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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장

자리에서 일어난 박정원이 말했다. “일단 방에 들어가서 쉬어. 나 기다릴 필요 없어.” 이 말을 마지막으로 강하성은 박정원과 2층으로 올라갔다. 어느새 거실에는 임서우와 강이준만 남게 되었다. 임서우의 손목에 감긴 붕대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던 강이준이 혀를 끌끌 찼다. “임예지가 그런 건가?” “네?” 살짝 놀란 임서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건 어떻게 아신 거지? 하성 씨가 말한 건가? 그럴 리가 없어. 그럼 도대체 누가 말한 거지?’ “서우야.” 강이준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 “임예지가 하성이한테 약이 든 술을 먹였다고?” “삼촌.” 어색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임서우가 말했다.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전 이만 올라가서 쉬겠습니다. 삼촌도 일찍 쉬세요.” 다행히 강이준은 더 추궁하지 않고 임서우를 보내주었다. 잠시 후, 서재를 지나던 임서우는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강하성 모자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벌써 결혼한 지 1년이 거의 되어 가는데 왜 임신 소식이 없어?” 박정원의 목소리였다. 강하성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박정원은 말을 이어갔다. “뭐, 어쩌면 더 잘 된 건지도 모르지. 얼른 이혼해. 걔랑 걔 엄마가 썼던 추잡한 수만 생각하면 치가 떨려. 아버님만 아니었어도 이 결혼 허락하지도 않았어.” “할아버지 뜻이라는 걸 아시는 분이 이혼을 입에 올리세요?” 가만히 있던 강하성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뭐?” 이에 박정원이 발끈했다. “너 서우 쟤랑 이혼하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그게 아니라 지금 할아버지 건강도 그렇고... 이혼 얘기는 나중에 해요.” 그제야 박정원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래. 마음 안 바뀌었으면 다행이고. 솔직히 지난 일은 그냥 과거로 묻어둘 생각이었어. 그런데 1년 동안 애가 안 선 걸 보면 어쩌면 우리 집안과는 인연이 아닌 걸지도 몰라. 그러니까 괜한 사람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 예지도 돌아왔다던데 만난 적은 있어?” “엄마,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강하성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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