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너 지금 너무 멀리 갔어." 박민혁은 자기도 너무 과도하게 긴장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수지는 분명 김수연의 얼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이 정도 반응일 리가 없다.
그런데 얼굴을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데, 만약 얼굴을 보게 된다면......
그는 자신의 감정이 일반적인 연민을 넘어선 것 같다고 느꼈는지, 바로 한마디 보충했다. "넌 아직 나에게 도발할 자격이 없어."
"내가 자격이 없다구요?" 그가 이토록 그 여자를 감싸고 도는 것을 듣게 되자, 김수지는 거의 멘붕이 올 것만 같았다. "박민혁, 당신 와이프인 난 당신에게 그냥 장난감 같은거죠? 아무때나 버려질 수 있는 장난감인데도, 당신은 내가 슬퍼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슬퍼할거란 걸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모든 걸 알고 있기에, 그들 사이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그녀와 이혼하려는 것이였다.
그는 그녀를 안아주고, 그녀의 감정을 안정시켜주고 싶었지만 이혼 합의서를 바라보노라니, 이성이 다시 돌아왔다.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할 수는 없다.
박민혁은 단호하게 돌아섰고, 그녀를 아래 층에 혼자 남겨둔 채, 먼저 침실로 돌아갔다.
진영은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회장님, 오늘 김씨 집안에서 사모님이 떠난 후, 직접 사모님에게 손 댄 도우미들을 처리한 것과, 김수연 씨 체면도 고려하지 않고 양이나를 훈계한 일들을 왜 사모님에게 얘기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입 닥치고 있어!" 박민혁은 그를 한번 노려보고는 '펑!'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진영은 차마 더 말하지 못하고, 풀이 죽은 채로 진 집사한테로 가서 당분간 피해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별장은 너무 커서, 사람의 마음이 흩어지니 집이 너무 텅 빈 것만 같았다.
김수지는 아무도 없는 거실을 보노라니, 마음 속의 씁쓸함이 극에 달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박민혁을 사랑했다. 심지어 그를 위해 탑 디자이너 연수 기회까지 포기했다. 이 모든 건 단지 그의 곁에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자신의 사업을 포기한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미련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결국, 그녀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결혼은 물거품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는 무정하고 매정한 나쁜 놈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아빠의 마음을 잡지 못했어. 네가 태어날 때, 너에게 완전한 가정조차 줄 수 없게 됐어."
그녀는 배를 만지며 "그래도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는 널 영원히 사랑하고 지켜줄거야."라고 말했다.
그녀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죽이 담겨있는 포장백을 열고 안에 포장 케이스를 열어 그 안의 음식을 한입 한입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래 울었으니, 배 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탄수화물을 섭취해야 했다.
"우웩!" 갑자기, 그녀는 한입만 먹고 바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즉시 화장실로 달려가 토했고, 그제서야 그녀가 부주의로 이미 씹어버린 옥수수알을 발견했다.
그녀는 옥수수를 먹으면 구토를 하기에 옥수수를 먹을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은 아기를 가진 상태라 냄새에 더 예민해졌다. 하늘이 노래질 정도로 토하고 화장실에서 나왔을 땐, 두 눈은 이미 퉁퉁 부었고 그녀는 아주 초췌해보였다.
3년 동안, 박민혁은 한번도 지금처럼 그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죽을 사온 적이 없었다.
역시, 마음이 그녀에게 없으니, 모든게 다 사라지는구나.
김수지는 화장실에서 나와, 이미 다 식어버린 죽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기왕 아플 바에는 차라리 자신을 더 아프게 해서, 이 기억을 뇌리에 깊게 박히게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그녀는 아무 미련없이 떠날 수 있다.
죽은 차가웠고, 옥수수 냄새는 너무 강해, 그녀는 이미 자신이 얼마나 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에 토할 땐 황담즙과 신물이 같이 나왔고, 목에는 심지어 핏줄기가 생겼다.
그 비릿하고 단 냄새는 마치 오늘 김씨 집안에서 양이나가 뿌린 오수처럼 특별한 냄새를 갖고 있었고, 그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았다.
박민혁, 그는 이제 더이상 그녀의 빛이 아니다.
김수지는 입을 헹구고, 그 포장지들을 쓰레기 통에 버렸다. 그리고 나서 이혼 합의서를 들고 천천히 침실 문을 열었다.
박민혁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
그는 아래층의 기척을 듣고,
바로 그의 구매기록을 조회했다. 그제서야 그는 오늘 급히 김수지의 상태를 보러 오느라 맛을 잘못 구매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는 이미 그녀가 죽 한 그릇을 다 비운 뒤였다.
그래서 그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토하고 나서 힘들가봐, 침대 머리에 따뜻한 물도 준비해두었다.
그러나 김수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박민혁, 우리 이혼해."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김수지가 펜을 들어 종이장에 슥슥 서명하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었고, 그녀의 피곤한 듯한 호흡소리도 들었으며, 그녀의 흐느끼는 목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김수지가 가까이에 왔을 땐, 그는 차라리 두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그냥 죽을 잘못 사온데 대한 사과라고 생각하고,
그는 김수지에게 이혼에 동의하는 조건을 얘기하라고 한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이렇게 홧김에 그냥 서명을 하는게 아니라.
김수지는 그의 옆에 한참 서있었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 순간에도 잠이 오다니.
김수지는 자신을 실컷 비웃고는, 이혼 합의서를 들고 별장을 나섰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냥 아무런 목적 없이 기사님더러 도시의 길거리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몇바퀴나 돌고 나서야 그녀는 "날 잊지 마요"라는 꽃집 아래에서 멈춰섰다.
그녀는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이혼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결혼 생활에서 더이상 서러움과 배신을 당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안간 힘을 다해 그녀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해도, 김수지는 여전히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그녀는 누구일까, 몇살일까, 나보다 이쁠까, 그들은 언제부터 함께 했을까.
이런 무의미해 보이는 질문들이 마치 독사처럼 그녀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그녀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꽃집에 들어서니, 이 가게는 이미 많은게 바뀌어 있었다. 예전의 갖가지 장미들은 모두 온데간데 없고 모든 꽃들이 백합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모님." 줄곧 여기에서 일하던 점원은 이 시간에 그녀를 볼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김수지는 미소를 지으며 "장미를 사고 싶은데 왜 장미가 다 안보이죠?"라고 물었다.
점원은 깜짝 놀랐다. "이상하네요, 남편 분이 사모님이 장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심지어 저희더러 전부 백합으로 바꾸게 하기 위해, 전액으로 이 가계를 구매하셨어요......"
그 뒤로 점원이 무슨 얘기를 해도 김수지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 직원이 얘기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김수지는 그냥 모든게 우습게만 느껴졌다. 맛을 잘못 사온 죽도 우습고, 지금의 이 꽃가게도 우습고, 박민혁이 정말 자신을 사랑한다고 착각했던 그녀 자신도 우스웠다.
그는 그녀에게 잘해줬지만, 그 여자에겐...... 더 잘해줬다.
심지어 그 여자가 장미를 좋아하지 않는단 이유로, 김수지가 제일 좋아하던 장미꽃 가게를 전액으로 인수해 백합 전문 매장으로 바꿔버렸다.
사랑에도 무게는 서로 다른가보다.
그녀를 향한 박민혁의 사랑은 그녀 앞에선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였는데, 그녀만 그걸 보배처럼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김수지는 마치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백합으로 가득 찬 가게에서 한발 한발 물러갔다.
멀리 떨어진 곳에, 기다란 롤스로이스가 마치 암흑 속의 요정마냥 조용히 그녀의 뒤를 지키고 있었다.
안에 앉아있는 사람은 바로 박민혁이였다.
그는 꽃집 앞에서 한껏 움츠린 김수지의 모습을 보고는 알 수 없는 짜증에 휩싸였다. 그는 바로 김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연아,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