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이것은 충고가 아니라 ‘훈계’였다.
예전에 육태준의 가족, 허우진, 고택의 사용인까지 모두 하채원을 ‘훈계’할 수 있었다.
이때마다 하채원은 반드시 웃는 얼굴로 고맙다고 했지만 이제는 자신을 억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채원은 옆으로 드리운 손을 꼭 쥐었다.
다시 허우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얼음을 깐 것처럼 차가웠다.
“그 사람이 화를 내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이죠? 다른 일이 없으면 이만 가세요.”
허우진은 그녀의 냉랭한 눈빛을 보며 가슴이 뜨끔해졌다. 다시 반응했을 때는 문이 이미 닫혔는데 하채원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항상 내가 하채원을 쌀쌀하게 대했는데 왜 지금은 반대로 된 거지? 정말 대표님의 비위를 맞추지 않겠다는 거야?’
...
허우진이 돌아간 후 반드시 육태준에게 고자질할 것을 알고 있었던 하채원은 지친 몸을 소파에 기대며 그의 비난을 기다렸다.
그녀의 생각처럼 허우진은 돌아간 후 방금 발생한 일을 과장해서 육태준에게 알려줬다.
이날 따라 광풍이 휘몰아치며 창문이 덜컹거렸다.
소파에 웅크리고 앉은 하채원은 분명 초여름인데도 추위가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소리가 다시 났지만 하채원은 뒤늦게야 반응하고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보지 않아도 누가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우람진 체격을 가진 육태준과 비교하면 하채원은 가냘프고 작아 보였다.
하채원은 고개를 들어 깊은 호수처럼 그윽한 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허 비서님께서 이미 말했어요?”
육태준은 표정이 굳어지며 사진을 하채원의 앞에 던졌다.
“난 당신에게 체면을 남겨주려고 했어.”
하채원은 어리둥절해졌다.
하채원은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널브러진 그녀와 차지욱의 사진을 보았다.
이상한 각도를 이용해 찍어 애매하고 다정스러워 보였을 뿐 다른 문제는 없었다.
하채원이 설명도 하기 전에 육태준이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원래 예전의 일은 오해라고 생각했어. 당신은 단순한 사람이니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
‘원래! 원래...’
윙윙 소리가 귓전에서 울렸고 목구멍에서는 쓴맛이 났는데 입을 열 때야 하채원은 목이 잠겼음을 알게 됐다.
“그래요? 그럼 실망하게 해드려 죄송하네요.”
결혼 3년 차. 육태준의 아내로서 성심껏 책임을 다했고 여느 남자와도 상관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런 누명을 쓰게 됐다.
눈시울을 붉힌 하채원은 억울함을 참으며 육태준을 차분하게 바라봤다.
“그러면 빨리 이혼해요. 지난번에 제가 약속을 어겨서 죄송해요. 이번에는 절대 어기지 않을게요.”
육태준은 하채원이 설명할 줄 알았으나 그녀가 또 이혼을 언급하자 끝내은 분노를 삼키지 못하고 하채원에게 다가갔다.
“그 남자와 함께 있고 싶어? 그 남자를 잘 알아? 내가 없었다면 널 원하는 남자가 있었을 것 같아?”
육태준에게 밀려 구석으로 뒷걸음질치던 하채원은 그의 독설을 들으며 믿을 수 없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준 씨 때문이라니?’
육태준은 계속해서 그녀의 가냘픈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지난번보다 더 야윈 것 같아. 거의 뼈만 남은 것 같네...’
육태준은 눈빛이 움찔했다. 그녀가 왜 이렇게 야위었는지 알 수 없었다.
“건드리지 말아요!”
뜨거운 촉감에 정신을 차린 하채원은 두 눈을 붉히며 육태준을 밀어내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건강한 여성이라고 해도 남자의 상대가 아니겠지만 건강이 나날이 나빠지는 그녀는...
육태준의 키스가 촘촘한 빗방울처럼 그녀의 몸에 떨어졌다. 밖에는 비가 더 세게 내리는 것 같았다.
하채원은 차가운 침대에 엎드렸지만 귓가에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며 아랫배가 조금씩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