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그는 그녀에게서 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고,
다시 몸을 돌려 떠나려는 자세를 취했다.
김수지는 손가락을 점점 더 움켜쥐었고, 자신의 손바닥에 구멍이라도 뚫을 기세로 힘을 줘서야, 그를 잡으려는 충동을 겨우겨우 참아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박민혁이 다시 돌아왔고 긴 다리로 성큼 걸어가 캐비닛에서 드라이기를 꺼내왔다. "넌 정말 말을 안 들어! 샤워하고 나서 머리도 안 말리고."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한기가 서려있었고, 곁에 만약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분명 무서워서 감히 큰 소리로 숨도 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김수지가 보기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는 정말 너무나도 완벽했다.
입도 잘 생겼고 코도 잘 생겼으며, 얼굴형마저 마치 정교한 조각상 같아, 한번만 보면 깊게 빠져버리곤 한다.
게다가 지금 그는 이미 드라이기를 들고 그녀 앞에 서있다.
3년이나 지났다.
그가 이렇게 세심하게 애지중지하며 그녀를 3년이나 챙겨주었기에, 그녀는 지금 머리카락조차 남편이 말려줘야 할 정도의 여자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들은 곧 이혼을 하게 된다......
게다가 이유는 알 수 없다.
김수지는 마음 속으로 쓸쓸함을 느꼈고, 본인이 진짜 이혼의 이유를 찾아낸다고 해도 그들이 곧 이혼한다는 사실을 바꿔놓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적어도 "왜 죽는지는 알고" 죽고 싶었다.
드라이기에서는 윙윙 소리가 들려왔고, 드라이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바람이 그녀 마음 속의 차가움을 날려주었다. 박민혁의 손가락이 그녀의 머릿결 안에서 자유롭게 왔다갔다 했고, 마치 수많은 애정이 담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그를 안으면 안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차마 참지 못하고 이 순간의 다정함에 다시 빠져들었다.
박민혁은 가슴에 닿은 축축함을 느꼈다.
"왜?" 그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담겨있었는데, 김수지를 비웃고 있는 건지, 아니면 김수지가 그에게 가져다 준 습관이 그의 뼛속 깊이까지 스며든 걸 비웃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자신도 왜 그녀가 자기를 안는 순간에 그녀를 밀쳐내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더 혼란스러운 건, 그는 별장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방으로 들어가 그녀가 뭘 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분명 대타일 뿐인데, 분명 돈만 밝히는 양심없는 여자인데, 그는 그녀에게 이토록 습관이 되어 있었다.
박민혁의 입술은 굳게 닫혀있었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목소리는 너무나 매혹적이여서 마치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듯 했다. "착하지, 움직이지마."
익숙한 말투를 듣자 김수지는 순간 몸이 굳어버렸고, 온갖 기쁨으로 가득 차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려던 찰나, 그에게 가로로 안겨버렸다. "침대로 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는 계속 마음대로 움직일 것이고,
드라이기가 머리를 고르게 말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을 하나 항상 엄격하기에, 머리를 말리는 작은 일조차 제대로 못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
박민혁은 자신이 그녀를 밀어내지 않은 이유를 찾아냈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를 침대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는 드라이기를 챙겨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고, 김수지도 익숙하게 몸을 돌려 슬리퍼를 벗고 나서, 박민혁이 팔로 자신의 목을 반쯤 감싸고 세심하게 머리를 말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김수지는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것 또한 박민혁이 생각해낸 방법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 직접 이혼을 얘기한 오늘, 그들이 예전처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건 너무 이상한거 아닌가......
박민혁은 그에게 사고할 시간을 주지 않았고, 그녀의 행동을 보면서 낮게 웃어버렸다. "넌 꽤 익숙한 모양이네."
김수지는 마음이 덜컹 아파왔고, 갑자기 눈가가 너무 서글퍼지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곧 이혼하게 될거니까, 그녀는 더이상 이런 행동을 하면 안되는 것이 아닌가?
일부 습관들은 고친다고 바로 고쳐지는게 아니다......
다음날 아침, 김수지는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마치 어미의 주머니를 찾아 마구 달려드는 캥거루마냥 그의 품을 찾아 파고 들었다.
하지만 몸을 움직여봐도 옆자리는 텅텅 비여있었다.
손을 내밀어 만져보니, 침대 옆자리는 이미 차가웠다.
그녀는 그제서야, 앞으로 그가 더이상 그녀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를 말려줄 땐 정말 한없이 따스했는데.
박민혁의 오락가락하는 행동때문에 그녀는 맘 속에 수많은 상실감이 남게 되었다. 그녀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 아침이라도 좀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몇 걸음도 걷기 전에, 그녀는 뭔가를 밟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몸을 돌려 자세히 보니,
그건 바로 한장의 사진이였다.
사진 속의 사람은 흰색 치마를 입고 있었고 소녀같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흰색을 좋아하지 않았고 이런 사진을 찍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여기는 그녀와 박민혁의 침실이였고, 평소에도 감히 이 방에 이런 물건을 둘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누구꺼지?
설마 박민혁이 부주의로 떨어뜨린 건가?!
김수지는 긴장한 마음으로 얼른 몸을 숙여 사진을 주웠으나 아쉽게도,
사진에 물이 묻어 여자의 얼굴은 이미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보이는 건 정교한 자수가 있는 흰색 치마를 입은 여자애의 어여쁜 몸매였다.
비록 얼굴은 볼 수 없었으나 그래도 청춘의 활력을 훨씬 풍기고 있음을 보아낼 수 있었다.
설마 이게...... 박민혁이 그녀와 이혼하려는 이유인가?
김수지는 내색하지 않고 사진을 챙겨 아랫 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오늘 아침은 예전의 서양식과는 달리 전부 중식 요리였고, 이는 박민혁이 잘 못하는 조식 종류였다.
아마도 오늘 이후로 그녀는 다시는 그가 해주는 아침을 먹을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김수지는 별 감흥 없이 두유를 몇모금 마셨고, 자기도 모르게 집사 아저씨를 보며 그 사진을 꺼내 물었다. "진 집사님, 혹시 사진 속의 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진 집사는 낯색이 살짝 변했고, 박민혁이 일부러 사진의 얼굴을 흐릿하게 조치한 줄 알고, 더이상 말은 못하고 고개만 저었다.
비록 이 여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김수지는 본인이 계속 생각을 펼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
하루내내, 그녀는 마치 박민혁때문에 곳곳에 구멍이 뚫린 듯 했다. 만약 박민혁이 다른 여자때문에 이혼하려고 하는거라면......
김수지는 감히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 지난 3년은 뭐가 되는거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서글퍼졌으나, 그녀는 억지로 계란을 조금 먹고나서 바로 본가로 향했다.
집사 아저씨한테서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으니, 직접 본가로 가서 단서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도우미들이 한창 청소를 하고 있었고 어제 진행된 연회가 얼마나 성대했는지를 보아낼 수 있었다. 김수지는 도우미 몇명에게 어제 연회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바로 이때, 그녀의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이혼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발신인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없는 번호로 나왔다.
김수지가 좀 더 조사를 해보려는 찰나, 그쪽에서 다시 또 문자가 왔다. "김씨 집안으로 와."
김씨 집안?
민혁 씨랑 그녀의 이혼이 김씨 집안이랑 무슨 상관이지?
김수지는 그때 생모 양이나가 때린 따귀만 생각해도 가슴이 떨리는 듯 했다.
그때...... 그녀는 그토록 큰 희망과 기대를 안고 찾아갔으나, 지금은 김씨 집안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박민혁과 결혼한 후, 그녀는 김씨 집안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일부러 지우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더이상 그 집안과 어떠한 일로라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이 신비한 발신자가 보낸 미끼가 너무 크다는 것이였다. 김수지는 생각 끝에 차를 타고 김씨 집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 시각, 김수연도 박민혁의 차에 타 김씨 집안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김수연이 돌아오자 김씨 가문은 그녀를 성대히 환영했고, 심지어 김씨 집안에서 백리나 되는 곳까지 레드 카펫을 깔아두었으며, 오는 길에는 풍선과 생화가 수없이 많이 날리고 있었다.
박민혁은 한편으로 운전하면서 한편으로 그녀를 흘깃 보았다. "울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