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6장

한재혁은 주성윤을 흘겨보며 차가운 말투로 내뱉었다. “내가 너처럼 여기저기 찔러대는 인간인 줄 아냐.” “...” ‘뭐야, 한재혁 말하는 거 왜 이렇게 독해. 곁에 어린애만 없었으면 바로 한 판 붙었을 텐데 괜히 겁주면 안 되니까 참아야지.’ 물론 붙어봤자 매번 진다. 주성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투덜거렸다. “형 입 그렇게 독하게 놀리다 마누라한테 혼난다?” 송유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멈칫했다. ‘결혼했나?’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그녀는 가슴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짓눌리는 듯했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그리고 눈물이 저절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주성윤은 다급히 송유진을 붙잡고 물었다. “괜찮아? 어디 아파?” 송유진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눈물로 젖은 얼굴로 한재혁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살아있으면서... 왜 날 찾지 않았어요?” 한재혁은 짧게 한숨을 쉬더니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만 울어.” 곁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주성윤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 이거 뭐냐고? 지금 무슨 상황이야?” 한재혁은 대답했다. “얘 유진이야.” 주성윤은 놀란 얼굴로 송유진을 바라보다가 다시 한재혁을 쳐다봤다. “유진이? 형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그 애?” 한재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성윤은 더욱 놀란 듯 중얼거렸다. “세상에... 그 꼬맹이가 벌써 이렇게 컸네.” 그러더니 장난스럽게 웃으며 송유진에게 다가가 말했다. “유진아, 나 기억 안 나? 나 성윤이 오빠야. 생각나지?” 송유진은 화려하게 치장한 그의 모습을 보고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주성윤은 바로 팔뚝을 걷어 올려 문신을 보여줬다. “봐봐, 이거 기억 안 나? 어릴 때 봤잖아.” 송유진의 시선이 그의 문신으로 향했다.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는데 한재혁을 자주 따라다니던 오빠였던 것 같았다. 송유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주성윤은 혼자 신나서 말을 이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사람 완전 변했네. 점점 예뻐져! 그래, 이참에 내 번호도 저장해.” 그러면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본 한재혁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의 머리를 툭 쳤다. “주성윤, 죽고 싶냐?” 주성윤은 휴대폰을 얼른 주머니에 넣으며 되받아쳤다. “몇 년 만에 만났는데 번호 좀 주는 게 뭐가 문제야?” 송유진은 그 말에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몇 년? 정확히는 5년하고 8개월이었다. 그녀와 한재혁이 처음 만난 건 중학교 3학년이었다. 학교 끝나고 골목길에서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그녀를 한재혁이 구해주면서였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의 집과 한재혁의 외할머니 집은 이웃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에 의해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그 당시의 한재혁은 모두가 말하듯 방탕하고 제멋대로인 소년이었다. 하지만 송유진이라는 꼬맹이를 만나고 나서는 점점 행동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주성윤은 한재혁이 외할머니 집에 ‘유배’당한 사실을 알고 찾아갔을 때 그가 송유진의 수학 문제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형, 여기 와서 완전 사람 됐네?” 한재혁은 그의 팔에 새겨진 문신을 보고는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네 팔에 그건 뭐냐?” 주성윤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문신이지! 어제 새겼어. 날개를 펴고 있는 독수리야. 멋있지?” 한재혁은 눈알을 굴리며 대꾸했다. “작은 새새끼 그려놓고 대수인 척하지 마. 이게 멋있냐?” 주성윤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작은 새라니! 이건 독수리라고!” “꺼져. 앞으로 여기 오지 마. 애가 놀라겠어.” 그 이후로도 주성윤은 몇 번 더 한재혁을 찾아왔지만 놀러가자는 제안은 전부 거절당했다. 그는 웃으며 비꼬았다. “형, 이제는 애 키우는 재미에 빠진 거야?” 한재혁은 그를 내쫓으며 말했다. “꺼져. 헛소리 하지 말고.” 그때부터였다. 송유진의 어린 마음속에서 한재혁에 대한 감정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한 건. 그녀는 그에게 점점 더 강한 집착과 독점욕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나 한재혁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녀는 그만 이성을 잃고 한재혁에게 직진 고백을 해버렸다. 하지만 결과는 뻔했다. 한재혁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진아, 네가 나이가 몇인데 벌써 연애를 하겠다고 그래?” 하지만 어린 송유진은 좌절하지 않았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줘요!” 그러나 그 후 한재혁은 그녀 앞에 잘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송유진이 아무리 순진해도 그 이유를 모를 리 없었다. 한재혁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피한 거였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사랑은 늘 뜨겁고 불타오르는 법이었다. 한재혁이 자신을 보러 오지 않으면 자신이 그를 보러 가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매일 방과 후 송유진은 한재혁의 대학 캠퍼스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한재혁의 친구들이나 선배들은 그녀를 보고 장난스레 말했다. “한재혁, 네 꼬맹이 여자 친구 또 왔네.” 그럴 때마다 한재혁은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헛소리 마. 그냥 내 동생이야.” 곁에서 주성윤도 거들며 덧붙였다. “맞아, 우리 형 여자 친구 있어. 괜히 오해하지 마.” 송유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눈가가 금세 붉어지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여자의 울음에 약했던 한재혁은 특히나 송유진이 우는 걸 볼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송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끝없이 쏟아졌고 한재혁은 어설프게 그녀를 달랬다. “그만 울어. 울면 안 예쁘다고.” 송유진은 흐느끼며 간절히 말했다. “오빠, 저 기다려주면 안 돼요? 저 금방 클 거예요. 제발요.” 한재혁은 아무 말 없이 한숨만 내쉬었다. 그러나 송유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진짜요. 저 금방 어른 될게요. 그때까지만, 정말 딱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그제야 한재혁이 입을 열었다. “그래.” 그의 잔잔한 목소리가 들리자 송유진은 눈물로 범벅된 얼굴에 순식간에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성인이 되기만 하면 당당히 그의 앞에 서서 다시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후로 한재혁은 사라졌다. 그가 떠난 후 송유진은 마치 날개를 잃은 새처럼 강성을 헤매며 그를 찾았다. 그러다 들려온 건 한재혁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순간 그녀의 세계는 무너졌다. 평소에 종교를 믿지 않던 송유진은 그날 이후로 신에게 빌기 시작했다. 한재혁이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하지만 1년, 2년, 시간이 흘러도 한재혁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세상에 신 따위는 없고 자신의 간절한 소망은 이뤄질 리 없다는 것을. 어머니의 편견과 한재혁의 부재는 그녀를 점점 더 우울하게 만들었고 결국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병원에 있는 식물인간 상태의 아버지를 보고 강명대교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배도현이라는 소년이 그녀를 붙잡았다. 그는 놀랍게도 한재혁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의 이목구비 어딘가에서 그녀가 그리워하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배도현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는 바람기가 많고 성격이 거칠며 사생활도 엉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송유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송유진은 그 모든 것이 상관없었다. 그녀가 신경 쓰는 건 단 한 가지, 그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는 동안만큼은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유진아, 울지 마.” 주성윤의 목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끊어놓았다. 송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서 있는 한재혁을 보았다. 순간 그녀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굳이 가짜 죽음을 꾸며가며 자신을 피할 필요는 없었는데. 자신이 좋아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