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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민망하네요." 김수연은 얼른 눈물을 닦고 틈을 타 휴대폰을 챙겨넣었다. "오빠가 아니였으면...... 가짜 딸인 나는 감히 돌아오려고 하지도 못했을거에요. 그리고 모두가 절 이토록 아낀다는 것도 미처 몰랐을 거에요." "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애니까." 김수연은 그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김씨 집안의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김수지가 가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위암 판정을 받은 상태에서 결연히 혼자 외국으로 떠났다. 여기까지 생각한 박민혁은 도저히 그녀를 가슴 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고, 심지어 김수연은 그의 목숨도 구해주었다...... 그러니 어찌 그녀를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수연은 항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엄마랑 다른 사람들이 지금 준비한다고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람이 너무 착할 필요도 없어." 박민혁이 이어서 말했다. "자신을 위해 더 많이 생각해. 네가 행복하면 우리 모두가 기뻐할거야." "그럼 언니는요?" 김수연이 갑자기 물었다. "엄마 아빠가 나에게 이 정도로 잘 대해주시고, 오빠도 절 위해 언니랑 이혼까지 하는데, 언니가 알면 정말 기뻐해 줄가요?" 그녀는 혼자 말하다가 박민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자기 손을 들어 맹세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난 맹세해요. 언니가 기분이 좋지 않다면, 언니가 엄마 아빠를 독차지하고 싶다고 하거나 오빠를 갖고 싶다고 하면 난 절대 언니랑 싸우지 않을거에요." 그녀는 이 얘기를 할 때 사뭇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의 모든 건...... 내가 언니에게서 뺏은거나 다름 없는거니깐요." "그런 소리 하지마!" 박민혁이 나무라듯이 얘기했다. "나도, 김씨 집안도, 우리 모두는 네가 빼앗아 온게 아니야, 네 잘못은 더더욱 아니고." 김수지와의 결혼은 그의 잘못이였다. 처음부터 시작한게 잘못이였다. 그리고 김수지와 김수연 자매가 오늘의 황당한 국면을 맞이하게 된 건 모두 김씨 아버지의 잘못이였다! 이 자매의 출생은...... 그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어차피 이 모든 걸 정리해보면 김수연은...... 정말 아무런 죄가 없었다. 그리고 김수지는...... 자기도 모르게 박민혁의 머릿 속에 떠오른 것은, 어제 저녁 가만히 앉아 그가 머리를 말려주기를 기다리던 김수지의 모습이였다...... 그는 부자연스럽게 이마를 찡그렸고, 자신을 강박하여 김수연을 몇번 더 보고나서야 마음 속의 충동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사랑하기 때문에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박민혁은 본인이 김수연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냉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김수지에 대해선...... 사랑이 없기에 억제하지 않아고 되는 것이다. 박민혁의 눈빛이 맑아졌고 마치 김수연을 안심이라도 시키려는 듯이 그녀 앞에서 바로 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모님이 아침에 일어나서 변호사랑 이혼 조건 다 상의했어?" "아직이에요." 진영이 이어서 말했다. "사모님의 조건은 회장님이 현장에 있어야만 동의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얼마나 더 욕심을 부리려는 거야? 박민혁의 얼굴에는 불쾌함이 역력했고, 맘 속으로 김수지에 대한 혐오가 더 깊어졌다. 심지어 어제 저녁 그녀의 머리를 말려준 것만 생각해도 역겨운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이혼에 대해 속전속결해야 할 순간이 왔다. "그래, 오늘 저녁에 내가 가서 어떤 조건을 제시하는지 제대로 한번 들어본다고 전해." 그는 그녀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조건을 들어줘야 이혼할 수 있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갑자기 속도를 높여 운전하다보니,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김수연은 하마터면 조수석에서 날아갈 뻔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느라 질책하지 않고 오히려 상냥하게 말했다. "민혁 오빠, 언니가...... 이혼 안해준대요?" "아니야." 박민혁은 그녀가 괜히 걱정할가봐 "이혼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어."라고 말했다. 김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다만 볼이 빵빵해져 마치 큰 용기라도 낸 듯이 가볍게 운전대를 잡고 있는 박민혁의 손을 잡았다. 그가 고개를 돌려 보니, 김수연의 얼굴은 이미 빨갛게 물들었다. 박민혁은 입꼬리를 올려 살짝 웃으며 "다음에는 기사님더러 운전하라고 할게."라고 말했다. 그 말의 뜻인즉 다음에 편할 때 다시 손을 잡겠다는 의미였다. 김수연은 황급히 손을 놓았으나 얼굴의 홍조는 점점 더 붉어져 마치 열이 나는 듯 했다. 그녀는 귀엽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라고 말했다. 차는 바로 김씨 네에 도착했다. 그리고 김수지는 거의 그들과 같은 시각에 이곳에 도착했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비린 내 나는 더러운 물이 그녀에게 퍼부어졌다. "재수없는 년! 네가 이곳엔 왜 와!" 말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생모 양이나였다. 3년이나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김수지를 싫어했다! 김수지는 양이나때문에 화가 나서 몸이 부르르 떨렸으나 결국에는 화를 참고 "볼 일이 있어서 왔어요."라고 말했다. 오늘 그녀는 반드시 김씨 집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양이나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그녀를 밖으로 밀어냈다. "출가 외인이란 말도 모르니? 넌 이미 김씨 집안의 사람이 아니야. 여기서 무슨 볼 일이 있다고 그러니!" 김수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매번 만날 때마다 양이나는 자기 딸에게 이렇게나 매정하게 대할 수 있는거지? 오는 내내 걱정했던 "엄마"란 호칭은 결국에는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녀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김씨 집안 문 밖에 세워져있는 수많은 비싼 차들을 둘러보고, 마당 안의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굴을 슥 닦고 몸에서 비린 내 나는 물들을 짜낸 후 "내가 그냥 와서 구경 좀 하는 것도 안돼요?"라고 물었다. "너 정말 일부러 그러는거지!" 양이나는 순간 갑자기 울어버렸다. "3년이 지났어! 넌 박씨 가문에 시집 간지 3년 내내 한번도 돌아온 적이 없다가, 왜 하필 오늘 동생이 온다니까 하필 와서 이 난리를 피우려고 하는거야? 넌 정말 날 죽일 셈이야?!" 동생이라…… 김수지는 흠칫하다가 "김수연이 돌아왔어요?"라고 물었다. 양이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눈에는 애절함이 가득했다. "방금 돌아왔어. 엄마가 이렇게 빌게. 제발 그 아이 앞에 나타나지 말아줘. 그 아이는 너무 착하고 섬세해서 널 보게 되면 또 혼자서 온갖 별 생각을 다 할거야. 그 아이가 쓸데없는 죄책감으로 인해 김씨 집안에서 다시 또 나가면 이 엄마는 정말 그대로 죽어버릴거야!" 그녀는 착하고, 섬세하고, 혼자서 온갖 별 생각을 다하고, 쓸데없는 죄책감을 갖고 있다고...... 쓸데없는 죄책감이라니! 김수지는 이렇게 황당한 말이 어떻게 양이나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어릴 적 입양된 김수연이 자신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부모, 그녀의 신분, 심지어...... 그녀의 삶까지. 그녀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그렇게 착했다면, 모든 사람들 뒤에 숨어서 자기가 철저한 피해자인척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그런 행동들은 오히려 김수지만 여론의 중심으로 밀어넣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을거란걸 김수지는 잘 알고 있었다. "전 난리 피우지 않을거에요." 그녀는 온 몸이 흠뻑 젖었고, 콧등에서는 비린내가 잔잔히 풍겨오는 것 같았으며, 몸에서 나는 냄새는 찐득하면서 역겨웠다. "근데 전 오늘 반드시 김씨 집안에 들어가야 해요." 그녀는 김수연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나, 박민혁이 그녀와 이혼하려고 하는 진실에 대해선 꼭 알고 싶었다. 그녀는 들어가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 양이나는 오늘 김수지의 태도가 이토록 강경할 줄은 몰랐다. "그래, 너 들어가." 그녀는 김수연을 보고 싶어 미쳐버릴 것만 같았기에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김수지에게 "근데 너 우리가 네 동생을 위해 준비한 환영 파티를 망쳐서는 절대 안돼."라고 말하고는 빨리 김수연을 보러 들어가려고 했다. 김수지는 순식간에 기뻐하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말로 할 수 없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김씨 집안에 대해서 이제는 어떠한 감정 기복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3년 동안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그들에게 상처를 받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대답했다. 양이나는 드디어 한시름 놓았고, 마치 정말 무슨 바이러스를 내쫓기라도 한 것처럼 바로 기분이 들떠서 도우미들을 불렀다. "어서 뒷 마당에 테이블 하나 펴줘. 좀 있다가 김수지가 밥이나 먹게." 도우미가 "그럼 무슨 요리로 준비할까요?"라고 물었다. "김수지는 이해심이 깊어서 그냥 반찬 몇개만 있어도 배 부르게 먹을 수 있어." 양이나는 대충 대꾸했으나 남편이랑 닮은 김수지의 이목구비를 보니 그래도 가슴이 아팠는지 걸치고 있던 망토를 김수지에게 던져주면서 말했다. "머리 좀 닦아, 그 더러운 몰골은 뭐니." 이 더러운 몰골이 다 누구때문인데? 김수지의 손끝이 다시 떨렸다. 그녀는 어머니라는 자가 어떻게 10개월 동안 배 아파 낳은 자식에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오히려 김수연에게는 모든 일을 하나하나 다 걱정하면서 챙겨주었다. 마치 김수지가 3살 때 잃어버린 건 그녀가 당연히 잃어버려져야 하는 운명인 듯, 영원히 김씨 집안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말았어야 하는 운명인 듯 했다. 김수지는 배를 만지며 속으로 조용히 맹세했다. 그녀는 절대 자신의 아기를 버리지 않을 것이고, 절대 아이에게 자신이 겪었던 서러움을 겪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잠시 후, 그녀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틈을 타, 조심스럽게 앞마당을 향해 걸어갔다. 비록 아직 이혼의 이유는 찾지 못했으나, 그녀는 이참에 멀리서라도 한번도 본적 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여동생" 김수연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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