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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결혼기념일 날, 아내의 첫사랑이 인스타그램에 페라리 영수증을 피드로 올렸다. [대표님의 특별한 관심, 앞으로도 두 손 꼭 잡고 함께 잘해보아요!] 댓글 창에는 다들 부럽다고 난리였다. 지급인이 아내인 걸 확인한 나는 미간을 구기고 이제 막 진화해서 질문하려 했다. 다만 아내가 씩씩거리며 달려오더니 대뜸 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졌다. “재무팀에 말해서 최고 매출 달성한 최이준한테 보상을 좀 했을 뿐인데 굳이 전화해서 꾸짖을 필요까지 있어?” “정신 똑바로 차려. 여긴 내 회사야. 네가 뭔데 삿대질이야?!”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 휴대폰 화면에 최이준이 보내온 도발적인 이모티콘이 떴다. 그건 바로 가운뎃손가락을 내민 야유에 찬 이모티콘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해명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이미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잠시 후 최이준이 또 피드를 하나 오렸는데 와인과 스테이크가 담긴 사진이었다. 맞은 편에는 요염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드러낸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나의 굿 와이프 박서아였다. ... 박서아가 회사에 왔을 때 나는 여전히 망가진 코드를 해결하고 있었다. 이번 달에만 벌써 세 번째 밤샘 작업인지라 너무 피곤한 나머지 미간을 문지르고 다시 작업에 몰입했다. 오늘은 나와 박서아의 결혼기념일이다. 나는 얼른 코드를 해결하고 저녁에 그녀와 함께 근사한 기념일을 보내고 싶었다. 해성시에서 가장 비싼 프렌치 레스토랑을 예약했는데 박서아가 좀처럼 연락이 안 됐다. 그러던 중 의외로 최이준이 인스타에 올린 피드를 보게 됐는데 페라리 영수증을 자랑하는 내용이었다. 지급인을 똑똑히 확인한 나는 시린 가슴을 달래며 컴퓨터를 껐다. 이때 마침 박서아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왜 일을 안 하냐면서 가방을 소파에 힘껏 내팽개쳤다. “오늘은 왜 게으름 피우는 거야?” 나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너무 피곤해서 좀 쉬려고.” 이 회사는 나와 박서아가 공동 창업한 회사이다. AI 홈퍼니싱을 주로 운영하고 있고 내가 메인 프로그래머를 담당하고 있다. 예전에는 프로그래밍에 문제가 생기면 잠을 못 자는 한이 있어도 코드를 끝까지 고쳤었다. 박서아가 초조해서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으니까. 하지만 이런 나의 헌신으로 바꿔온 건 그녀가 첫사랑에게 사준 페라리의 영수증이었다. 참으로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한편 박서아는 내가 저기압인 걸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스위치게임 카트리지 상자를 던져줬다. “자, 너 주려고 친히 고른 거야. 남자들 다 이런 거 좋아한다며?”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 들어 있는 게임 카드는 죄다 몇 년 전의 오래된 모델이었다. 라벨이 닳아빠진 걸 보아 중고 제품임이 뻔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멀리 내던졌다. 이전처럼 기뻐하지 않는 내 모습에 박서아가 버럭 화냈다. “구민기, 너 지금 무슨 뜻이야? 요즘 게임으로 스트레스 풀고 싶다고 해서 일부러 게임 카드까지 사 왔는데 고마워해도 모자랄망정 그 썩은 표정 뭐냐고? 대체 뭐가 불만인 건데?”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남이 쓰다 버린 물건은 더러워서 관심 없어.” 그녀가 버럭 화내려 할 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박서아는 분노를 꾹 참고 일부러 내가 못 듣게 통화음까지 낮췄지만 발그스레한 두 볼이 그녀를 배신했다. 온화한 말투로 눈웃음까지 지으며 가끔 투정 부리듯 발까지 동동 굴렀다. 통화를 마친 후에도 그녀는 휴대폰 화면만 빤히 쳐다보다가 무심코 내게 말했다. “바로 새 거로 사줄게. 그럼 됐지? 진짜 피곤한 스타일이라니까. 사사건건 여자랑 따지고 들고 남자다운 모습이라곤 아예 찾아볼 수가 없어!” 말을 마친 그녀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8시였다. 나도 얼른 불을 끄고 사무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활짝 미소 짓던 박서아는 나를 본 순간 웃음기가 분노로 싹 바뀌었다. 나는 손을 흔들며 그녀에게 말했다. “보긴 뭘 봐? 난 퇴근하면 안 돼?” 이때 그녀가 씩씩거리면서 내게 쏘아붙였다. “구민기, 너 미친 거 아니야? 우리가 결혼했다고 내가 네 소유물이라도 됐다고 생각해? 왜 여기까지 쫓아와서 감시하는 건데? 가증스러워 정말!” 그녀가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애초에 내가 먼저 프러포즈했고 결혼한 뒤에는 박서아가 종일 클럽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녀를 단속할 수가 없어 매일 밤 클럽까지 데리러 나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그녀에게 답했다. “우리 회사 6시면 퇴근이야. 이미 8시가 되었는데 내가 퇴근하는 게 무슨 문제 돼? 피곤해. 집에 가서 쉴래. 너도 가서 일 봐.” 박서아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나와 조금 떨어져 서 있었다. 각자 차에 올라탄 후 박서아가 차창을 내렸다. “나 떠나고 시동 걸어. 네가 하도 불안해서 그래.” 곧이어 선심 쓰듯 한 마디 덧보탰다. “기념일 안 잊었어. 집에 가서 기다리고만 있어.” 말을 마친 그녀는 행여나 내가 쫓아올까 봐 액셀을 꾹 밟았다. 한편 나는 급히 떠난 게 아니라 차 안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이 황당한 결혼생활을 되새겨보았다. 주차장의 등이 다 꺼진 후에야 나도 서서히 차를 몰고 나왔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차려진 건 뜬금없는 박서아의 욕설이었다.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알아? 오늘 우리 결혼기념일이야. 대체 알긴 해? 네 마음속에 이 가정이 있긴 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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