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이제 막 호텔을 나섰는데 박서아가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따가 임원진 회의가 있어. 준비하고 나랑 같이 가.”
미처 거절하기도 전에 그녀가 나를 차에 태웠다.
내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잠자코 있었더니 그녀가 서둘러 내 서류 가방을 뒤졌다.
“노트북 어디 있어? 단톡방 서류는 다 확인했어? 이따 회의 때 실수하지 마. 창피한 꼴 못 보니까. 어떻게 보고하는지는 다 알겠지?”
“단톡방이라니?”
나의 질문에 조수석에 앉아있던 최이준이 머쓱한 듯 고개를 돌렸다.
“대표님, 죄송해요. 제가 그만 깜빡하고 구 대표님을 단톡방에 추가하지 못했어요.”
어디 그뿐일까? 내 프로젝트가 성사됐는데 정작 아무도 내게 알리는 자가 없었다.
이 중에서 누가 꼼수를 부렸는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다.
“괜찮아. 어차피 이 회사는 네 거니까 그때 가서 브리핑 잘하면 되잖아.”
“이참에 그냥 최 이사 시키는 건 어때? 우리 회사 최고 매출 달성자라 나보다 업무에 더 빠삭할 텐데.”
“구민기 너...”
박서아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꾹 참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 같은 중요한 날에 무늬만 대표인 그녀는 양심에 찔려 감히 내 심기를 건드리지 못했다.
한편 이 말을 들은 최이준은 잔뜩 들떠있었다.
“괜찮아요, 대표님.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은 거의 다 익숙하니 그때 가서 제가 투자자분께 말씀드려도 돼요.”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임원진 앞에서 본인 실력을 드러내고 하루빨리 차기 대표 자리를 거머쥐고 싶었나 보다.
“걱정 마세요, 대표님. 제가 또 주량도 좋잖아요? 천 잔을 마셔도 끄떡없다는 거 그거 절대 허풍 아니에요.”
나는 하찮은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
최이준도 참, 이 투자자가 본인이 접촉해온 거래처들처럼 술자리에서 아양이나 떨고 함께 몇 잔 기울이면 몇십억짜리 프로젝트가 바로 성사될 거라고 여기는 걸까?
옆에 있던 박서아가 일그러진 얼굴로 내 옷소매를 여러 번 잡아당겼지만 나는 죄다 매정하게 뿌리쳤다.
회사에 도착한 후 최이준이 가장 먼저 차에서 내렸다.
새롭게 바꾼 경호원들이 그를 보더니 일제히 대표님이라고 외치면서 맨 뒤에 있는 나를 아예 무시해버렸다.
회사 입구에서 일찌감치 기다리고 있던 임원들은 이 광경에 표정이 얼어붙고 말았다.
다만 내가 무덤덤하게 있으니 그제야 겸연쩍게 웃으면서 넘겼다.
회사 부대표 정은우가 가장 먼저 달려 나와 나를 반겼다.
“대표님, 드디어 오셨네요. 투자자분께서 대표님 프로젝트에 유독 관심이 많아서 얼른 대표님의 발표를 듣고 계약을 체결하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정은우는 일부러 내 체면을 살려주느라고 다들 보는 앞에서 거듭 강조했다.
나도 다 알지만 가볍게 웃을 뿐이었다.
“과찬이에요, 정 대표. 난 이미 사직했어요. 오늘은 단지 방청하러 온 것뿐이에요.”
순간 바로 앞에 있던 박서아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녀는 분노에 찬 눈길로 한심하다는 듯이 내를 째려봤다.
“뭐? 누구 마음대로 사직인데? 내 승인 없이는 넌 여전히 우리 회사 소속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