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사부님 집에 계세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고아라는 대답하며 대나무 문을 열어 남자를 들어오게 했다.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소리쳤다.
“고 선생님! 고 선생님!”
“무슨 일이야?”
고정태는 한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고 다른 손으로 술잔을 들고 있었다. 한 입 먹고 한 잔 마시던 고정태는 남자의 외침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잠깐 돌려 두어 번 보고는 다시 먹고 마시는 데 열중했다.
“고 선생님 식사 중이셨군요.”
김수철은 웃으며 말했다.
“식사 중에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종종 찾아와 방해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무슨 일인지 말해요.”
“고 선생님, 오늘 밤 제 아들이 무슨 이유인지 계속 울어대며 엄마가 안아도 달래지지 않고 우유도 마시지 않아요. 우리 어머니는 아이가 무언가 더러운 것을 본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 선생님께서 내려와 우리 아들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아들 이야기를 하는 김수철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고아라는 밖에서 들어와 물었다.
“삼촌, 식사는 하셨어요? 같이 좀 드실래요?”
“아니야. 이미 먹었어.”
이미 먹었다는 말에 고아라는 그에게 수저를 챙겨줄 필요도 없어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아 식사를 계속했다. 김수철의 아들이 계속 우는 이유를 고아라는 추측할 수 있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묻지 않았기에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아들의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나요?”
고정태가 물었다.
김수철은 아들의 생년월일을 빠르게 알려주었고 고정태는 손가락을 꼽아 계산한 후 말했다.
“아이에게 음기가 끼어 있군요. 내가 몇 개의 부적을 줄 테니 연속 3일 밤마다 부적을 태워 그 물로 아이를 목욕시키고 또 하나의 부적은 아이에게 지니게 해요. 그리고 집 뒷마당에서 종이를 태우도록 하세요. 그러면 아이가 더는 울지 않을 거니까.”
말을 마친 후 고정태는 술잔을 내려놓고 부적과 종이를 가져와 김수철에게 건넸다.
김수철이 물었다.
“고 선생님, 비용은 얼마죠?”
“알아서 줘요.”
고정태는 금액을 정하지 않았다. 그는 이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탐욕을 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주는 만큼만 받았다.
김수철은 만 원을 꺼내 고정태에게 건네고는 감사 인사를 한 뒤 급히 산을 내려갔다.
그가 떠난 후 고아라는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수철 삼촌의 아들은 성인이 되기도 전에 몸이 허약해질 것 같아요. 저 사람들이 심은 업보를 아들이 감당해야 할 것 같군요.”
고정태는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산 아래로 내려가 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김수철의 누나들이 문제를 일으킨 걸 아는 거야?”
“김수철의 누나들이 원한이 아주 깊잖아요. 그거 말고 달리 뭐가 있겠어요? 모두 부모의 잘못이에요. 그 집안의 운세는 두 세대 안에 좋아질 것 같지 않아요. 죄가 너무 많아요.”
고정태가 그녀에게 말했다.
“너는 풍수도 모르고 운세도 못 보잖아.”
“나는 인과를 믿어요. 어른들이 그렇게 많은 죄를 지었는데도 부자가 될 수 있다면 그건 천리를 거스르는 일이죠.”
“밥이나 먹어.”
고정태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고아라는 달걀 팬케이크를 하나 집어 입에 넣으며 속으로 궁시렁댔다.
식사 후 고아라는 고정태의 재촉에 따라 산을 내려가 이은비의 집으로 가서 차에서 쇼핑백을 가져와 다시 산으로 돌아와 혼인 신고서를 고정태에게 보여주었다.
고정태는 혼인 신고서에 적힌 남자의 사주를 보더니 말했다.
“이혼해. 꼭 이혼해야 해. 이 남자는 네가 감당할 수 없어. 보아하니 남자는 도화살이 꼈어. 이혼하지 않으면 너에게 수많은 경쟁자가 생길 거야. 너의 성격으로는 수많은 교활한 경쟁자들을 이길 수 없을 테니 빨리 이혼하는 게 좋아.”
이 남자는 부유하고 장수할 운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사랑하는 제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거참 이혼을 몇 번이나 얘기하는 거예요. 내일 아침 일찍 도시로 갈게요. 다시 한 번 구청에 가서 이혼 절차를 밟을게요. 됐죠?”
고아라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속전속결 결혼도 감수할 수 있었던 고아라는 속전속결 이혼도 상관이 없었다.
그날 밤 둘에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다음날 아침. 둘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고정태는 그의 도구가 든 자루를 메고 고아라와 함께 산을 내려갔다. 이은비의 집에서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차를 타고 출발했다.
고아라가 성인이 된 후 운전 면허를 따고 나서 둘은 더 이상 같은 차를 타지 않았다. 고정태의 말에 따르면 둘이 다른 차를 운전하는 건 혹시라도 길에서 사고가 나면 적어도 한 명은 살아서 시신을 수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고아라는 고정태와 같은 차를 타는 것이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디를 가든 고정태의 일정에 맞춰야 하니 차라리 자신이 직접 운전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면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갈 수 있으니 말이다.
40분 후. 고정태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고아라가 따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창문을 내려 고아라에게 말했다.
“아라야, 넌 남편을 찾아가서 일을 처리해. 나는 임영진을 만나러 갈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네.”
답을 마친 고아라는 엑셀을 밟아 빠른 속도로 차를 몰고 사라졌다.
고정태는 혼잣말로 말했다.
“저 천방지축 같으니. 자기가 비행기를 운전하는 줄 아나. 뭘 저렇게 빨리 달려.”
고아라는 바로 퀸즈그룹으로 갔다.
둘은 산에서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고아라가 퀸즈그룹에 도착했을 때 아직 8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직원들은 하나 둘씩 차를 몰고 회사로 출근하고 있었다.
고아라는 이은비가 자신을 볼까 두려워 차 안에 몸을 숨기고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녀는 일부러 차를 멀리 주차하여 눈에 띄지 않게 했다.
한참 뒤 이은비가 차를 몰고 퀸즈그룹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그녀는 차를 조금 더 앞으로 주차하였고 이로써 자신의 남편이 언제 오는지 지켜보기가 더 쉬워졌다.
최현우는 자신의 아내가 또 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는 항상 7시 45분에 출발했고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저택에서 회사까지는 딱 15분 거리였다. 하지만 출근 길에서는 보통 교통이 잠깐 정체되기 때문에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은 대개 8시 15분이었다.
직원들이 출근하는 피크 타임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었다.
먼저 나타난 차는 경호차로써 검은색 BMW였고 두 번째 차가 최현우가 앉아 있는 마이바흐였다. 뒤에는 또 다른 검은색 BMW가 있었는데 그것 역시 경호차였다.
첫 번째 경호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던 이현이 가장 먼저 고아라의 차를 보았다.
지금 이 시간에는 회사 직원들이 이미 회사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회사 입구에 덩그러니 주차 된 고아라의 차는 매우 눈에 띄었다.
최현우의 경호원으로서 경계심이 아주 높은 이현은 멀리서 그 차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기억력이 매우 좋은 이현은 그 차가 어제 자신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가로막았던 차임을 알아차렸다. 고아라가 온 것이다.
이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는 경호차에 있었고 최현우는 뒤에 있는 차에 타고 있었다.
그는 최현우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 고아라가 움직였다. 그녀는 최현우의 전용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바로 차에서 내렸다. 최현우의 차가 마침 그녀 앞에 멈췄다.
경비원이 막 대문을 열기 시작했고 문이 완전히 열리기까지 몇 초가 걸렸다.
고아라는 최현우가 자신을 본 줄 알고 앞으로 다가가 몸을 굽히고 최현우의 차창을 두드렸다.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운전사와 최현우가 놀랐다.
운전사는 고개를 돌려 밖에 있는 여자를 보았고 이내 사모님인 것을 발견하고는 본능적으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최현우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