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자수품을 든 허지은은 손까지 부들거렸다.
"허락 없이 제 물건에 손대놓고, 제 잘못이라는 거예요?
"뭘 그렇게 따져?"
부성화는 엄마가 편 들어준다고 당당해했다.
"그냥 천 쪼가리잖아, 우리 오빠 회사에 수낭이 얼마나 많은데, 바로 하나 만들어줄 수도 있어! 역시 없는 집안 출신이라 쪼잔하다니까!"
백아연도 말했다.
"지은아, 화내지 마, 네가 나 때문에 기분이 안 좋다는 거 알아, 하지만 쓸데없는 물건 때문에 아줌마랑 화내는 건 아니지, 우리가 돈 배상해 줄게, 여섯 개면 200만 원이면 되지?"
"돈 주지 마!"
김윤자는 얼른 백아연을 막았다.
"저딴 쓰레기가 200만 원이나 되겠어?"
"여섯 개?"
허지은은 바로 종이상자를 뒤졌다.
역시나 안에서 이미 가위로 잘린, 마무리만 남은 작품 다섯개를 보았다!
모두 잘렸다...
백아연은 쪼그리고 앉아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가 버리는 건 줄 알았어, 그림들이 예쁘길래, 꽃병에 장식하려고 했지. 너도 자수할 줄 알잖아, 내가 돈 줄게, 또 수놓으면 되잖아."
허지은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고 눈이 새빨개져서 말했다.
"꺼져."
"뭐라고? 감히..."
김윤자가 욕하려고 했다.
"다들 꺼지라고!"
그녀가 화내자 김윤자도 깜짝 놀랐고 한참이나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아마 허지은이 별로 화를 내지 않아서 놀란 것일 수도 있다.
"무슨 일이야?"
소리를 들은 부성훈이 서재에서 나왔다.
허지은이 바닥에 쪼그리고 있었고, 바닥에 잘린 자수품을 보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훈아, 내 탓이야. 난 지은이가 버리는 건 줄 알고, 그림 몇 개를 잘랐거든, 성화도 버리는 건 줄 알고 실을 몇 개 뽑아서 놀았거든. 지은이가 화내면서 나한테 꺼지라고... 나... 그냥 갈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아."
백아연은 말하면서 울먹였고 부성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도 몰라서 그런 거잖아, 네 탓이 아니야. 안현시도 잘 모르면서, 어디로 간다는 거야? 여기서 잘 있어."
"부성훈, 내 자수품이 이렇게 망가졌는데, 탓이 아니라면 끝이야?"
허지은이 진작에 소용 없어진 비단을 꽉 잡고 일어섰다.
"그럼 어쩔 건데? 이미 다 잘랐고, 다 풀었잖아."
허지은은 머릿속에서 분노와 부씨 가문에 진 신세가 서로 미친 듯 싸우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애써 진정하려 했다.
"사과도 안 해도 되는 거야?"
"부성화, 사과해."
부성훈이 말하자, 사과하기 싫었던 부성화는, 오빠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낯빛이 어두워져서 말했다.
"미안해, 됐지!"
그녀는 지나가면서 일부러 망가진 허지은의 자수품을 밟으며 중얼거렸다.
"이딴 쓰레기가 뭐가 대단하다고!"
허지은은 백아연을 바라보았다.
"너도 사과해."
"허지은, 너무 하잖아."
부성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너무해?"
허지은은 잘린 천을 들어 보였다. 세 사람이 한쪽에 서 있고, 자신이 혼자 서 있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먹였다.
"부성훈, 눈멀었어? 쟤네들이 내 물건 망쳤다고!"
"연이는 환자야, 환자한테 따질 거야? 사과하면 뭐, 이 물건들이 다시 복구될 수 있어? 게다가 네 작품이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상도 못 받잖아, 뭐 아까울 게 있어? 똑같은 걸 원하면 공장에 있는 수낭한테 다시 만들어달라고 할게."
부성훈은 짜증인 난 듯 뒤 돌았다.
"연아, 가서 쉬어. 자책할 필요 없어, 네 탓 아니야."
"아니야, 훈아, 내가 여기서 폐 끼쳤어, 남의 집에서 도저히..."
"남의 집이라니?"
"지은이 집 아니야?"
부성훈은 1초간 멈칫하더니 아주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
"이 집 내 명의야."
순간, 허지은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이 집이 내 집이 아닌 거야?
"그런 거였어."
백아연은 기뻐하며 웃었다.
"그런 거면 편히 있을게, 방금 지은이가 화나서 꺼지라고 하니까 더 있기 미안했거든."
"나만 너한테 나가라고 할 권리 있어,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돼."
부성훈은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쉬어."
김윤자는 멍하니 있는 허지은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허지은, 사람이 주제를 알아야 해, 우리 아들이랑 몇 년 만났다고 신분 상승이라도 한 줄 알아?"
그러고는 승리자처럼 우쭐거리며 방으로 돌아갔다.
"허지은, 넌 지금..."
허성훈이 또 혼내려고 했다.
하지만 허지은은 전혀 듣고 싶지 않았고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허지은, 왜 어리광이야!"
부성훈의 행동이 컸기에 상자가 떨어졌고 바닥에 가득 널렸다.
허지은은 이미 잘린 쓸모없는 쓰레기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부성훈의 얼굴에는 짜증과 분노가 역력했다.
뭘 화내는데?
무슨 자격으로 화내는데?
허지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그 사람인데 왜 변한 것 같은 거지?
아니면 한 번도 제대로 안 적 없는 건가?
부성훈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말 안 들었어, 화나면 집 나가려고 하는 거야? 누구한테서 배워먹은 버릇이야?"
그는 자신의 문제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허지은이 사장님들과 알게 되고 나서 성격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허지은은 그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 낯선 웃음이 부성훈은 너무 낯설었다.
그의 앞에서 허지은은 영원히 다정한 모습이었고, 지난 7년간 이렇게 감정적이었던 적이 없었다.
허지은은 차분한 목소리로 일일이 말했다-
"백아연이 내가 수고스럽게 준비한 결혼식을 차지했고, 두 사람이 날 안현시의 웃음거리로 만들었어, 네가 방임한 거야."
"우리 엄마가 남겨준 레드 드레스를 백아연이 망쳐버렸어, 그것도 네가 방임한 거야."
"내 허락 없이 내 방에 들어온 것도 네가 방임한 거야."
"내가 없는 틈에, 말도 한마디 없이 내 자수품을 망친 것도 네가 방임한 거야!"
그녀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나더러 왜 어리광이냐고? 부성훈, 너 진짜 눈멀었어? 아니면, 우리 허씨 가문에서 부씨 가문에 빚진 목숨, 평생 다 못 갚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