 자리에 서서 예의를 갖춰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았다.
소지연이 꾸물거리며 집에 들어섰고 허리를 숙여 신을 갈아신으려고 했는데 매서운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젯밤에 어디서 뭘 했길래 안 들어온 거야? 널 데려다준 사람은 누구야?!"
숙모 심미자가 거실 중앙에 서서 매섭게 소지연을 노려보았다.
소지연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갔는데 아버지도 별 볼 일 없어 계속 자기 동생과 제수씨의 돈으로 생활했다.
동생이랑 제수씨가 아이가 없었기에 아버지는 뻔뻔하게 소지연을 보냈고 돈을 가득 받아 썼는데 거의 딸을 팔아 넘긴 기거랑 다름 없었다.
심미자는 소지연을 아주 열심히 배양했다: 학원, 피아노, 첼로, 댄스, 승마, 골프...
재벌 집 아가씨들이 할 줄 아는 건 그녀도 무조건 배워야했다.
모두 심미자가 좋은 사람이라며, 혈연 관계도 없는 애한테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소지연만이 심미자가 자신의 조건이 마음에 들어, 자신을 완벽한 정략 결혼을 할 도구로 이용하려고 그러는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심미자는 소지연한테 아주 엄격했고 거의 개인 공간이 없었다.
"송씨 가문 도련님이 데려다줬어."
송민우 이름을 들은 심미자는 바로 화가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명성 그룹 후계자 송민우?"
소지연은 아주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미자는 역시나 그 주제를 넘겨버렸고 소지연은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역시나 숙모는 내가 남자랑 막 나가는 걸 신경 쓰지 않아, 상대가 어떤 신분인지, 숙모의 사업에 도움이 되는지만 신경 쓰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