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아,안소희는 바로 요리를 주문하기 시작하며 "여기는 수정새우만두가 유명해. 요즘 연예인들도 매니저 부탁해 포장시켜 먹어. " 라고 하면서
횡설수설하듯 "아기에게는 생선을 시켜줘야지.똑똑해지게 말이야. " 라고 덧붓혔다.
김수지는 말없이 부드럽게 웃고만 있었다.
그녀의 인생에는 소중히 여길 만한 사람이 그닥 많지 않았지만, 안소희는 빠져서는 안될 자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만일 박민혁이 옆에 앉아 애한테 좋은 음식이고 뭐고 중얼거린다면, 그녀에게 더 이상의 행복은 없을것이다......
허지만 이런 더 없는 행복은 그녀의 환상일뿐, 이미 산산쪼각이 났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짙어지는 슬픔을 애써 숨겼다.
맛집은 확실했다. 김수지는 오랜만에 입맛이 당겨 맘껏 즐기고 있는데,가계 사장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죄송합니다, 고객님, 여기를 손님이 대절하셔서, 식비는 무료로 해드릴 테니, 빨리 자리를 내주세요. " 라고 전했다.
"오늘 왜 이렇게 등짝이지?! " 안소희는 젓가락을 힘껏 내쳤다. "쇼핑은 찬밥대우, 맛집에서는 쫓겨나다니?! " 그녀는 김수지를 힐끗 쳐다보더니 "수지야, 천천히 먹어. 다 먹지 못했는데 차마 우리를 몰아내지는 않을거야. "
김수지도 어안이 벙벙한 채, 아직 배가 부르지 않아 떠나긴 많이 아쉬운 상태였다.
의외로 음식이 그녀의 입에 맞아, 식사후 연잎죽으로 끝을 맺었더니, 메스꺼움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김수지는 사장을 쳐다보고 나서 "사장님도 쉽지 않아. " 하면서 돈을 꺼냈다. "면제는 됐구요, 나머지는 포장해 주세요. "
사장은 고마움에 눈물이 나올지경이였다. 김수지는 가게를 나온 후에야 청부자가 박민혁임을 알게됐다.
이런 곳에서 식사할리가 없는데, 아마 또 누군가를 위한 행동이였을듯했다.
김수지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박민혁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금 어디예요? " 라고 물었다.
그는 대답없이 "바빠. " 라고 답했다.
저쪽 골목길에서 어렴풋히 보이는 옷자락. 김수지는 이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일부러 "방금SK 아래 골목길 작은 가게에서 먹은 수정새우만두가 주택요리보다 나아요. 사다 줘요? " 라고 했다.
박민혁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김수연을 잡아 당겼다. 눈앞에 있는 식당을 보더니, 더 이상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김수연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요? "
박민혁은 휴대폰을 치우고 대답 대신 전화기 너머에 "아니, 됐어. " 라고 답했다.
그는 웬지 김수지가 바로 이 근처에 있는듯이 느껴졌다.
그는 김수지와 비슷한 이목구비를 한 김수연을 한참 바라보더니, 마음속 한구석의 처량함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김수지는 요즘 며칠 기분이 안좋아, 그녀와의 결혼이유만큼은 꼭 지켜내야 해. 박민혁은 마음을 다졌다. 이는 그녀에 대한 마지막 연민과 친절인것이다.
박민혁은 전화를 끊고 "더 좋은 광둥요리 맛집이 있어, 거기로 가. " 라고 달랬다.
비좁은 골목에서 그의 훤칠한 키는 감출 수가 없었지만, 보이는건 오직 휘날리는 옷자락일뿐, 옅에 있는 여자의 모습도 김수지는 알아 볼 수 없었다.
"니가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줄 알았어! " 안소희는 보란듯 김수지에게 윙크를 날리더니, 자기의 소형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비좁으니, 넌 따라오지마, 사진만 찍고 올게! "
김수지는 그녀를 막지 않았다.
그녀의 참을성도 한계가 분명 있었다.
박민혁과의 이혼은 이미 정해졌지만, 어쨌든 아직 수속이 남아있는 이상, 외도라면 이미 저지른 잘못인데, 지금처럼 한번두번 그녀의 인내심을 도전하는건 말도 안돼.
그 여자는...... 정말 안해의 존재에 대해 모르고 있을까?
김수지는 그녀의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왠지 오늘따라 모든 일정이 결코 우연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연락을 준 자는 또 누구지, 그녀는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혹시 그녀일까?
어찌 되었든, 오늘 그녀를 충분히 불쾌히 했으니, 보상으로 그들을 만사순리롭게 해줄수는 없다고 느꼈다.
박민혁에게 전화 한건, 일종의 도박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의 예의와 염치, 그의...... 그녀와의 결혼을 얼마나 마음에 두는지, 도박에 걸어 보고싶었다.
두사람이 자리를 뜨자, 그녀는 자기가 적으나마 이번엔 이겼다고 생각했다.
이제 곧 소희가 찍어온 사진을 보면 도대체 누구인데 얼마나 매력있는데 고급 레스토랑에만 전념하던 박민혁을 여기까지 매료시킬 수 있는지 확인할수 있을것이다.
김수지에 대한 젠트멘과는 달리 박민혁은 처음으로 그녀를 위해 타협하고 심지어 자기자신까지 바꾸고 있으니 말이다.
김수지는 눈을 감고 요즘 일어난 일들을 돌이키지 않으려 애썼다.
곧 귓가에 안소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지야. "
사진을 찍고 난 그녀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