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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하시훈이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설인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보세요?” 하시훈의 차가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뭐해?” 전화로 들어서 그런지 설인아는 하시훈의 목소리가 유난히 듣기 좋았다. 나지막하면서도 매혹적이라 마음이 간질간질한 설인아가 젓가락을 꼭 부여잡고는 표정을 정리하며 말했다. “밥 먹고 있었어요.” 그러다 대답이 너무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이렇게 덧붙였다. “시훈 씨는 먹었어요?” 하시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순간 설인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전화를 해놓고는 말을 하지 않으니 목적이 뭔지 몰라 마음이 살짝 불안해졌지만 하시훈이 끊지 않으니 설인아도 끊기 애매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려는데 설인아가 눈 딱 감고 이렇게 말했다. “무... 무슨 일 있어요?” 설인아는 하시훈이 별일 없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하시훈이 이렇게 대답했다. “응.” 고작 한 글자였지만 뜻이 뭔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어 설인아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뭐지...’ 하지만 이내 오늘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시훈의 세력으로, 거침없는 수단으로 그런 소식쯤 알아내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시훈과 결혼하긴 했지만 오해를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가볍게 입을 열었다. “나랑 육진수는 이미 과거형이에요. 절대 이어질 일 없으니까 오해하지...” 설인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시훈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내 와이프가 청난일 줄은 몰랐네.” 하시훈의 말에서는 그의 기분이 어떤지 전혀 읽어낼 수가 없었다. 설인아는 하시훈이 이걸 물을 줄은 몰랐기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뜸 들이던 설인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나는 실력도 없고 배경도 없어요. 절대 시훈 씨에게 영향 줄 일 없으니까 믿어줘요.” 설인아는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을 뿐인데 하시훈이 강제로 간섭한다면 상황이 너무 힘들어지게 된다. 게다가 이런 어마어마한 재벌 집은 규칙과 체면을 중요시한다는 걸 설인아도 잘 알고 있었다. 하시훈은 판에 박은 듯한 설인아의 설명에 귀엽다는 듯 웃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독였다. “나는 네가 나한테 영향 줬다고 생각한 적 없어.” 설인아가 멈칫했다.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가?’ 설인아는 그 말에 감동해 핸드폰을 꼭 부여잡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고마워요.” 하시훈이 이렇게 말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자마자 뭔가 수화기 너머로 차가운 기운이 몰려오는 것 같아 어리둥절해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하시훈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그런 얘기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아.” 설인아의 표정이 굳었다. ‘화난 건가?’ 설인아가 마른기침하더니 얼른 입을 열었다. “아... 아직 완전히 적응한 게 아니라서 그래요. 앞으로 그런 얘기 안 하면 되잖아요...” 설인아가 눈치챘는지는 모르지만 설인아의 말투에는 어느새 애교가 섞여 있었다. 하시훈이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눈동자에 웃음기가 차올랐다. “복귀 일정이 이틀 앞당겨질 것 같아.” 반찬을 집으려던 설인아의 손이 멈칫하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일주일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하시훈이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거두더니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이제 너 본가도 데리고 가야지.” 탈칵. 설인아가 잡고 있던 젓가락을 놓치자 그릇에 떨어지며 상쾌한 소리가 났다. 마음이 철렁한 설인아가 얼른 젓가락을 도로 집어 들었다. 이날이 언젠간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기에 버벅거리며 말했다. “나... 나는 아직 준비 안 됐는데...” 설인아가 바짝 긴장했다는 건 전화기 너머에서 듣고 있는 하시훈도 알 수 있었다. 하시훈은 설인아가 어떤 표정일지 생각하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엄마는 이미 네 존재를 알고 있어. 좋은 분이라 걱정할 것도 없고.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하면 돼.” 하시훈이 다독이긴 했지만 설인아의 긴장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설인아에게 상대의 부모를 만나러 간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아, 알겠어요.” 설인아가 대충 대답하자 하시훈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얼핏 들어도 시무룩한 이 대답은 하시훈의 위로가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아마 설인아의 머릿속에는 온통 무슨 선물을 들고 가야 할지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하시훈은 더 말해도 쓸모없다는 걸 알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어. 빨리 돌아갈 테니까.” 두 사람은 간단한 대화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설인아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핸드폰을 들고 여러 사이트를 전전하며 무슨 선물을 고를지 고민했다. [남자 친구 부모님 만나러 갈 때 선물] 질문에 달리는 댓글은 많았지만 하나같이 쓸만한 게 없었다. ‘아... 어떡하지...’ 설인아가 핸드폰을 잡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 설씨 가문. 설연우의 방은 온통 핑크색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하얀 유럽풍 화장대에 여러 가지 화장품이 놓여 있었다. 한눈에 봐도 얼마나 사랑받는 공주님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설연우는 핑크색 꽃무늬 침대에 앉아 머리를 베개에 파묻고 있었다. 똑똑. 설연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방문이 열렸다. 나문숙이 갓 씻은 신선한 과일을 들고 침대맡으로 다가가더니 침대에 엎드린 설연우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 딸, 저녁도 별로 입에 안 대던데 배고프지 않아?” 설연우가 대답도 하지 않고 상태도 이상해 보이자 나문숙이 침대맡으로 다가가 설연우 머리 위에 올려진 베개를 들어내더니 걱정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설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문숙을 꼭 끌어안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흑흑... 엄마. 진수 오빠가 나 버릴 거 같아요.” 나문숙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설연우의 어깨를 잡아서 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나문숙의 마음도 무거워졌다. 만약 육진수가 정말 설연우를 차버리려는 마음을 먹으면 어떡하나 걱정되기도 했다. 설연우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어제 있었던 일을 나문숙에게 들려줬다. 듣고 있던 나문숙이 그럴 리가 없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휴지로 눈물을 닦아내던 설연우가 퉁퉁 부은 눈으로 나문숙을 바라보며 불안한 말투로 말했다. “엄마, 나 이제 어떡해.” 이제 나문숙도 불안해지기 시작해 침대를 쾅 내리치더니 매서운 눈빛을 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설인아 이 빌어먹을 년이 이런 수를 남겨뒀을 줄은 몰랐네.” 나문숙은 설인아가 신의 청난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누구든 신의 청난이 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설인아여서는 절대 안 된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초에 그 빌어먹을 년을 죽여버리는 건데. 남겨뒀더니 성가시기만 하고 짜증 나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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